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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의 관계를 조종하는가

존 휘트필드 지음·김수안 옮김/생각연구소/392쪽/1만6000원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 인근의 식당을 찾았다. 두 군데가 나란히 붙어있는데 한 곳은 손님이 가득찼고, 한 곳은 파리만 날렸다. 두 곳 다 가보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로 들어갈까. 보통은 사람이 많은 식당을 찾게 마련이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물고기조차 다른 물고기가 좋아하는 물고기를 덩달아 좋아한다. 생물학자 리 듀거킨은 트리니다드 섬에 사는 거피(Guppy) 물고기로 실험을 했다. 네 개의 투명 상자 안에 관찰자 암컷, 시범자 암컷, 색이 화려한 수컷, 초라한 수컷을 한 마리씩 넣었다. 그리고 초라해 매력이 떨어지는 수컷과 가까운 곳에 시범자 암컷의 상자를 두었다. 때문에 관찰자 암컷은 시범자 암컷이 초라한 수컷을 짝으로 선택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선택 기회가 오자 관찰자 암컷은 화려한 수컷을 제치고 초라한 수컷을 택했다. 매력 없는 남자에게 여자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아름다운 여자가 임시로 그의 여자 친구 역할을 해줌으로써 또다른 여자도 끌어들이는 내용은 시트콤이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붐비는 식당, 아름다운 여자가 선택한 매력 없는 남자가 괜찮아 보이는 것은 바로 '평판' 때문이다. 


존 휘트필드는 진화생물학자이자 영국에서 과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무엇이 우리의 관계를 조종하는가>는 칭찬, 소문, 뒷담화 등으로 퍼져나가는 평판의 기능을 살핀다. 인간, 동물을 대상으로 한 각종 실험에 세상사에 대한 통찰을 더해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 원제는 '사람들은 말하려고 한다'(People will talk).


사실 칭찬이든 험담이든 타인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한 물품에 대해 평가를 남길 때를 생각해보자. 상품이 만족스러웠다면 다음번에 또 사면 되고, 불만스러웠다면 안 사면 된다. 이러한 정보는 구매자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에, 굳이 인터넷에 접속해 이런저런 평가를 남길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시간을 투자해 상품을 평가해 평판을 퍼뜨리려 한다.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볼 때, 평판 퍼뜨리기는 공동체의 원활한 유지와 관련이 있다. 선행을 장려하고 악행을 방지함으로써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평판의 힘이다. 


평판은 공동체 이전에 개인에게 좋다. 남태평양에 있는 머리 섬 원주민들은 죽은 친척을 기리는 잔치를 벌일 때 거북이 고기를 먹는다. 잔치를 여는 사람은 고기를 조달하기 위해 거북이 사냥꾼 중 한 명을 골라 일을 맡긴다. 그런데 130㎏짜리 거북이를 잡기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거북이 지느러미발은 사람의 팔을 부러뜨릴 정도로 강력하다. 그런데 힘든 과정을 거쳐 거북이를 잡아온 사냥꾼에겐 눈에 보이는 이득이 전혀 돌아가지 않는다. 돈을 받거나 남는 고기를 얻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냥꾼은 사냥에 쓰는 보트 유지비와 기름값까지 자비로 낸다. 


그러면 거북이 사냥꾼은 왜 사냥을 할까. '평판' 때문이다. 머리 섬의 여성들에게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생계를 책임질 가장'이라고 답했다. 거북이 사냥꾼이라고 답한 여성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거북이 사냥꾼은 평균보다 빨리 결혼하고 아이도 더 많이 낳았다. 위험하고 비용이 드는 거북이 사냥을 할 줄 안다는 것은 육체적 능력과 리더십을 갖고 있다는 평판을 낳기 때문이다. 


현대 도시에도 '거북이 사냥꾼'이 있다. 예를 들어 불법으로 인코딩한 영화를 인터넷에 올리거나, 외화에 입힐 한글 자막을 만드는 이들이다. 매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런 일에는 금전적 보상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과시적 생산은 과시적 소비보다 자신의 능력을 광고하는데 유리하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너그러운 행동을 한 개인은 동료들의 지지를 얻는다는 실험 결과가 많다. 심지어 이 너그러운 행동이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는 불필요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대부분의 주요 종교에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즉 '자기가 원치 않는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도덕 준칙이 있다. 인간의 공동체는 끝없고 소모적인 분쟁을 종식하고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했고, 누군가가 우리를 이용하고 해칠 것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한 힘이 필요했다. 평판은 그 주요 수단이었다. "평판 덕분에 인간의 협력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폭넓고 복잡해졌으며, 규칙과 처벌을 시행할 초월적 존재가 불필요하게 되었다."


