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에 해당되는 글 2건

  1. 그래요. 멸망입니다. <멜랑콜리아> (3)
  2. <이층의 악당> 리뷰


이렇게 보니 호그와트를 닮은 클레어의 집


(스포 조금. 그런데 이런 영화에 스포가 중요한가)


안보고 못보다 보니 영화와 조금씩 멀어지려던 차, 지난 금요일 퇴근길 힘을 내 <멜랑콜리아>를 보았다. 영화와 너무 멀어져서는 안되겠고, 영화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춰서도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몇 줄 적는게 이 괜찮은 영화에 대한 도리. 


영화는 1부 '저스틴'과 2부 '클레어'로 구성된다. 1부에서 동생 저스틴은 멋진 고성에서 격식있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대형 리무진이 산길을 잘 오르지 못하는 바람에 신랑, 신부가 2시간 정도 예식에 늦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문제는 저스틴이 아마 고질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우울증에 다시 빠지면서 비롯된다. 번듯한데다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저스틴은 망설인다. 남자가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저 자기 마음 속의 우울한 담즙이 그날따라 샘솟아 마음과 몸을 바로잡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보통 '민폐'다. 모두들 축하할 준비가 돼 있는데, 저스틴 혼자 그 축하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결혼 제도에 냉소적이며, 그래서인지 이혼한 저스틴의 어머니는 딸에게 한 마디 위로라도 건낼법 하지만, 프랑수와 오종의 영화에서 냉랭한 표정 연기를 선보인 샬롯 램플링이 그런 멘토 연기를 하라고 캐스팅된 것은 아닐 것이다. 엄마는 딸에게 징징대지 말라고 딱 잘라 얘기한다. 그래도 아버지는 따뜻한 남자처럼 보이지만, 많은 따뜻한 남자가 그렇듯이 이날도 별 대책은 없다. 게다가 결정적인 순간 그냥 내뺀다. 하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파안대소중인 엄마 샬롯 램플링


결혼식을 준비한 언니 클레어, 형부 존 역시 저스틴을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존은 막대한 돈을 들인 결혼식이 망할까봐 안절부절 못한다. 그는 대놓고 속물이다. 18홀 골프장이 있는 성을 자랑하고, 처제에게 수시로 결혼식에 들어간 돈이 엄청나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처제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혼식을 주관하는 자신의 위신이 떨어지고 돈이 아까울까봐 노심초사 하는 것처럼 보인다. 클레어는 그래도 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 네가 정말 미워"라는 대사를 몇 번이고 한다. 


저스틴은 카피라이터다. 결혼식에는 그의 상사가 초대받아 참석했다. 그는 저스틴에게 승진 소식을 알린 뒤, 광고 문구 언제 떠올릴 것이냐고 웃으며 말한다. 처음엔 농담인줄 알았는데 진담이다. 그는 신입사원 한 명을 저스틴에게 붙인다. 저스틴이 어딜 가든 그를 따라다니며 문구를 받아내라고 독촉한다. 받아내지 못하면 자르겠다고 위협한다. 


저스틴은 안간힘을 쓴다. 미소를 지으려고, 우울과 비관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결혼식을 끝내려고 노력한다. 술을 마시기도 하고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기도 하고, 신랑을 안심시키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스틴의 마음은 이미 거꾸로 선 나선의 소용돌이를 따라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저스틴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영화 바깥에 있다. 바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주체못해 주변 사람에게 불편함을 안기는 여성을, 에릭 로메르는 <녹색 광선>에서 매우 잘 이해하고 묘사했다. 폰 트리에는 조금 짓궃긴 하지만, 그래도 로메르 못지 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대체 저스틴이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던 관객(사실 나)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알 수 없는 건 저스틴이 아니라 주변 사람이라고 생각이 바뀐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나' 아닌가. 



아름다운 커스틴 던스트. <스파이더맨>에선 몰라 뵈었습니다. 


2부 '클레어'는 저스틴의 우울을 우주의 변화, 지구의 종말과 연관시킨다. 시간이 흐르고 클레어 부부의 우아한 삶도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저스틴은 자기 몸 하나 가누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 됐다. 저스틴은 가까스로 택시를 타고 언니네 집으로 온다. 물론 이때도 형부는 처제의 기거를 못마땅해한다. 


