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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풍기문란을 허하라, <음란과 혁명> 제목이 흥미가 돋운다. 전자를 분석하고 후자의 희미한 가능성을 찾는데 집중한다. 음란과 혁명권명아 지음/책세상/412쪽/2만3000원 ‘예술인가 외설인가’라는 홍보 문안을 붙인 영화, 소설은 대체로 외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내 오랜 짐작이었는데, 국문학자 권명아는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과 외설의 구분은 음란물에 대한 일제 시대의 탄압에서 시작해 정비석, 유현목, 마광수, 장정일 등을 옭아맸다. 최근에는 김기덕 감독의 신작 가 “주제와 폭력성, 공포, 모방위험 부분에서 청소년에게는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직계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등 비윤리적·반사회적인 표현이 있다”는 이유로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이 등급을 받은 영화는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할 수 .. 더보기
비극은 슬프지 않다, <비극의 비밀> 농담 아니고, 정말 조만간 희랍 비극 읽기에 도전 예정. 마침 집에 챙겨둔 책이 있었음. 예전에 강대진 선생 책 (그린비) 읽은 뒤 에 돌입한 바 있음. 기대. 베르나르디노 메이, , 1654년, 이탈리아 시에나 살림베니 궁전 소장.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죽이고 있다. 그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는 이미 피를 흘린 채 쓰러졌다. 오레스테스의 뒤에는 복수의 여신 둘이 나타났다. 비극의 비밀강대진 지음/문학동네/400쪽/2만2000원 서양고전학자인 저자는 ‘비극’이 ‘슬픈 이야기’라는 통념을 반박한다. 실제로 오늘날 ‘비극’으로 번역된 희랍어 ‘tragoidia’에는 ‘슬프다’는 뜻이 들어있지 않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독자들이 특히 희랍 비극을 읽을 때 등장인물이 처한 불행과 겪는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면 핀트가 .. 더보기
갑을관계는 관존민비로부터? <갑과 을의 나라> 갑과 을의 나라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304쪽/1만3000원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생산성’은 놀랍다. 지난 한 해 동안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은 을 비롯해 6권이다. 올해도 1월 나온 를 시작으로 신작 까지 벌써 3권이다. 2~3달에 한 권씩 책이 나오는 셈이니, ‘(독자가) 읽는 것보다 (필자가) 쓰는 것이 빠르다’는 말이 나와도 무리가 아니다.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하는 녹취록이 공개되고, 검찰이 남양유업 본사를 압수수색했음을 알리는 경향신문 기사는 5월 7일자에 게재됐다. 각 언론들은 이때를 기준으로 한국 사회의 ‘갑을 관계’에 대한 기획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남양유업과 대리점주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는 사실은 1~2월 간간이 보도됐으나, 이때는 갑을 관계에 대한 사회적 관.. 더보기
어느 짐승의 삶, <러스트 앤 본> *스포일러 적정량 함유 이 남자는 한 마리 짐승이다. 싸우고 섹스하고 자고 다시 싸우고... 그 외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물론 싸운다고 해서 아무하고나 싸우는 건 아니다. 이 남자는 넘처나는 남성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할 뿐이다. 한때 복싱 선수였던 그는 프랑스로 건너와 경비원 일로 연명하는 사이에도 운동을 쉬지 않는다. 그리고 뒷골목의 불법 격투기판에 끼어든다. 돈은? 이겨도 몇 푼 되지 않는다. 이 남자는 그저 때리고 맞고 피흘리는게 즐겁다. 고향 어딘가에 남은 듯한 아내는 영화 속에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남자에겐 어린 아들이 있지만,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명감 따위는 갖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남자에겐 싸울 때 쓰는 에너지 말고도 다른 에너지가 남아 있다. 그래서 괜찮아 보이는 .. 더보기
