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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스템이 만든 탐정소설, <미스터 메르세데스>



***스포일러 미량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스티븐 킹의 '첫 탐정 추리소설'을 표방한다. 오랫동안 보스턴에 살아온 작가는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을 소재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에서는 새벽부터 취업박람회에 줄을 서있던 가난한 서민들을, 훔친 메르세데스로 마구 치어 죽인 살인마가 등장한다. 살인마의 정체는 극 초반부터 밝혀진다. 어머니와 단둘이, 다소 이상한 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 이 청년은 얼핏 성실하고 모난데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에 대한 끔찍한 적의를 품고 있다. 킹은 청년이 연쇄살인마가 된 가족사를 소개하기는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누구나 괴물이 되는건 아니다.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타고난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재판을 받았다면 정신이상을 호소했을 가능성이 크다. 


은퇴한 뒤 허무의 늪에 빠져있던 늙고 뚱뚱한 형사가 주인공이 돼 사건을 해결한다는 설정은 아주 새롭진 않다. 형사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운, 그러면서 인생의 깊이를 적당히 갖춘 여인이 나타난다는 건 클리쉐다. 신경과민에 빠진 40대 여성, 똑똑하고 침착한 흑인 청소년이 형사의 조력자가 돼 범인 검거에 나선다는 건 익숙하진 않아도 독창적이지도 않다. 소설이고 드라마고, 그 숱한 범죄물에는 이미 온갖 탐정과 경찰과 범죄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티븐 킹이 마스터는 마스터다. 그리 독창적일 것 없는 요소들로 잘 읽히는 소설을 써냈다. 작가를 모르고 읽는다면, "천부적인 탐정소설 작가는 아닌데, 탐정소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럴듯한 작품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초고를 알 수 없이 바뀐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의 사례나, 킹이 스스로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말했듯 "편집자는 언제나 옳다"고 한 것을 봐도, 미국 출판계는 편집자의 권한과 능력이 무척이나 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킹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스터 메르세데스> 원고 뒤에는 킹 뿐 아니라, 킹의 능력치를 잘 아는데다가 탐정소설의 구조까지 꿰뚫고 있는 막강한 편집자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것이 '시스템'이다. 


킹이 타고난 탐정소설 작가는 아니지만, 타고난 공포 작가라는 점을 증명하는 대목이 있다. 범인이 누군가를 독살하려고 만들어둔 음식을 범인의 어머니가 잘못 먹고 죽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묘사가 후덜덜하다. 대략 아래와 같다. 


이미 너덜너덜해질 지경으로 씹힌 그녀의 아랫입술이 보인다. 윗도리 앞섶에 묻은 피가 거기서 나온 피다. 적어도 일부분은 그렇다. (...) 그녀는 대답 대신 다시 행진을 시작한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불룩 튀어나온 눈으로 천장을 잠깐 쳐다보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꺾는다. 등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가 베어링 위에 얹혀 있기라도 한 것 같다.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다시 시작된다. 살짝 막힌 하수구로 물이 빠지려고 할 때 나는 소리다. 그녀의 입이 떡 벌어지고 토사물이 뿜어져 나온다. 토사물이 철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 위로 떨어지는데 맙소사, 절반이 피다. 



킹이 설마 쥐약을 먹고 죽어나는 사람을 관찰한 경험이 있을 리는 없을텐데, 대체 이런 광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걸까. 또 이런 글을 써나갈때는 어떤 기분이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