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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버지의 그림자, <코쿠리코 언덕에서>
내가 미아자키 하야오의 아들이라면,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었을까.

고로케를 나눠먹는 우미와 슌


아버지란 이름은 얼마나 무겁습니까.

솔직히 모든 아버지가 존경받아 마땅한 건 아닙니다.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거나 심지어 학대하는 아버지도 종종 있습니다. 유전자의 일부를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아버지를 공경하긴 힘듭니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0)라면 어떨까요.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을 내놓은 애니메이션 거장 말입니다. 그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宮崎吾朗·44) 역시 애니메이션 감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넘어설 수 있을까요.

첫번째 작품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2006)은 대실패였습니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궈놓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성에 못미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비난은 아들을 넘어 그런 아들에게 감독직을 ‘세습’시킨 아버지에게까지 돌아갈 정도였습니다.

29일 개봉하는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미야자키 고로의 두번째 연출작입니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1960년대 초반의 일본. 바다가 보이는 코쿠리코 언덕에 사는 열여섯살 소녀 우미가 주인공입니다. 뱃사람이었던 아버지는 전쟁 중 실종됐고, 어머니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봉합하고 새 나라를 만들던 일본 사회엔 ‘낡은 것을 부수고 새 것을 짓자’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우미의 학교에서도 오래된 동아리 건물을 부술 것인지를 두고 학생들 사이에 격렬한 토론이 오갑니다. 열입곱 소년 슌은 우미와 함께 역사와 추억이 깃든 건물을 보존하려고 합니다.

이 낡은 동아리 건물을 청소하는 장면은 꽤 스펙터클하다.

데뷔작의 실패 이후 절치부심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영화는 지브리 스튜디오 특유의 복고, 아날로그 분위기를 살리면서, 소년·소녀가 느끼는 첫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냈습니다. 동아리 건물을 청소하고 정리해 멋지게 재탄생시키는 대목은 꽤 스펙터클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시각적 효과보다 눈에 들어온 건 주인공들의 성격이었습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우미와 슌은 지브리 스튜디오 영화 속 그 어떤 아이들보다 부모를 그리워하고 의지합니다. 우미는 아버지가 돌아오길 그리면서 아침마다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깃발을 올립니다. 아버지가 실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하루도 빼지 않고 이 의식을 반복합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한 나머지 꿈 속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의붓부모 아래서 자란 슌은 친부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합니다.

미성년이 부재하는 부모를 찾는 건 당연하겠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전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들은 홀로 남겨졌을지언정 부모를 찾는 대신 새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아이들이 사귄 새 친구는 또래의 이성이거나 숲 속의 정령이거나 대자연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지브리 스튜디오,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년·소녀들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대신 씩씩하게 세상에 홀로 설 수 있었습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가장 불만스러웠던 점은 아버지의 그림자가 가정의 영역을 넘어 사회로까지 드리워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미와 슌을 비롯한 학생들은 동아리 건물을 보존하기로 하지만, 학교 이사장은 학생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건물을 철거하려고 합니다. 우미와 슌은 학생 대표로 이사장을 만나 그의 결정을 돌리려 합니다. 이때 우미와 슌은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듯한 자세를 취합니다. 학생이 학교의 한 주체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어 보입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모두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미와 슌의 모습에 미야자키 하야오에 억눌린 미야자키 고로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라는 질문에 미야자키 고로는 “사춘기 때는 정말 싫었다. 요즘엔 이건 내가 태어날 때부터의 운명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후계자’가 되기엔 패기가 부족한 발언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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