어떻게 늙을 것인가, 대니얼 클라인 인터뷰 미국의 교양 철학 저술가 대니얼 클라인(74)은 인공치아 수술을 권유받은 뒤 생각했다. “이 나이에 그런 짓을 꼭 해야 하나?” 클라인은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청춘을 ‘이식’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대신 ‘노인다운 노인’이 되길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할까. 다행히도 2000여년 전에 만족스러운 노년을 보내는 방법을 찾아낸 철학자가 있었다. 클라인은 사람들이 아주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그리스 이드라 섬에서 에피쿠로스의 책을 읽으며 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결과가 (책읽는 수요일)이다. 이 책에서 그는 마음이 흔들리고 운수에 끌려 방황하는 청년보다,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느긋한 노년을 예찬한다. 인생을 살펴보기 좋으며, 숨가쁜 야망에 휘둘릴 필요가 없으며, 대가 없는 우.. 더보기
빵가게 습격 제목은 물론 아주 오래 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에서 따왔다. 그러고 보면 무라카미는 제목을 참 잘 짓는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제목만 봐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인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나는 빵가게에 자주 간다. 이틀에 한 번은 간다. 아침에 빵을 먹기 때문이다. 물론 습격 같은 걸 한 적은 없고, 조용히 들러서 빵을 고른 뒤 값을 치르고 나온다. 아무튼 그렇게 자주 빵가게에 다니다보니,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빵을 사야할지 결정하는 것은 나의 하루에서 중요한 일이 되었다. 카페 베네보다 많을지도 모르는 ㅍ사 빵을 매일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난 ㅍ사의 빵은 식빵을 빼고는 거의 사지 않는다. 다만 이태원 블루스퀘어에 뮤지컬을 보러갔다가 근처에 있는 ㅍ빵.. 더보기
살인이 드러내는 삶의 비루함, 마쓰모토 세이초의 이야기들 두 군데 출판사(북스피어, 모비딕)에서 연합해 내고 있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책들을 몇 권 읽었다. 는 간략히 소개한 적이 있고, 이번에 더 읽은 것은 , , 다. 앞의 두 권은 장편, 마지막 것은 단편집이다. 흔히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으로 불리는 마쓰모토는 41세에 뒤늦게 작가로 데뷔해 이후 40년 동안 100여편의 장편, 1000여편의 중단편을 써낸 다산의 소설가다. 인간인 이상 그 작품들이 다 훌륭할 수는 없을테고, 한국에서는 그 중 괜찮은 것들이 소개되는 중일 것으로 짐작한다.(101편의 영화를 찍은 임권택 감독도 80년대 이전 영화에 대해선 손사래를 친다.) 이번에 읽은 책들도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마쓰모토 세이초 센세(1909~1992) 그 중 가장 괜찮았던 것은 . '짐승의 길'이란 짐승.. 더보기
일한만큼 받을까, 살만큼 받을까,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짧은 분량, 쉬운 서술로 '비주류 경제학'(이지만 언젠가는 주류가 되라!)의 이론들을 전한다. 리뷰에도 자세히 썼지만, 특히 임금에 대한 정의가 흥미로웠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가 무슨 뜻인지 이제서야 대략 짐작.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류동민 지음/웅진지식하우스/279쪽/1만3000원 경제학은 깔끔하다. 가격 형성 과정을 떠올려보자.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내린다. 수요와 공급의 선이 엇갈려 가격을 결정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그래프는 수학적으로 명쾌하고 시각적으로 단정하다. 그런데 우리 삶은 경제학처럼 깔끔하지 않다. 오히려 빈 틈이 많고 너저분하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을 때면 시장조정 과정을 통해 균형이 회복된다”는 표현을 살펴보자. 이 문장 속 ‘균형.. 더보기
