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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악인 주찬권(1955~2013)

그룹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이 20일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향년 58세. 


'Too young to die, too old to rock'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롤링 스톤스, 에릭 클랩튼, 폴 매카트니가 60~70이 되도록 월드 투어를 도는 세상이다.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롤링 스톤스의 다큐멘터리 <샤인 어 라이트>를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짝 마른 할배들이 2시간동안 무대 위에서 뛰고 구르고 소리지른다. 젊었을 때 건강에 좋지 않은 '짓' 많이 했을 것 같은데. 타고난 사람들은 그런 것 상관없나보다)


난 들국화의 전성기를 동시대에 경험한 청중은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그들의 명성을 듣고 몇 장의 엘피를 사모았다. 그리고서야 '행진'이나 '그것만이 내세상' 등 익숙했던 노래들이 들국화의 것임을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온전히 들국화에 빠져버린 건 아니다. 훌륭한 밴드, 아름다운 노래임에는 분명하지만 내 취향과는 미세하게 차이가 있었다. 8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 중에선 시인과 촌장, 조동진을 조금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도 평단의 평가는 확고했다. 2007년 경향신문과 가슴네트워크가 대중음악 전문가 52명의 설문을 바탕으로 꼽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들국화의 데뷔 음반은 확고한 1위로 꼽혔다. 52명중 45명이 이 음반을 명반으로 꼽았다. (참고로 시인과 촌장의 '푸른 돛'은 13위, 조동진의 데뷔 음반은 39위였다.)



경향신문과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주찬권과는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다. 2005년 비교적 초년 기자였던 시절, 그의 다섯 번째 솔로 음반을 계기로 인터뷰를 했다. 그는 직접 e메일을 보내 자신의 음반 발매 소식을 알렸다. 매니저도, 기획사도 없는 모양이었다. 하루에 수백 통씩 e메일이 들어오지만, 제목을 유심히 살펴본 뒤 지워야하는 이유다. 


전인권도 한 차례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적이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을 낸 것이 계기였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위에 언급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기사를 위해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당시엔 그가 필리핀에 체류하며 연락이 거의 닿지 않아서 결국 인터뷰는 무산됐다. 들국화 멤버 중에서는 최성원을 가장 좋아했는데, 별 계기가 없없는지 대중음악 담당 시절 그와 만날 기회는 없었다. 


아래에 주찬권의 2005년 7월 26일자 경향신문 인터뷰를 옮겨 놓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자에게 한 통의 e메일이 들어왔다. 수많은 스팸 메일 중 하나겠거니 하고 삭제하려는 순간 낯익은 이름이 한 구석에 보였다. "저는 드러머 주찬권이라고 합니다. 들국화라는 그룹에서 오랫동안 드럼을 연주했죠."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그룹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 전인권, 최성원이 들국화에 포크 향기를 입혔다면, '신중현계'에 속했던 주찬권은 들국화가 보여준 '록의 얼굴'이었다.
주찬권이 5년 만에 다섯번째 솔로 음반 'Low'를 내놨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은 물론 보컬, 코러스,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을 모두 스스로 해낸 '원 맨 밴드' 음반이다. 심지어 보도자료도 '독수리 타법'으로 직접 작성했고, 인터넷에서 자신에게 관심이 있을 법한 기자들의 e메일을 찾아내 음반을 발송했다. 자켓 디자인은 딸에게 맡겼다.
음반은 70∼80년대식의 힘찬 록음악으로 가득차있다. 육중한 하드록 넘버 'Rock이 필요해'가 타이틀곡이다. 블랙 사바스나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연상시킨다. 30년여간 무인도에 고립된 사람이 만든 음악같이, 세상 음악의 빠른 흐름과는 다른 원형적인 록의 기쁨으로 충만하다. '낯설은 골목에서 서성거리네/쫓기는 눈빛으로 어쩔 줄 몰라/이럴 때 필요한 건 Rock Rock'으로 이어지는 록 찬가다. 친한 친구에게 바치는 곡이라는 '별에게'는 나른하게 늘어지는 주찬권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
영미권의 로커들은 한곡만 빌보드 차트에서 인기를 끌어도 평생 캘리포니아 해변 저택에서 여생을 즐기며 산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로커들은 언제나 가난하다. 스스로 자신을 알리고 다니는 것도 어쩔 수 없어 하는 일이다. 녹음실 대여할 돈이 넉넉지 않아 한번에 녹음을 마친 곡도 꽤 된다. 드럼 녹음은 두 프로(녹음 시간의 단위. 1프로는 약 3시간)에 끝냈다. 어딘지 사운드가 비어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찬권은 "만족스럽진 않지만 더 이상 녹음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화려했던 들국화 시절은 영광이자 멍에. 5장의 솔로 음반을 냈지만 여전히 팬들은 '들국화의 주찬권'을 기억한다. 주찬권은 "이름없이 사는 게 편할지도 모르지만, 사람 일이 다 장단점이 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들국화의 재결합 가능성에 대해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지만, 대충해서 판을 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제 50줄에 접어든 로커 주찬권. 열정은 모든 것을 이긴다. 가난도, 과거가 지우는 부담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도 장애가 아니다.
"지금까지 애들 키우느라 '일'로서의 음악을 했어요. 이제부터 슬슬 내 음악을 해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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