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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월경독서>의 목수정 작가

글이나 사진으로 본 이미지 때문에 조금 '쫄아서' 만났는데, 의외로 쾌활하고 다감하심. 



목수정 작가/김정근 기자


재불작가 목수정(44)은 8살짜리 딸 칼리와 함께 경향신문사 인터뷰실에 도착했다. 목수정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방학을 맞아 엄마의 나라 한국에 온 칼리는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인터뷰 내내 얌전히 앉아 있었다. 전날 밤 열린 독자와의 만남 행사에서는 엄마의 책에 사인까지 함께 하며 판매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인터뷰실에서 목수정의 일과 삶은 섞여들었다. 


그의 독서 편력도 마찬가지다. 3년만에 낸 신간 <월경독서>(생각정원)에는 목수정이 “30여년간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읽었던 책들 가운데 근본을 뒤흔드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고 여긴 17권이 담겨있다. 그러나 목수정의 책 이야기는 여느 서평가들의 글과는 조금 다르다. 목수정은 ‘책 자체’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책을 접했을 당시 자신의 삶 혹은 저자의 삶에 눈길을 기울인다. 


모든 글이 그렇겠지만, 이번 글 역시 쉽지는 않았다. 2주에 한 편을 탈고해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연재하기로 했으나, 마감이 늦는 일이 잦았다. 그는 “각각의 책에는 그 책을 만났던 시절의 사연이 담겨있다. 그걸 음미하고 책을 다시 읽는 시간을 금방 소화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목수정이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활동을 했으며, 한국사회에 대한 진보적 시선의 칼럼을 줄곧 써왔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월경독서>에 실린 책 목록이 의아할 수도 있다. 이사도라 던컨의 자서전, 르 클레지오의 <황금물고기>, 장 그르니에의 <섬>,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 김우창의 <심미적 이성의 탐구> 등이 목록에 들어있다.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기보다는 심미적 체험을 강조하는 책들이다. 


어떻게 이런 목록이 나왔을까. 그는 답 대신 이사도라 던컨의 삶을 들려주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않았지만 니체를 인용하며 자신의 춤을 설명했고, 정규 무용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현대무용의 창시자가 된 이사도라 던컨. 입지가 탄탄해진 던컨은 프랑스, 독일 등지에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를 세웠고, 러시아혁명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으며, 계급적 차이가 드러나는 오페라 극장을 없애고 모두가 평등한 원형 극장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수정은 “던컨은 현대의 문화민주주의가 이야기하는 핵심을 이미 갖고 있었다”며 “이데올로기를 직접 말하지 않고도 우리의 삶을 개혁적으로 이끄는 부분을 읽어내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자의 삶도 목수정의 관심사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사상이 아니라 사생활에 대해 궁금해하는 목수정을 두고 남편은 “그런 사람 처음 본다”고 놀리기도 했다. 그러나 목수정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토록 어마어마한 독트린을 내놓았던 걸까.”


마르크시즘의 이론 체계를 염두에 둔다면 귀족 출신 아내를 자랑스러워했고, 그러면서도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하녀와 외도해 낳은 사생아를 외면하는 등 당대 구태의연한 부르주아식 윤리관을 보여준 칼 마르크스에 대해 실망을 느낄 수도 있다. 또 ‘덕망있는’ 기업을 경영했다고는 하지만, 여우사냥, 샴페인, 고급 포도주를 즐겼던 자본가 엥겔스의 모습에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목수정의 결론은 “모순을 갖지 않은 어떤 인간도 알지 못하며, 나 자신도 그렇다”는 것. 단지 “우리가 지닌 그 모순들이 이뤄내는 정반합의 역동적 에너지를 통해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선택이 남아있을 뿐이다.


요즘에 목수정은 과학책을 주로 읽고 있다고 한다. 과학에 대해 너무나 모른다는 컴플렉스 때문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으면서는 “인문학에서 찾아헤매던 질문에 대한 답이 많다. 진작 읽었더라면 다른 인간이 됐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나 역시 다윈의 생각만큼 눈길이 가는 것은 그의 삶이었다. ‘백수건달’이었던 다윈은 갈라파고스섬을 포함한 5년간의 탐사여행을 마친 뒤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됐다. 그것이 바로 목수정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월경’(越境)이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어 바다 멀리 나가지 않은 중세 사람들이나 명문대,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을 밟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믿는 한국인들은 모두 월경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경계를 넘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무시한다. 목수정은 “마치 마약하는 사람들처럼, 끝도 없는 경쟁사회에 빠진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유혹해 함께 괴로워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목수정은 프랑스에 살다가 2003년 한국에 돌아왔고, 2008년 다시 월경해 프랑스로 향했다.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제한된 한국어 환경에서 산다는 것은 핸디캡인 반면, “한 페이지에 딱 두 문장” 있는 프랑스어 텍스트를 접하면서 그것이 한국어 글에 섞여드는 모습을 목격하는 건 흥미롭기도 하다. 어쩌면 목수정은 자신의 글에서 프랑스와 한국의 월경 체험을 저도 모르게 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