의견과 현상 먼저 좀 뜬금없어 보이는 비유. 스릴러 영화에 등장하곤 하는 연쇄살인마들은 종종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부른다. 테크닉의 독창성, 행동의 과감함 혹은 무모함, 그리고 삶에서의 무용함 등 어찌 보면 살인과 예술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누구라도 그 기괴한 살인은 예술이 아님을 알고 있다. 대단한 미학 이론을 배우지 않았다해도, 그저 직관적으로 '안다'. 요즘 인기있는 예술가, 아니 살인자 한니발 난 요즘 언론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한다. 언론에서 헷갈리는 건 '예술과 살인'이 아니라 '의견과 현상'이다. 특정한 정파 혹은 이익집단의 목적을 위해 복무하는 기관지가 아니라면, 언론은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의견을 고루 청취할 필요가 있다. 그 아무리 보수적인 언론이라도 진보적.. 더보기
599만년의 체험에서 무얼 배울까, <어제까지의 세계> 거의 모든 일간지의 북섹션에서 이 책을 톱 리뷰로 다루었다. 제목도 한결같이 "전통사회에서 배운다" 정도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전통사회를 무조건 낭만화해 바라보는 건 아니다. 어찌 보면 사실 새로운 내용은 없는데, 읽기 쉽게 잘 쓰여졌고 사례도 풍부하다. 어제까지의 세계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강주헌 옮김/김영사/744쪽/2만9000원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이 대단히 자의적이고 심지어 폭력적이라는 사실은 일찌감치 지적돼 왔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1937년 브라질의 내륙 지역에서 서구의 ‘문명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개인’들을 만난 뒤, 문명과 미개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체계에서 서로 관계 맺고 있음을 발견했다. ‘문명권’에 속한 서구 학자로서 펴낸 참회의 기록이 였다.. 더보기
넌 좋아하니, 난 아니란다,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는 군대에서 읽었다. 지금은 절판된 민음사 판본도 아닌, 출판사와 역자가 기억나지 않는 야리꾸리한 판본이었다. 읽긴 읽었는데 뭘 읽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다가 검열 시간에 간부에게 책을 빼앗겼다. 표지에는 "예술인가 포르노인가" 운운하는 글귀가 쓰여져 있었던 것 같다. 문학동네 판본을 입수한 김에 를 다시 읽었다.(여기에도 "에로티시즘 혹은 포르노그래피"라고 써있다!) 음...그러고 보니 난 를 읽은게 아니었다. 예전의 그런 번역으로는 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거다. 원문을 알 수는 없지만, 거의 매 페이지마다 번역자의 노고가 뚝뚝 묻어난다. 아마 예전에 읽은 그 번역은 문학동네 판본에 비하면 구글 번역기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런 소설을 읽을만한 한글로 바꾸어준 역자에게 감사한다. .. 더보기
일중독자와 포르노배우의 유사성,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완전히 새로운 통찰은 아니지만, 신랄한 비유가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나의 경우는 리뷰가 책의 분위기를 닮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리뷰의 표현도 신랄해졌다.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장혜경 옮김/로도스/212쪽/1만4000원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당신이 듣기에 거북살스러운 비유일지도 모르겠지만, 독일의 철학자 스베냐 플라스푈러는 당신이 포르노 배우 같다고 말한다. 이 30대 후반의 여성 철학자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욕망, 탈진, 중독, 우울증 등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써왔다고 한다. 왜 내가 포르노 배우인가. 새벽부터 무거운 몸을 일으켜 만원 지하철에 우겨넣은 뒤 직장으로 달려간 내가, 담배 피고 화장실 갈 시간을 아껴 일한 내가, 10분만에 점심 식사.. 더보기
축구 끊을까, 수아레즈의 '이빨 사건'을 보고. 어제밤의 첼시-리버풀 경기의 심리적, 신체적 후유증으로 시즌 끝까지 축구를 끊는 걸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어제의 (안티)히어로는 리버풀의 수아레즈. 전반에 별 활약이 없던 그는 동점 상황에서 어이 없는 핸들링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헌납하더니, 첼시 진영에서 몸싸움을 벌이던 수비수 이바노비치의 팔을 물어뜯고(!!!), 후반전 추가 시간의 추가 시간이 흐르던 마지막 순간 기가 막힌 버저 비터 헤딩골을 넣어 기어이 동점을 만들었다. 안필드가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가운데 중계가 마무리 됐다. 2:2 동점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너무나 극적이고 또 어이가 없기도 해서 대체 경기가 언제 끝났는지, 시작은 한 것인지, 아니 이 경기가 열리기나 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멍한 상태로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리버풀의 수아.. 더보기
