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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중 강론 모음 4박5일간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일정이 마무리됐다. 교황은 방문하는 곳마다 강론, 기도를 했고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새겨볼만한 말씀을 남겼다. 교황의 강론을 모두 정리했다. (한국어 번역의 유려함에도 감탄했다. 밑줄은 내가 그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연설 대통령과 정부 공직자들과 외교단과 만남, 서울, 청와대, 2014년 8월 14일.​​ 대통령님, 존경하는 정부 공직자들과 외교관 여러분, 친애하는 벗들이여,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 오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게 되어서, 또 무엇보다 한국의 국민들과 그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의 아름다움을 접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이 민족의 유산은 오랜 세월 폭력과 박해와 전쟁의 시련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대.. 더보기
또봇 vs 파워레인저 혹은 매뉴얼의 중요성에 대해 아이는 뽀로로, 타요, 폴리를 거쳐 또봇의 세계에 입문했다. 또봇은 남자 아이들의 로망인 변신 자동차 로봇이다. 지난해 연말에는 부동의 1위였던 레고를 제치고 대형할인점 완구 판매 1위에 올랐다는 소식도 있었다. 또봇은 꽤 인기가 있어 어느덧 14시즌까지 방영됐으며, 얼마전에는 여름방학 특별판이 나오기도 했다. 아이는 요즘 파워레인저를 본다. 또봇은 "시시하다"고 했다. IPTV에 무료로 나와있는 시리즈를 차례대로 보는데, 캡틴포스를 독파했고, 요즘은 미라클포스를 보고 있다. 케이블 어린이 채널에서는 다이노포스 시리즈를 방영중이다. 그러나 오늘 하고픈 말은 컨텐츠가 아니라 그 부가 상품에 관한 것이다. 아이는 또봇 장난감을 꽤 가지고 있다. 또봇X, 또봇Y, 또봇Z, 또봇W, 또봇D, 또봇R, 쿼트란, .. 더보기
예술은 언제나 미래다, <레트로 마니아> 주제가 뚜렷하고 사례가 풍부하며 표현이 신랄하다. 영미권 대중문화 평론가 특유의 현란한 문체가 살아있다. 대중음악, 나아가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관심있는 이라면 읽어볼만하다. 70년대 후반 펑크 폭발을 주도한 클래(위)와 섹스 피스톨스. 로큰롤 명예의전당에 헌액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두 밴드의 반응은 상이했다. 클래시의 믹 존스는 이마가 벗어지고 검은 양복을 입은 채로 "45년간 조직에 성실히 복무한 공로로 감사장을 받으려고 구부정한 자세로 발을 질질 끌며 연단에 올라가는 회사원" 같이 시상식 무대에 올랐다. 반면 섹스 피스톨스는 초대장을 받자마자 "로큰롤과 명예의 전당은 오줌 자국에 불과하다"고 반응했다. 레트로 마니아사이먼 레이놀즈 지음·최성민 옮김/작업실유령/456쪽/1만8000원 2006년 .. 더보기
서촌에서 '장난질'을 목격하다 태고 적에 수성동 계곡 부근을 산책하다가 이런 걸 목격했더랬다. 이런 장난. 또 이런 장난. 준법 정신이 투철한 시민이었다면 차선에 장난을 치거나 조상님들이 노니신 바위에 불경스럽게도 나체의 인간을 얹어두는 풍경에 대노하여 당장 관공서에 신고를 했겠지만, 난 천성이 게을러 그냥 사진만 찍고 넘겨두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행위들이 다 누군가의 철저한 계획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으니. 이 계획에 포함된 한 관계자는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이 사진을 보고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지 못한 그 이발사처럼 속으로 끙끙 앓기도 하고 또 자신의 계략이 맞아떨어진 것을 알고 쾌재를 부르기도 하고 아마 그랬다. 문화부로 전입온 뒤, 그 간악한 계획의 전모를 파악하고 아래와 같은 기사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 더보기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 <저스트 키즈> 구로사와 아키라의 자서전을 읽은 김에 예술가의 자서전을 좀 더 들춰보고 싶어졌다. 서가를 둘러보니 패티 스미스의 가 눈에 띄었다. 다 읽고 난 지금, "참 잘 챙겨두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동안 이 책을 읽지 않았던 이유는 패티 스미스의 음악에 대해 잘 모르거니와, 히피즘에 대해서도 별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스미스가 이 책에서 한때 연인이었던 로버트 메이플소프와의 관계를 주로 다룬다는 점에 대해서는 궁금했다. 난 메이플소프의 사진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이플소프는 게이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스미스와 연인이었다는 거지?)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는 '예술가'가 되길 원했으나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어떤 예술을 해야 하는지, 미래의 모습이 어떨지 아.. 더보기