저스틴의 영육이 어찌됐건, 지구는 들썩인다. 소행성 멜랑콜리아가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멜랑콜리아가 지구를 스쳐 지나갈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클레어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존은 과학자들의 말을 믿으라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그 역시도 지구가 무사할 것이라고 100% 확신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존은 집사와 함께 재난에 대비한 물건을 사재기한다. 그저 존은 믿는 척 할 뿐이다. 


멜랑콜리아가 지구로 다가오면서, 저스틴의 상태는 호전된다. 스스로 걷기는커녕, 밥 한 숟가락 뜨지 못할 정도로 기력을 잃었던 저스틴은 닥쳐온 재난 앞에서도 담담하다. 불안에 벌벌 떠는 언니에게 동생은 말한다. "지구는 사악해. 없어지더라도 아쉬울 것 없어." 클레어는 멜랑콜리아가 지구를 스쳐지나갈 것이라고, 과학자의 말을 인용한 남편의 말을 다시 인용하지만, 저스틴은 지구가 곧 멸망하리라는 걸 안다. 어떻게 아느냐하면 그냥 안다. 그리고 자신의 결혼식 때 아무도 맞추지 못한 퀴즈의 정답도 뒤늦게 말한다. 



이것이 멜랑콜리아.


일생의 결혼식을 파국으로 끝나게 한 저스틴의 우울은 멜랑콜리아의 근접 때문인가. 그런 설명은 없지만, 저스틴에게는 분명 영적인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스틴은 귀신이 나타난 걸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무당처럼, 유독 가스가 새어 나오는 걸 제일 먼저 아는 광산 속의 카나리아처럼, 그렇게 남들보다 미리 우울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저스틴은 받아들인다. 지구의 사라짐, 인류의 멸망, 자신의 죽음을. 자연에는 인자함이 없다. 등산화에 짓밝혀 죽은 개미처럼, 인간은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엄격한 불자가 아니고서야 어느 등산객이 개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겠는가. 애도한다 해도, 그 애도가 반나절을 넘기겠는가. 저스틴은 우주의 순환을 고스란히 받아들이지만, 그녀와 손을 맞잡은 클레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벌벌벌 떤다. 파랗고 아름답고 기분 나쁜 멜랑콜리아가 지구와 부딪히고 세상이 환해지면서 영화는 끝. 


이 영화는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다. 다들 아시다시피, 공식 기자회견에서 폰 트리에가 "그래요. 저는 나치에요" 운운하는 멍청하고 악랄한 농담을 하는 바람에, 폰 트리에는 그 즉시 칸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영화제에 남은 커스틴 던스트는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던스트는 정확하게 연기했고, '정말 이 사람이 <스파이더맨>의 옆집 소녀였나' 하는 생각이 드는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던스트 아니면 할 수 없는 그런 연기는 아니었다. 


폰 트리에의 농담에 대해 다시 말하자면, 아무리 '표현의 자유'니 에술가의 언행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사회적 기준을 들먹이더라도, 칸이 그를 내쫓은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비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감독이 부산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정신대를 소재로 바보 같은 농담을 했다면, 그 진의가 무엇이든 그는 사회적 지탄을 피할 수 없고 부산영화제도 그를 추방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서유럽의 분위기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나치는 농담의 소재로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을만하지 않은 역사 속 사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농담이든 비방이든 저주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강심장을 갖고 있어야 <멜랑콜리아> 같은 영화를 찍는 것인가. <안티크라이스트>를 볼 엄두는 안나지만, 폰 트리에는 분명 빼어난 감독이다. 



나도 모래 시계 구해 오면 이런 사진 찍어 주세요. 문제의 남자 라스 폰 트리에. 