대통령 선거? 구글에 물어봐,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내게 과학책 읽기는 늘 힘에 부친다. 그래도 이 책은 최첨단 이론을 소개하면서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었다.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정하웅·김동섭·이해웅 지음/사이언스북스/400쪽/2만2000원 구어의 시대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인기 많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구어적 특성을 보인다. 글투가 일상의 대화를 닮았을 뿐 아니라, 발화가 즉각적이고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문어의 보루였던 책도 이제는 구어로 만들어지는 추세다. 고독한 저자가 자신의 집필실에 틀어박혀 하얀 종이 혹은 워드 프로세서와 대면해 한 줄씩 써내려가는 건 ‘고전적’ 풍경이다. 요즘의 많은 책들은 대중 강연을 녹취한 후 가공을 거쳐 출간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친근한 말투를 그대로 살린 ‘힐링’ 서적, 이제는 ‘멘토’.. 더보기
영어와 한국어, 사투라외 표준어는 평등하다, <모든 언어를 꽃피게 하라> 쉽고 재미있게 잘 읽힌다. 그러나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언어인 영어를 모국어로 삼은 저자가 '언어의 자유시장' 정도로 해석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니 다소 배알이 꼴리는 부분도 있다. 모든 언어를 꽃피게 하라로버트 레인 그린 지음·김한영 옮김/모멘토/498쪽/1만9000원 뼈째회, 늘찬배달, 누리사랑방, 교감지기, 똑똑전화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원을 살피면 그 뜻이 짐작가는 것이 있기도 하고,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단어도 있다. 이 말들은 각각 세꼬시, 퀵서비스, 블로그, 솔 메이트, 스마트폰 등에 대해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순화어’다. 아름다운 고유어를 널리 쓰이게 하겠다는 의도야 이해하지만, 언어는 언중에 의해 사용되어야 언어다. 순화어로 제시된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주변.. 더보기
자유의지는 지니어스 서비스에 있다, <컬처 쇼크> 이번주엔 프런트가 아니라 다른 면 톱기사. 덕분에 분량이 평소의 절반. 컴퓨터 과학자들이 인터넷의 영향력에 대해 부정적인 멘트를 많이 해서 좀 의외였는데, 나도 대체로 그런 시각에 동의 컬처 쇼크재레드 다이아몬드 외 지음·강주헌 옮김/와이즈베리/392쪽/2만원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출판사 대표인 미국인 존 브록만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주소록”을 갖고 있다. 그는 1996년 엣지 재단을 설립해 인문학, 과학, 예술, 사업을 막론하고 두루 뻗은 인맥을 포섭했다. 엣지 재단은 특별 강연회와 연례 만찬회를 열어 이들의 교류를 주선하고, 그곳에서 생산된 지식을 세상에 전한다.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재레드 다이아몬드, 대니얼 카너먼 등이 엣지 재단의 회원이다. 는 엣지 재단이 펴내는 ‘베스트 오브 엣지.. 더보기
로저 에버트의 마지막 일기 2013년 4월 2일 게재된 로버 에버트(1942~2013)의 마지막 글. 일부 축약해 급번역. 원문은 여기(http://blogs.suntimes.com/ebert/2013/04/a_leave_of_presense.html) 미국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 감사합니다. 46년전이었던 1967년 4월 3일, 저는 시카고 선 타임스의 영화 평론가가 됐습니다. 여러분 중 몇몇은 제 리뷰와 칼럼을 읽었을테고 제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을테죠. 어떤 분들은 제 텔레비전 쇼, 책, 웹사이트, 영화제, 에버트 클럽 뉴스레터를 보기도 했을테고요. 어떤 방식으로든 여러분은 저를 찾아주셨고, 평론가가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독자가 돼주셨습니다. 기쁘고 감사합니다. 평균적으로 저는 1년에 200편 이상의 리뷰를 썼습니다. 이 .. 더보기
