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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현희 눈물의 효과, <슬픈 쌍둥이의 눈물>




슬픈 쌍둥이의 눈물

박강성주 지음/한울아카데미/320쪽/3만4000원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를 출발해 방콕을 거쳐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던 대한항공 858기가 안다만해에서 사라졌다. 비행기에는 승무원과 탑승객 등 115명이 타고 있었다. 당국은 비행기가 공중폭파됐을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12월 1일 테러 용의자 2명을 바레인에서 체포했다. 둘은 곧바로 자살을 기도했는데, 중년 남성은 사망했으나 젊은 여성은 목숨을 건졌다. 이 여성 용의자는 12월 15일 서울로 압송됐다.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된 제13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지기 하루 전이었다. 12월 23일, 이 여성은 자신이 북한 공작원 김현희라고 자백했다.


김현희는 이듬해 1월 15일 기자회견에도 등장했다. 김현희는 북한 지도부가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비행기를 폭파하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1990년 3월 27일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고, 보름 뒤 사면됐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의 공식 개요다. <슬픈 쌍둥이의 눈물>은 이 사건을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의 측면에서 다룬 학술서다. 네덜란드 레이덴대 교수인 저자는 대한항공 858기 사건과 깊은 인연이 있다. 그는 학부 시절 통일부가 주최한 대학생 통일논문 공모전에 이 사건을 다룬 논문으로 입상했으나, 통일부로부터 논문 일부의 수정을 요구받았다. 사건의 공식 수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한 대목이었다. 저자는 수정 요구를 거부했고, 결국 수상은 취소됐다. 이후 그는 이 사건을 학문적 관심사로 삼아 석·박사 논문을 써냈다. <슬픈 쌍둥이의 눈물>은 저자의 박사 학위 논문에 바탕한 책이다. 지난해 영국에서 영문판으로 먼저 나왔고, 저자가 직접 한국어로 번역해 이번에 출간됐다.





저자는 김현희라는 인물을 둘러싼 당대의 반응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사건 당시 김현희는 대다수가 인정하는 빼어난 미모를 가진데다 미혼이었으며 20대 중반으로 젊었다. 이는 종래의 ‘테러리스트’ 이미지와 상충했다. 김현희가 ‘미개발되고 원시적인’ 사회로 여겨지는 북한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남한 남성들은 화장이나 성형에 의존해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남한 여성이 아닌, ‘오염’되지 않은 이 북한 여성에 주목했다. 김현희가 기자회견에서 눈물까지 흘리자, 이 아름답고 가녀린 모습은 ‘비행기 폭파범’이라는 인상을 완전히 대체했다.


김현희와 정부도 이를 이용했다. 정부는 김현희의 공작 물품을 공개하며 속옷까지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김현희가 처음 꺼낸 한국말은 “언니, 미안해”였다고 보도됐다. 김현희의 수기는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사랑을 느낄 때면 눈물을 흘립니다> 같이 여성성을 강조한 제목을 달았다.


김현희는 훗날 전직 안기부 직원과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이전에도 숱한 남한 남성들의 청혼을 받았다. 저자는 “전통적 의미에서 테러범이 된다는 것은 남성다움으로 무장한다는 뜻을 부분적으로 담고 있다”며 “테러범이 여성일 경우 이 특정한 개인은 젠더 규범을 위반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틀에 따라 훈육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혼은 훈육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장치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순진무구하고 아름다운 김현희를 이용한 무자비한 나라가 됐고, 남한은 그녀를 품에 안은 따스한 나라가 됐다.


지난 해 세월호 참사에서도 반복된 일이지만,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고 이후에도 유족들은 충분한 위안을 얻지 못했다. 저자는 정부의 공식 수사 발표를 인정하면서도, 몇 가지 의문점을 지적했다. 김현희의 진술에 몇 가지 모순이 있고, 북한의 동기도 석연치 않다. 88올림픽을 방해하려 했다고 하지만, 폭파 사고와 올림픽 사이의 시간 간극이 너무 커 이 사건을 올림픽과 관련짓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북한의 테러 시기는 대선 국면에서 보수적인 노태우 후보를 도왔을 뿐이다. 무엇보다 관계당국은 수색 작업을 철저히 하지 않았다. 실종자의 시신은 커녕, 블랙박스도 찾지 못한 채 금새 철수했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는 점, 즉 탑승객들이 확실한 사망자가 아니라 애매모호한 실종자로 남았다는 사실은 가족들의 불안함, 원통함을 가중시켰다. 한 유족은 “밤이면 자식이 어디선가 전화할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고, 또다른 유족은 “백 몇 명이 넘는데 (죽었다는) 아무 증거도 없다”고 말했다. ‘증거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다.


유족들의 끈질긴 요구로 인해 2000년대 들어 두 차례의 공식적인 재조사가 있었다. 사건 전모를 밝힌 유일한 증인인 김현희를 직접 조사하지 못했다는 등의 한계가 있었지만, 이 재조사에서도 당시 정부의 발표는 대체적으로 사실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다만 재조사 과정에서 당시 정부가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음을 보여주는 문건이 나왔다. 대한항공 858기 탑승객은 대부분 중동에서 일한 노동자들, 즉 정부가 그토록 치켜세운 산업역군들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고통받는 유가족들의 원을 풀고 배려하기보다는, 사건을 국내외 정치·외교 상황에 유리하도록 이용하는데 전력했다.


저자는 지난 10여년간 실종자 가족, 관계 기관 종사자 등 63명을 인터뷰하고, 사건 정보를 보유한 한국, 영국, 미국, 호주, 스웨덴 등 5개국에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그럼에도 김현희의 대면 인터뷰가 불가능했을 뿐더러, 북한쪽 정보를 전혀 얻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작업은 일정 수준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논문으로서는 실험적인 방법론을 취했다. 바로 김현희와 실종자 가족이 만나고, 연구자와 실종자의 영혼이 등장하는 단편 소설 2편을 책에 각 한 장씩 할애한 것이다. 실제 최근 국제관계학 분야에서는 학술서에서는 금기시됐던 일인칭 시점 글쓰기를 도입한 자문화기술지(autoethnography) 같은 대안적 글쓰기 방법론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소설적 상상력의 힘과 통찰을 학술서가 이용하면 안되는지 묻고 있다. 제목의 ‘쌍둥이’란 남한과 북한을 가르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