지휘자는 뭐하는 사람인가, <거장 신화> 거장 신화노먼 레브레히트 지음·김재용 옮김/펜타그램/824쪽/2만8000원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야구감독, 해군제독과 함께 ‘남자가 해볼만한 3대 직업’으로 꼽히곤 한다. 이 3가지 직업은 모두 한정된 시·공간 속에 있는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을 이끌어 좋은 결과를 내야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지휘자의 손 끝, 야구감독의 사인, 제독의 명령에 따라 성공과 패배가 순식간에 갈린다. (원제 The Maestro Myth)는 영국의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의 1991년작이다. 이번에 나온 번역본은 2001년 개정판을 근간으로 했다. 레브레히트는 지휘자라는 직업이 생겨나 인기를 얻은 뒤 쇠락해가는 지난 120년간의 과정을 두툼한 분량, 날카로운 서술로 풀어냈다. 모차르트, 베토벤의 시대에는 지휘자라는 직업이 없었.. 더보기
배를 부풀린 개구리, <하우스 오브 사담> 은 BBC와 HBO가 2008년 공동제작한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물이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하기 직전 부시 미국 대통령의 텔레비전 연설에서 시작하는 드라마는 1979년 사담 후세인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시점으로 돌아가 이란-이라크전의 발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유엔의 무기사찰을 거쳐 다시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돌아와 후세인의 도피와 체포 과정을 보여주는데서 끝난다. 이라크의 혼란한 정정이 다시 외신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은 이라크 현대사를 정리하는데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사담 후세인이라는 악명 높은 독재자의 개성과 통치술을 그리는데 더 많은 노력을 들인다. 실제 사담 후세인의 외모와 놀랍게 닮은 배우 이갈 나오르는 후세인의 개성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우연인.. 더보기
멋진 삶에 멋진 자서전, <자서전 비슷한 것> 구로사와 아키라의 자서전 제목을 듣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 영문판 제목도 이다. 박찬욱 감독은 한국판 추천사에 '추천사 비슷한 것'이란 제목을 달았다. 책은 구로사와가 만 69세쯤인 1978년에 썼다. 구로사와는 이 책을 쓰고서도 20년을 더 살았고, 다섯 편의 장편 영화를 더 만들었다. 구로사와는 그동안 자서전을 쓰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글로 써서 남길 정도로 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는 생각하기 않았기 때문"에 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가 마음을 바꾼 계기는 두 명의 존경하는 감독 때문이었다. 한 명은 장 르누아르. 그는 르누아르의 자서전을 읽고 자극을 받아 그와 비슷한 것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은 존 포드. 구로사와는 존 포드의 자서전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한다.. 더보기
행해진 일은 행해진 일, <카운슬러> 코맥 맥카시의 소설을 몇 편 읽어왔다. 영화로도 제작된 (2006)나 (2005)보다는 한국에 번역된 작품 중에는 가장 먼저 쓰여진 (1985)을 '압도적'이라 느끼며 읽었다. 찾아보니 예전에 쓴 짤막한 평이 있다. 나 자신의 말을 뻔뻔하게 인용하자면 에 비하면 나 는 "왜 썼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는 맥카시의 시나리오다. 2013년 출간됐고, 리들리 스코트가 같은 해에 영화로 선보였다. 찾아보니 맥카시는 2011년에도 토미 리 존스가 연출하고 주연까지 맡은 라는 텔레비전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 평가도 알 수 없다. 마이클 파스밴더, 하비에르 바르뎀, 카메론 디아즈, 페넬로페 크루즈,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역시 그 화려한 연출자, 배우의 이름에.. 더보기