사진에 대한 3가지 시선, <지속의 순간들><한번은><전쟁교본>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이번엔 사진에 대한 책 3권을 잇달아 읽었다. 시작은 제프 다이어의 (사흘)이다. 영국의 작가 제프 다이어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번역되지) 않은 사람인데, 이 책을 읽어보면 뒤늦지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유명한 보르헤스의 '어느 중국 백과사전' 분류를 인용하면서 시작하는 이 책은 20세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임의로 분류하고 해석한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 '임의'다. 누가 폴 스트랜드, 워커 에반스, 도로테아 랭, 안드레 케르테스, 다이앤 아버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진을 작가별, 시대별이 아니라 눈먼 거지, 손, 벤치 등의 소재를 다루는 방식으로 분류해 해설할 생각을 했겠는가. 다이어는 자신의 영감 넘치는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물.. 더보기
감옥에 가려는 아이들, <오늘, 우리는 감옥으로 간다> 청소년책인지 모르고 집었는데, 잘 읽히고 감동도 있다.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시위 문화에 대해 느끼는 바도 생기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저녁 뉴스 시간에 맞춰 시위를 계획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오늘, 우리는 감옥으로 간다신시아 Y 레빈슨 지음·박영록 옮김/낮은산/248쪽/1만5000원 한 사회가 오랜 시간 다져온 생각이나 제도 따위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바깥 세상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해도 마찬가지다. 이권을 지키기 위한 주류의 저항 때문이든, 낡은 습속을 벗기 싫어하는 보수적 사람들 때문이든, 세상의 혼란을 두려워하는 민초들 때문이든. 그래서 낡은 틀이 바뀌는데는 새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땀, 심지어 피가 필요하다. 여기서 ‘사람들’이란 대체로 법적인 성인을 가리킨다. 허나 이렇게 다가올 .. 더보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장고: 분노의 추적자> (스포 좀 있음) 그럭저럭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았던 장고의 아내 구출작전이 망한 건 닥터 슐츠의 어처구니없는 돌발 행동 때문이었다. 원래 슐츠는 독일인답게 참으로 냉철한 사람이었다. 능숙한 현상금 사냥꾼인 그는 장고가 가진 킬러로서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았고, 어린 아들과 함께 있는 목표물을 죽이길 서슴지 않았으며, 적의 기습을 정확히 예상해 매복을 할 정도로 통찰력이 뛰어났다. 어딜 가도 적의 행동을 파악하고 예상해 그에 딱 맞는 행동으로 결과를 얻어내는 사람이었다. 성노리개 노예로 붙잡혀 있는 장고의 아내 브룸힐다를 구하기 위해 캔디랜드에 들어간 슐츠와 장고. 둘은 흑인 노예들의 막싸움인 만딩고 선수를 사기 위해 들른 것처럼 꾸민 뒤, 슬쩍 브룸힐다까지 적당한 가격에 사오려고 한다. 그러나 칼빈 .. 더보기
자살 혹은 순교, <신과 인간> 애 수록된 글 빛을 저렇게 찍어보고 싶다. 1996년 3월 17일 새벽, 알제리 산골 티브히린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이슬람무장단체 괴한들이 들이닥쳐 7명의 수사를 납치했다. 괴한들은 체포된 동료와 수사를 교환할 것을 요구했다. 5월 23일, 이슬람무장단체는 공식성명을 통해 이틀전 수사들을 죽였다고 발표했다. 알제리 정부는 31일 메데아의 한 길가에서 수사들의 수급을 발견했다.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프랑스의 배우, 감독인 자비에 보부아가 연출한 은 이 사건을 다룬다. 허나 보부아는 사건의 전말이나 책임 소재 규명, 종교적 근본주의자의 만행 고발,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 분석, 복잡한 국제 관계의 해설 같은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 묘사한 전후 상황을 믿는다면, 수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더보기
