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영화'에 해당되는 글 1건

  1. 조금 달콤, 많이 씁쓸한 '토니 에드만'



웃긴 것 같으면서도 우울하고, 해피엔딩 같으면서도 슬픈 '토니 에드만'. 


딸은 가족 모임에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일중독자다. 반려견이 죽은 뒤 적적함을 느낀 아버지는 예고 없이 딸이 일하는 루마니아로 찾아간다. 

새로운 계약 체결에 사력을 다하는 중인 딸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부담스럽다. 약간의 다툼 끝에 아버지는 독일로 돌아가는 척하지만, 얼마 뒤 ‘토니 에드만’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자아로 분해 딸의 친구 모임이나 직장 주변을 배회한다. 우스꽝스러운 틀니와 검은 더벅머리 가발을 쓴 토니 에드만은 매번 황당한 상황을 연출하며 딸을 당황스럽게 한다.

<토니 에드만>의 줄거리를 읽으면 일에 쫓겨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고, 부녀 간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는 가슴 따뜻한 가족극이 연상된다. 아버지의 또 다른 자아 토니 에드만의 황당한 언행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코미디 영화이기도 하다. 

<토니 에드만>은 뭉클한 가족애와 유쾌한 코미디를 통해 현대인이 되새길 만한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인기를 끌 만한 영화다. 할리우드가 2010년 <에브리씽 유브 갓> 이후 사실상 은퇴 상태였던 잭 니컬슨을 이 영화의 리메이크작으로 컴백시키기로 한 이유도 <토니 에드만>의 보편성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꺼풀 들춰보면 <토니 에드만>은 보기보단 조금 복잡하고 비전형적인 영화다. 영화는 택배 배달부 앞에서 아버지가 벌이는 기행을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배달부를 맞이한 아버지는 집 안에 동생이 있는 척하며 퇴장하고, 곧이어 토니 에드만으로 분한 아버지가 나와 택배를 받는다. 코믹하게 묘사되지 않았으면 다중인격자의 섬뜩한 기행처럼 보일 법한 상황이다.






아버지가 딸 앞에서 꾸미는 상황들도 심상치 않다. 아버지는 딸의 푸대접에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냐!”고 말했다가 금세 “농담이다”라고 정정하거나, 딸의 주요 거래처 사람들 앞에서 “딸 노릇을 대신 해줄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다”고 진지하게 말한다. 이런 ‘과격한’ 농담들은 토니 에드만으로 변신한 뒤 정도가 심해진다. 스스로 독일대사라고 거짓말을 늘어놓는가 하면, 딸의 직장 상사에게 접근해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은 착한 창녀 셴테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한 사촌 슈이타로 1인 2역을 한다는 내용의 희곡이었다. 

<토니 에드만>의 딸은 혹독한 경쟁에 내몰리다 못해 스스로를 착취하기에 이르고, 아버지는 맨정신으론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생각에 토니 에드만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불러낸다. 토니 에드만은 서구 상류층 기업인의 관습에서 미묘하게 어긋난 언행으로 조금씩 상황을 반전시킨다. 

조금씩 코너로 몰리던 딸이 즉흥적으로 꾸민 누드 파티는 영화 결말부 하이라이트다. 모두를 당황시키는 이 해프닝은 딸이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목표의 파괴와 새로운 출발을 암시한다.

딸이 아버지의 기행을 이해하는 걸 넘어 심지어 그를 뛰어넘는 일을 벌였다는 점에서 <토니 에드만>은 해피엔딩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쓴 채 허탈하고 지루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기다리는 딸의 표정은 여러 가지 뉘앙스를 안기는 결말이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며, 서구의 각종 언론들에게서 ‘올해의 영화’로 선정됐다. 여성 감독 마렌 아데가 연출했다. 16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