영화가 흥행하든 안하든, 사실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층의 악당>은 좀 잘 됐으면 좋겠다. 비록 인터뷰하고 싶었던 한석규를 만나진 못했지만(몇 건의 인터뷰 후, 바람같이 강원도로 갔다고 한다....), 아무튼 난 이 영화가 무척 재밌었기 떄문이다. 난 한석규야말로 과소평가된 배우라고 생각한다. 손재곤 감독이 빨리 다음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우디 앨런은 현대 도시인들의 뒤틀린 심리를 빼어나게 포착하며, 아이러니한 상황을 창조하는데 일가견이 있으며, 지적인 대사를 잘 쓰고, 배우들의 연기 지도에 능숙하다. 무엇보다 이 모든 걸 웃음이라는 커다란 도가니에 넣어 녹여낸다. 그의 영화는 ‘코미디의 이상형’에 근접한다. 손재곤 감독은 두 번째 장편만으로 한국 영화계가 맛보기 힘들었던 코미디의 경지에 올랐다. 웃기면서도 씁쓸하고, 배우들에게서 최대치의 능력을 뽑아내고, 귀에 박히는 대사들이 속출하고, 현실을 환기시키고,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층의 악당>은 한국 영화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코미디 영화에 가깝다.

남편을 여의고 모녀(김혜수·지우)가 단 둘이 사는 가정집 2층에 조용한 집필 장소를 찾는다는 작가(한석규)가 세를 든다. 말이 청산유수라 계약서도 쓰지 않고 단기 임대 계약을 맺은 이 작가의 정체는 사실 이 집 어딘가에 숨겨진 보물을 찾으려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 연주(김혜수),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수시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딸 성아(지우) 때문에 작가의 계획은 차질을 빚는다. 작가는 1층을 자유자재로 드나들기 위해 연주에게 자신의 소설 속 여주인공이 되어달라면서 유혹한다.

상황은 명확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1층의 선인과 보물을 노리는 2층의 악당. 그러나 마냥 정을 주기에는 1층 모녀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데서 영화의 힘이 나온다. 연주는 고교 졸업 후 “그 시아버지 개새×” 때문에 바로 결혼해 아이를 낳은 여자다. 덕분에 30대 중반이지만 중학생 딸이 있다. 남편이 빚만 남기고 죽은 뒤 혼자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다. 술이 없으면 잠들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피폐하지만, 어디 가서 고민을 늘어놓을 상대도 없다. 의사나 2층 작가에게 하소연을 하는데 한국 남자들이란 저마다 “나이 처먹어 아저씨 되면 조언하고 충고하는 자격증 같은 걸 국가에서 발급” 받은 듯 헛소리만 늘어놓는다.

<닥터 봉> 이후 15년 만에 호흡을 맞춘 한석규와 김혜수의 연기는 이들이 얼마나 훌륭한 배우이며, 한국영화가 한동안 이들의 재능을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바른생활 사나이’로 알려진 한석규가 입에 착 붙는 욕설을 달고사는 범죄자를 연기하고, ‘건강미인’의 대명사 김혜수가 신경쇠약 주부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는 건 스크린 세계에서만 가능한 재미다.

별것 아닌 대사가 영화 속의 기묘한 상황 속에 깨알같이 박혔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웃음보가 자극받는다. “유럽연합 기준으로…” “이 사랑스러운 비관론자” “학교 다니지마. 돈이나 벌어!” 같은 대사는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다시 생각해도 웃을 수 있다. 웃음이라는 당의정으로 쌓여있지만, 대개의 좋은 코미디가 그렇듯 <이층의 악당>도 사회 현실과 맞닿아있다. 모기업의 비자금을 세탁하기 위해 만든 갤러리에서 미술품 구매비를 빼돌리는 재벌 2세, 인터넷 동영상을 통한 사생활 침해, 전염되는 현대인의 우울 등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영화는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하다. 사랑과 사기 사이, 대박과 쪽박 사이, 성공과 실패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오간다. 누군가는 “인생이 거지같다”며 울지만, 누군가는 큰 돈을 만진다. 영화의 결말도 해피 엔딩인지 새드 엔딩인지 헷갈린다. 어느 쪽이든 결론을 지어주면 더 많은 관객이 좋아하겠지만, 삶이란 원래 이도저도 아니다. 24일 개봉했다.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