인간의 두뇌는 진화하지 않았다. 언어와 음악이 진화했다, <자연모방> 자연모방마크 챈기지 지음·노승영 옮김/에이도스/270쪽/1만6000원 (원제 Harnessed·‘안장을 씌운다’는 뜻으로 언어·음악이 인간 뇌에 꼭 들어맞음을 비유함)의 저자는 인간 청각의 중요성이 시각에 비해 과소평가돼 왔다고 말한다. 우리는 대개 눈으로 세상을 파악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귀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는 뜻이었다. 과연 그랬다. 출근길 지하철 빈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귀를 열어보았다. 객차내 안내방송은 수시로 정차역을 알려주었다. 열차가 레일과 마찰하는 소리의 크기에 따라 역에서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정도, 속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문이 열린 뒤 들리는 발자국 소리의 크기는 역별 승객수에 비례했다. 암흑 속에서도 출근길 지하철의 풍경은 선하게 그려졌다. 책에는 이런 예도 나온다... 더보기
국가의 아들들, <스카이폴> 제25호에 수록된 글 제임스 본드와 애스턴 마틴. 본드는 국산차를 사랑합니다. 1962년 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지난 50년간 대중을 즐겁게 했던 영화 속 스파이 제임스 본드에게 부모가 있었던가. 물론 모든 인간은 누군가의 자식이기에, 본드에게도 부모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 어느 관객이 본드의 나이든 부모를 궁금해 하겠는가. 본드에겐 젊고 매력적인 본드걸이 수없이 많은데. 그런데 2012년 나온 23번째 공식 제임스 본드 영화 은 본드의 부모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꺼낸다. 영화 초반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동안 ‘자체 휴가’를 가진 뒤 소속기관인 MI6에 복귀한 본드는 다시 실전에 투입될 수 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체력 및 심리 테스트를 받는다. 심리 테스트는 검사관이 단어를 제시하면 본드가 연상.. 더보기
레고 듀플로와 레고. 아이는 자란다. 오늘 아이가 아침을 먹고 난 식탁을 보고 조금 놀랐다. 닦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식탁이 깨끗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아침 등원을 내가 책임지기 시작한 것은 약 1년전 쯤이었다. 난 꽤나 긴장했다. 나 하나 씻고 옷입고 먹고 뛰쳐나가기 바쁜 것이 보통 직장인의 아침 아닌가. 거기에 아이까지 챙겨서 어린이집(지금은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니. 밥 먹는 것은 그중에서도 큰 일이었다. 아이는 비교적 밥을 잘 먹는 편이지만,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먹는 속도가 느리고 때론 투정도 한다. 처음엔 거의 떠먹여주었고, 아이가 혼자 먹는데 익숙해진 뒤에도 식탁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식탁만이 아니라 자칫하면 옷까지 엉망이 됐다. 가재 수건을 목에 하나 걸고 가슴팍에 하나 받치는 것이 필수였다. 음식은 식탁엔 물론, 부엌 바닥.. 더보기
숲 속의 미녀가 잠들어야 했던 이유,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 이번엔 생각보다 읽기가 훨씬 어려웠다. 한 문장 한 문장 뜯어보면 딱히 어려운 말은 없는데, 좀처럼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프로이트의 글들을 읽을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오이겐 드레버만 지음·김태희 옮김/교양인/568쪽/2만8000원 따져보면 동화엔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인어공주는 왜 그리 어리석은가. 뭍의 왕자님으로부터 사랑을 얻어낼 확률이 사랑하는 가족, 타고난 육체, 아름다운 목소리와 바꿀만큼 크다고 생각하는가. 백설공주의 계모는 정말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확언을 들은 뒤에야 살육을 멈출 계획인가. 당장 먹을거리도 없는 심 봉사는 대체 어디서 구하겠다고 공양미 삼백석 타령을 하는 걸까. 현대인의 시선에서 보면 답답해 속이 터질 .. 더보기
