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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법치는 아름답다. <부러진 화살>

적지 않은 나이에도 수트발이 살아있는 배우 안성기.



법의 지배(법치)는 아름답다. 하지만 법률가의 지배는 아름답지 않다. 이것은 내달 19일 개봉하는 영화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 김경호(안성기)의 입장이다. 그는 말한다. “안 지켜서 그렇지 법은 아름다운 거요.”

<부러진 화살>은 2007년 재판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발사해 부상을 입힌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한 전직 교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삼았다. 공판 기록에 근거한 동명의 르포 소설이 원작이다. 인물의 성격이나 드라마에는 허구가 개입됐고,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도 한 글자씩 바꿨다.

어느 대학의 수학과 교수 김경호는 대입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가 학교와 동료로부터 따돌림당한다. 김경호는 교수 지위 확인 소송에서 패소하자 담당 판사를 따로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다가 사건을 일으킨다. 사법부는 김경호의 행위를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테러”로 규정한 뒤 엄벌 의지를 보인다. 변호사들은 깐깐하고 비타협적인 김경호의 변호를 맡길 하나같이 기피한다. 결국 노동 변호사로 활동 중인 박준(박원상)이 김경호의 변호인으로 선임된다.

한국 사법부의 무능과 권위에 대해 분노하는 김경호지만, 그는 스스로를 ‘보수’로 자처한다. 김경호는 “사회가 합의한 원칙을 지키자는 것이 보수면, 난 보수”라고 말한다. 그는 깨알같은 글씨가 적혀있는 법전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행동과 요구에 뿌리를 댄다. 법을 어기고 능멸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법관들이라고 주장한다. 스크린쿼터 지키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에 앞장서는 등 진보적 색채를 보여온 정지영 감독(65)에게는 김경호야말로 ‘참된 보수’다. <하얀 전쟁>, <남부군> 등으로 유명한 정 감독은 13년 만에 <부러진 화살>을 내놓으며 건재를 알렸다.

알콜 중독 변호사와 똘기 충만한 피고인

김경호는 법에 복종할 뿐, 법관에게 머리 숙이지 않는다. ‘법 앞에 선 단독자’로 행동하는 그는 재판과정마저 자신의 의지대로 꾸민다. 그는 검사를 심문하고, 판사를 추궁한다. 판사-검사·변호사-피고인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린다. 오랫동안 법과 법관을 동일시해왔던 관객에게 김경호의 돌출적 행동은 카타르시스를 준다. 이 영화가 처음 선보인 10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나 최근의 언론시사회에선 여러 차례 웃음과 박수가 나왔다.

실제 사건의 민감성을 고려해 <부러진 화살>은 비밀리에 제작됐다. 재판부는 교수 지위 확인 소송에서부터 사건을 공정하게 판결하기는커녕 학교에 유리한 결론을 미리 내놓은 것으로 묘사된다. 김경호의 ‘석궁 테러’도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극중 박 변호사는 김경호가 석궁으로 위협하기는 했지만 발사하지는 않았다고 변론한다. 영화는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한 김경호를 단죄하기 위해 법원과 검찰이 증거를 조작·인멸한 것으로 그린다.

진지한 소재의 영화지만,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에 위트가 있어 상업적 재미가 상당하다. 머뭇거리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경제적이고 속도감있는 편집으로 핵심 주제에 도착한다. 블록버스터의 기능적 배역을 벗어난 안성기는 50여년의 배우 관록이 묻어난 호연을 펼친다. 영화계의 대표적인 진보인사면서 <부러진 화살>에서는 ‘보수꼴통’ 판사로 등장하는 문성근은 등장하는 순간 짜증과 오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법정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는 ‘묘기’를 보여준다.

박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19세기 말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을 언급한다. 유대계 프랑스 군인이었던 드레퓌스는 죄가 없었으나, 인종적 편견과 정치적 판단 때문에 부당한 재판을 받았다.

정지영 감독은 “100여년 전 프랑스와 비슷한 일이 21세기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황당하고 슬프다”고 말했다.

만만한 판사(위)와 만만치 않은 판사(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