소문을 듣고 퍼트리는 것은 인간 관계를 결속시킨다. 대표적인 것이 뒷담화다. 2004년의 어느 학술지 논문에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성인 대화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추정치가 실렸다. 술을 마시다가 자리를 뜨면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흔한 풍경이다. 타인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친구에게 나눠주는 건 그 친구에 대한 친밀감의 표현이다. 뒷담화 대상의 관계가 악화된다 하더라도, 그 관계보다 바로 눈앞에 있는 친구와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함을 보여주는 장치다. 


좋은 평판보다 나쁜 평판이 유용할 때도 있다. 목축업자, 조직폭력배, 독점을 원하는 기업은 '인정사정 없다', '폭력적이다'라는 평판을 즐기곤 한다. 인구가 희박하고 지형이 거친 곳에 있는데다가 가축 도둑의 위협에 상시 노출된 목축업자는 자신과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침입자를 죽일 수도 있다는 평판을 얻어야 한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소, 양을 치다 건너온 백인이 많은 미국 남부 사람들이 북부 사람보다 다혈질이고 범죄에 단호하다는 연구 결과는 이런 성향과 관련 있다. 범죄가 창궐하던 1980년대 뉴욕 할렘에 살았던 한 마약 밀매상은 "남한테 휘둘려서는 안되죠. 그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휘두르려 할 테니까요"라고 답했다. 경쟁 기업이 나타났을 때 어떤 기업은 손실이 생길 것을 감수하면서도 파격적인 가격 인하 전략을 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경쟁자를 이기겠다는 각오를 보여줌으로써 미래의 경쟁자가 함부로 시장에 진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관찰자가 있으면 더욱 예의바르고 친절하게 행동한다. 영국 뉴캐슬 대학교의 심리학부 교수 휴게실에는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넣고 음료수를 가져가는 상자가 있었다. 동물행동학을 전공한 멜리사 베이트슨 교수는 장난스러운 실험을 했다. 가격표 위에 사진을 붙여놓았는데 첫째 주와 셋째 주에는 꽃 사진을, 둘째 주에는 수줍어하는 여자의 눈 사진을, 넷째 주에는 호전적으로 응시하는 남자의 눈 사진을 붙였다. 휴게실 이용객 수가 주마다 다르다는 편차를 고려한 결과, 남자 눈 사진이 붙었을 때 가장 많은 돈이, 여자 눈 사진이 붙었을 때 그 다음으로 많은 돈이, 꽃 사진을 붙였을 때는 가장 적은 돈이 걷혔다. 남자 눈과 꽃 눈 주 사이의 차이는 4배 이상이었다. 누군가가 있으면 공중 화장실을 이용한 뒤 손 씻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사람들은 남의 시선에 워낙 민감하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할 때나 그 시선이 가짜일 때조차 반응을 보인다는 명확한 연구 결과가 도출되었다." 독불장군조차도 타인의 의견에 전혀 무심할 수는 없다. 


소문에 완전히 무심한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런 사람이 바로 사이코패스다. 그들은 죄책감 없이 거짓말, 도둑질을 일삼고 사회의 규범을 위반한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고, 죄가 적발돼도 후회하지 않는다. 사이코패스가 많다면 그 사회는 파멸한다. 다행히도 이런 사이코패스는 100명중에 1명 정도다. 


평판에 가장 민감한 계층은 중산층이다. 하층민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기에 평판이 어찌 됐든 신경쓸 처지가 아니다. 남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 잘 살 수 있는 상류층 역시 평판을 신경 쓰지 않는다. 경제학자 겸 작가 윌 허턴은 "큰 거래 하나 성사시키거나 1년쯤 임원 자리에 앉아 있으면 평생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금융계 고위 인사들 때문에 2008년 금융 위기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격리된 낙원'에 사는 1% 부유층은 정신과에서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사이코패스 같은 행동을 하는 셈이다.


저자는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 책은 인간이 약하고 또 악하다고 전제하고 있다. 도덕 원칙 같은 것을 스스로 지킬 리 없고, 기회만 나면 다른 사람을 등쳐먹으려 한다. 그래서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기에, 인간은 평판으로 서로의 악행을 견제한다. "평판은 누군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서로를 통제하는 데 쓰는 수단이다. 겉으론 척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회초리다."


이런 인식이 있으니 좀 듣기 거북하고 아슬아슬한 비유가 나오기도 한다. "인류사회는 팬옵티콘이다. 모든 사람이 수감자이자 간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편집증이 아닌 협력이라는 이익을 얻는다." 


휘트필드는 투명성과 실명성을 강조한다.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가 서로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개인의 자유를 위해 익명성을 보장하기보다는 서로에게 구속되도록 실명을 쓰게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평판이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진화생물학은 보통 '당위'를 강조하기보다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유용했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