조기 유학의 허와 실, <그랜드 투어> 도판이 많고, 서술이 평이해 읽기가 수월했다. 그랜드 투어설혜심 지음/웅진지식하우스/412쪽/2만3000원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단지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현대인은 다독가다. 지금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시대다. 한국에서도 해외여행은 30년전만 해도 특권에 가까운 일이었는데, 요즘은 동남아 정도라면 제주도 못지 않게 쉽게 갈 수 있다. 서유럽인들은 한국인들보다 이른 시기에 해외여행에 의미를 부여했다. 조선 시대에만 해도 의미있는 경험을 쌓을만한 외국이라고는 중국밖에 없었을테지만, 같은 대륙에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진 여러나라가 오밀조밀 붙어있는 서유럽에는 갈 곳이 많았다. 고대 로마의 부자들은 시골이나 .. 더보기
어느 일중독자의 삶, <제로 다크 서티> (약스포) 의 티져 포스터 거친 비유가 되겠지만, 가 라면 는 다. 전작이 특정한 정서의 핵심을 단순한 줄거리 안에 밀도 있게 담아냈다면, 이어진 작품은 확장된 서사 구조 안에 그 정서를 고르게 녹였다. 가 서울 서북부 단독 주택가의 밤을 맴돈다면, 는 중국에서 시작해 한반도 서해안을 거쳐 반도 남부를 종으로 가로지른다. 는 이라크의 도심과 사막, 미군 기지를 오가는데, 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거리, CIA 비밀기지, 병영, 미국의 워싱턴DC, 버지니아의 CIA 본부 등을 포괄한다. 전작의 성공에 고무돼 스케일을 턱없이 키웠다가 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정한 사이즈에 맞는 이야기, 정서가 있는데, 그 사이즈를 키워버리면 이야기는 흐물흐물, 정서는 묽어진다. 그러나 두 영화의 감독인 나홍진과 캐서.. 더보기
시대와 사람의 클래식 음악,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클래식 분야의 교양서가 종종 나오지만, 만족스러운 책은 드물다. 향유층이 넓진 않지만, 그들의 취향이 까다로운 분야에선 종종 그런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꽤 만족스러웠다. 클래식 인문교양서로서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 언급될만하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문학수 지음/돌베개/384쪽/1만8000원 음악을 하거나 듣기 위해서는 음악만 알면 되는걸까. 얼핏 생각하면 그런 것 같다. 음악가는 좋은 연주를 하면 되고, 청취자는 열심히 들으면 된다. 음악 바깥에 무엇이 있는가. 실제로 “단지 음악을 했을 뿐”이라는 답한 이가 있었다. 베를린 필의 리더였으며 아마도 20세기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지휘자였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었다. 자발적으로 나치에 입당해 성공가도를 달렸던 그는 전쟁 이후 자신을 심문한 미군 장.. 더보기
당신은 무엇을 팔 수 있는가, <장사의 시대> 잘 고르지 않는 종류의 책인데 이번에는 과감하게 골라봤고, 꽤 재미있게 읽었다. 영미권 저널리스트들의 책이 흔히 그러하듯 많은 이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고 명쾌하게 정리했는데, 상당히 냉정한 현실인식에 기반해 있다. 장사의 시대필립 델브스 브러턴 지음·문희경 옮김/어크로스/348쪽/1만5000원 평생을 세일즈맨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60대 남자 윌리 로먼은 최근 의기소침해졌다. 일거리는 줄어들었고, 두 아들 비프와 해피는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급기야 직장상사는 로먼을 해고하고, 비프 역시 일자리를 구하는데 실패한다. 윌리 로먼과 두 아들은 화해를 위한 저녁 자리를 갖지만, 다시 말다툼만 시작한다. 이런저런 감정의 굴곡 끝에 비프와 화해한 로먼은 자신의 생명보험금을 아들의 사업자금으로 내주기 위.. 더보기
콩고기 버거를 먹어봐야 소용없다고? <채식의 배신> 논지 자체는 흥미로웠는데 서술이 다소 장황한 편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하고 싶은 말, 무엇보다 울분이 넘쳐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해보도록 하자. 왠지 저자를 실제로 만나면 어떤 사람일지 눈에 떠오르는 것 같다. 채식의 배신리어 키스 지음·김희정 옮김/부키/440쪽/1만5000원 20년간 고기는 물론 생선, 계란, 우유, 꿀 등도 일절 먹지 않는 극단적인 채식주의자, 즉 비건으로 살아온 리어 키스는 어느 날 유명한 중국계 미국인 기공(氣功) 선생을 찾았다. 기공 선생은 키스의 맥을 짚은 뒤 말했다.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군요. 기가 전혀 없어요.” 키스가 동물들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고기든 생선이든 먹지 않는다고 간신히 말하자, 선생은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 건 자연의 이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