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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크리스마스가 다 무슨 소용인겨. <아더 크리스마스> (1)
구상과 재료가 맞지 않아 쓰기 힘들 때가 있다. 이 글이 그랬다. 처음엔 그나마 윤곽이 있었는데 생각을 할수록 그 윤곽이 희미해졌다. 그러던차에 시와의 새 음반을 먼저 들어볼 기회가 생겼다. '크리스마스엔 거기 말고'란 노래가 글의 방향을 결정해주었다. 그때 그 노래를 듣지 않았다면 이 글은 어떻게 끝났을까. 세상의 많은 일들은 우연이 결정해주는 것 같다. 그 우연이 좋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었으면 좋겠다.

1만5000 엘프와 어수룩한 아더. 나도 저런 스웨터를 입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는데, 12월 25일 이후에는 입기 힘들까봐 차마 못사겠다.


어떤 이에게 크리스마스는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25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아더 크리스마스>는 산타클로스를 믿겠다는 아이의 동심에 병주고 약줍니다. “산타클로스는 있다”고 말해 아이를 웃게 만들더니, “그 산타클로스는 망나니다”라고 말해 아이를 당황케 합니다.

이 영화에는 북극 어딘가에 있는 산타클로스의 비밀기지가 등장합니다. 산타 가문은 대를 이어가며 전 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현재 활동 중인 20대 산타는 70년간 배달을 해온 할아버지입니다. 현대적 장비와 사고체계를 갖춘 그의 장남 스티브는 아버지가 은퇴하고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할 날만 기다리지만, 아버지는 좀체 은퇴를 선언하지 않습니다. 차남 아더는 좀 모자라 보이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큽니다. 은퇴한 19대 산타는 독설에 가득 찬 술고래로, 여전히 일할 수 있는 자신이 반강제로 은퇴당했다는 점에 늘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모두 아이들이 좋아할 구석이 없는 어른들입니다. 궁중 사극의 주인공처럼 권력욕에 가득 찬 장남, 무기력한 아버지, 노욕에 불타는 할아버지 등 가관의 산타 3대입니다. 아더 역시 크리스마스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크지만, 지나가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키는 무능력자입니다. 물론 이 영화를 제작한 아드만 스튜디오는 아이와 어른 모두 거부하기 힘든 궁극의 행복한 결말을 준비하지만, 온전히 정을 주기 힘든 캐릭터가 득실댄다는 점에서는 영국 특유의 냉소적이고 짓궂은 유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같으면 책상 정리를 저렇게 하지는 않는다.

<아더 크리스마스>식 냉소를 영화에 되돌려줘 봅시다. 아이를 ‘순수의 표상’으로 만드는 건 어른의 희망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무엇이며 산타클로스가 누구인지 알 만한 아이는 이미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회의에 가득 차 있을 겁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우리는 아이들이 믿기(믿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산타클로스 행세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순진함을 믿는 우리의 믿음에 부합하기 위해(물론 선물을 받기 위해서도) 믿는 척한다”고 말했습니다.

따져보면 연말에 벌어지는 많은 일이 그렇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들은 항상 가면을 쓴 역할놀이를 하지만, 연말이면 그 놀이의 판이 커집니다. 송년회를 하면 친분이 돈독해진다고 믿는 척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면 연인의 사랑이 돈독해진다고 믿는 척하고, 신년 계획을 세우면 그것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척합니다. 그렇지 않다는 건 그 마음이 더 잘 알 텐데 말이죠.

사실 모두들 ‘그런 척’할 때 함께 그런 척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긴 합니다. 그것이 삶의 흐름을 구획짓는 이런저런 기념일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전 곧 발매될 포크 가수 시와의 신보에 실린 ‘크리스마스엔 거기 말고’라는 노래가 자꾸 떠오릅니다. 시와는 “사람들 넘치는 그런 곳은 가기 싫어/아무 일 없다는 듯 가면을 쓴 것처럼/…/거기 말고 따뜻한 우리 집에서/그냥 나와 못다한 얘기나 할까”라고 노래합니다. 연말에 만나 못다한 얘기할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그의 2011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노욕의 산타 클로스. 이렇게 아드만 스튜디오 캐릭터의 특징은 하나같이 못생겼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