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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를 사랑하는 방법, <자존감의 여섯 기둥>




이런 종류의 책을 잘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서인지 어쩌다 읽으면 신선한 느낌을 받곤 한다. '사회'에 대해 단 한 마디의 말도 안하는 저자의 태도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미국의 심리학자에게 그런 걸 바란다는 자체가 연목구어 같기도 하고. 




자존감의 여섯 기둥

너새니얼 브랜든 지음·김세진 옮김/교양인/512쪽/1만8000원


한 여자가 있다. 여자는 애타게 사랑을 갈망하지만, 그가 사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문난 바람둥이 혹은 유부남이었다. 여자는 어쩌다보니 결혼에 성공하지만, 역시 행복을 누리진 못한다.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에게 “나보다 다른 여자가 낫지 않느냐”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지쳐버린 남편은 이혼 서류를 내민다. 여자는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생각한다. “난 원래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직장에서 빼어난 성과를 올린 끝에 고속 승진한다. 그러나 남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가 과분하다고 여긴다. 최선울 다해도 임무를 수행할 수 없으리라 지레짐작한 그는 무의식적인 자기 파괴를 시작한다. 준비 없이 회의에 참석해 상사에게 질책 받고, 때와 장소에 안맞는 농담을 해 주변의 눈총을 받는다. 결국 사직서를 쓴 남자는 생각한다. “난 원래 무능한 사람이야.”


두 사람에게 공통된 점은 무엇일까. 미국의 심리학자인 너새니얼 브랜든(1930~2014)은 ‘자존감’(self-esteem)이라고 말한다. 브랜든은 자존감의 원리를 최초로 규명한 학자로 꼽히며, 평생을 자존감 심리 치료, 자존감 향상 프로그램을 알리는데 힘썼다. 1994년 처음 출간된 <자존감의 여섯 기둥>은 그의 대표작이다. 


먼저 자존감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기본적인 도전들에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이고, 자신에게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믿음”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해 행동으로 이끈다. 또 행동은 다시 믿음을 굳힌다. 결국 자존감과 행동은 서로를 강화한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거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된다. 이를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 한다. 필요한 것은 “자신을 파괴하지 않고 행복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다. 


물론 자존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있다. 자존감이 높으면 오만하다거나, 남들과 어울려야 하는 사회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너무 높은 자존감은 없다”고 단언한다. 이는 “너무 건강한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존감은 과시, 오만, 자랑이 아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 뛰어나다고 여기거나, 남들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오만은 오히려 자존감 결핍의 증거일 뿐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위)와 그의 대표작.



저자는 자존감을 결정하는 실천 방식 여섯 개를 소개한다. 이것이 ‘여섯 기둥’이다. 

①의식하며 살기-“상황이 안 좋긴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의식을 회피하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생각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책임을 지거나 회피하거나 하면서 산다. 의식하며 산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졌든 간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목표를 생각하는 삶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지적 능력을 즐겨 사용하며, 실수가 있으면 이를 개선한다. 내면의 욕구와 외부의 현실을 파악하고, 신비주의에 기대지 않는다. 


②자기 받아들이기-직장 상사가 비난의 의도가 없이 실수를 지적하자, 마음 속으로 “알았으니 그만 꺼저버려”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저자는 완전히 발가벗고 전신 거울 앞에 서보라고 제안한다. 모델이 아닌 이상, 신체의 결점이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결점을 좋아하란 뜻이 아니다. 신체든, 감정이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③자기 책임지기-“내가 이 모양으로 사는 건 다 나쁜 부모 때문이야.” 이 사람은 자기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있다. 주어진 조건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선택은 결국 내 것이다. 자존감 역시 누군가의 선물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나를 수렁에서 구해줄 ‘백마 탄 왕자’는 오지 않는다.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④자기 주장하기-남자는 좋은 가장이고 싶었다.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모두 참았다. 노년에 접어든 남자는 “난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잖아”라고 중얼거린다. 이 남자는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면 가장 깊은 곳의 호기심과 느낌을 외면한다면 자존감을 가질 수 없다. 내 인생은 내 것이지 타인의 것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자기 주장을 실천해야 한다. 건강한 사회는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개인의 연합이지, 얽히고설킨 한 덩어리가 아니다. 


⑤목적에 집중하기-여자는 직장에서 좋은 상담가였다. 동료들은 그녀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여자는 정작 자신의 업무엔 시간을 내지 못했다. 이 사람은 목적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우연한 사건, 우연한 전화, 우연한 만남에 휘둘려서는 좋은 성과를 낼 수도, 그 기쁨을 알 수도 없다. 인생의 목표를 세속적인 성공에 국한하라는 뜻은 아니다. 인격의 도야, 공동체에 대한 헌신도 삶의 중요한 목표다. 


⑥자아 통합하기-상대가 약속을 어기면 길길이 화를 내면서도 자기는 태연히 약속을 어긴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기만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자아 통합이란 말과 행동의 일치를 뜻한다. 평소 신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신에 대한 배신이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내면의 법정은 그 죄를 알고 있다. 



르네 마그리트, <금지된 재현>.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혼란스러운 시대’를 언급한다. “문화적 합의는 무너졌고, 중요한 역할 모델은 찾아볼 수 없다. 공적 헌신을 고취하는 일은 드물고, 오래도록 변함없던 삶의 특징들은 급변한다.” 기댈만한 공동체의 가치도, 종교적 믿음도 희미해져가는 상황에서 자존감이란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정신의 면역체계’다. 자력구제의 원칙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매우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지만, 저자의 주장을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자’ 정도로 이해한다면 나쁘게 볼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