아름답지만 입맛에 안맞는 일본요리, <가면의 고백> 미시마 유키오의 를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지만 '내가 그리 좋아하는 소설은 아니었다'는 점만 기억이 난다. 교토 여행중 실제로 금각사를 본 적이 있는데, 하필이면 도금된 외관이 밝게 반짝이는 쾌청한 날이었다. 명색이 절인데 그토록 호화롭게 금빛으로 번쩍이는 모습이 아름답거나 멋있다기보다는 어딘지 과잉으로 여겨졌다. 전혀 반짝이지 않지만 기품있으며 충격적으로 모던하기까지한 은각사와 비교하니 금각사의 아름다움이 더욱 이상했다. 아마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도 실제의 금각사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미시마의 소설을 다시 읽었다. 1949년에 출간한 은 그의 첫 장편 소설이다. '소설'이라고 쓰긴 했지만, 그리고 많은 소설가들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변형해 내놓는 경향이 있긴 .. 더보기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기,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얼마전 를 봄으로써, 지금까지 개봉한 7편의 '엑스맨' 시리즈 중 (2013)을 제외한 6편을 봤다. 첫번째 은 2000년 개봉했다. 며칠전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다시 봤는데, 휴 잭맨이 놀랄만큼 '뽀송뽀송'했다. 하기야 그 사이 15년이 흘렀다. (1995)로 주목받았던 브라이언 싱어는 의 첫 두 편을 통해 할리우드 주류 감독으로 올라섰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한 명의 슈퍼히어로에 의존하는 다른 히어로물과 달리, 은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라는 두 친구이자 적의 대결을 중심으로 울버린, 진 그레이, 사이클롭스의 삼각관계, 자신의 남다른 정체성을 감추려하는 10대 등 다양한 주제, 인물을 다룬다. 싱어는 복잡한 인물과 줄거리를 탄탄하게 엮어내 이후 시리즈의 기틀을 닦았다. 그러나 15년간.. 더보기
박근혜가 누구예요 **신문 시스템상 취재 기자는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 이 칼럼을 쓰면서는 마음 속으로 두 가지 정도의 제목을 생각해봤는데, 그 중 더 낫다고 생각하는 제목을 편집자가 정확히 뽑아주셨다. 5월 8일 밤, KBS를 항의방문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박민규 기자 세월호 유족들에겐 청와대로 가지 않을 수차례 기회가 있었다. 유족들의 거친 항의는 방영하지 않고, 그들을 위로하는 대통령의 인자한 얼굴만 방영하는 공영방송의 행태에 분노한 유족들은 KBS 간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처음엔 안산 합동분향소에서였다. 그러나 책임지고 사과 혹은 해명할 KBS 관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족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직접 한밤의 여의도로 향했다. 이때라도 KBS의 책임있는 누군가가 모습을 보였다면 유족들은 수긍하고 뒤.. 더보기
80년전의 매저키스트, <만,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이른바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소설 중에 '막장스러운' 내용이 많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다지나키 준이치로의 의 줄거리는 그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의 에세이 는 내가 무척 좋아해 주변 사람에게 추천하거나 선물한 적도 있는 책인데, 혹시라도 내 추천에 를 읽은 뒤 이나 그외 다른 소설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 나를 대체 어떤 사람으로 볼까 하는 마음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타임스는 1965년 8월 6일 다지나키 준이치로의 부음 기사에서 그를 '동양의 D H. 로렌스'라 소개했다고 한다. 그러나 에서 드러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성관념은 로렌스식의 원초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섹스와는 거리가 멀다. 의 네 남녀를 한 마디로 '변태'라 불러도 무방하다. 차라리 다지나키 준이치로를 매저키즘의 창시자의 이름을 따 .. 더보기
우연하고 쓸쓸한 삶, <에브리맨> 정동길을 걸으면 매번 지나는 부대찌개 식당이 있다. (회사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그 집을 안다) 얼마전 늦은밤 퇴근을 하다가 이 식당을 지나치고 있었다. 영업이 끝났는지 매장엔 불이 꺼져있었고 오직 높게 매달린 텔레비전 불빛만 반짝였다. 낮에는 손님들이 앉았을 자리에 식당에서 일하시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종종 불을 모두 끄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 같다) 브라운관에서는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아마 김연아?)가 우아한 동작으로 은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식당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것도 재빠르지 않을 법한 할머니는 그 날렵하고 아름다운 젊은이의 동작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필립 로스의 은 매 페이지마다 독자에게 "메멘토 모리"라고 속삭이는 책이다. 번역본으로 200쪽에 .. 더보기
박지성의 무릎 축구선수 박지성이 5월 14일 은퇴를 발표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축구를 시작한 지 24년만의 일이다. 지금 그의 나이는 33세. 박지성이 전성기를 보냈던 프리미어리그의 선수들을 살펴봐도 그의 은퇴가 이르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가 유력한 라이언 긱스는 박지성보다 8살 많고, 프랭크 램퍼드는 3살, 스티븐 제라드는 박지성보다 1살 많다. 특히 램퍼드와 제라드는 박지성이 마지막 한 해를 뛴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리그보다 훨씬 격렬한 프리미어리그의 상위권 팀에서도 주전이고, 다가오는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뽑혔다. 박지성은 은퇴 이유를 '무릎'이라고 꼽았다. 나카타 히데토시처럼 "축구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은퇴하는 대신, 누구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 더보기
삶은 하나의 얼룩, <울분> 을 읽은 김에 필립 로스의 소설을 한 편 더 꺼내들었다. 2008년작인 (Indignation)이다. 2권으로 분책될 정도의 분량인데다가 인종, 성, 계급 등 다양한 문제를 현학적인 문체로 다뤘던 과 달리 은 한 젊은이가 자신의 길지 않은 삶을 회상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더 쉽게 읽힌다. (혹시 번역 때문?) 약간의 스포일러일지도 모르겠으나, 의 주인공은 죽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사의 경계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에서도 그랬지만, 로스는 소설이 3분의 1쯤 전개됐을 때 주인공이 이미 죽었다는 암시를 한다. 주인공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고, 주변 인물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형성이 돼 본격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는 시점이다. 서서히 독서에 속도를 내 문장을 빠르게 훑어나가려는 차에 작가의 이런 기교에 .. 더보기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 <휴먼 스테인>과 <화장>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을 어렵게 읽은 김에 현대 미국 작가의 소설을 좀 더 읽고 싶어졌다. 책꽂이를 살피니 필립 로스의 두 권짜리 책이 있었다. . 난 보지 못했지만, 앤서니 홉킨스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은 동명 영화로 알려진 작품이다. 읽어보니 은 영화 제작자들이 탐낼만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 인습을 넘는 사랑, 그에 대한 질투, 살인, 오해 받는 남자, 인종 갈등, 가족간 불화 등. 이 소설의 통속적인 고갱이만 뽑아내니 이렇다. 허나 영화가 소설을 얼마나 담아냈는지는 좀 궁금하다. (솔직히 회의적이다) 앤서니 홉킨스는 의심의 여지 없이 좋은 배우다. 70대에 접어들어서도 젊은이같은 활력을 보이며, 자신의 주장에 굽힘이 없고, 오만한데다 독선적인 동시 지적이며, 세상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혹은 우연히 .. 더보기
복수하기 좋은 시간-피의 복수 **스포일러 조금 박찬욱의 복수 3부작도 그렇고, 타란티노의 도 그렇고, 오늘밤에도 어느 케이블 채널에서 할 지도 모르는 도 그렇고, 복수는 대중영화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다. 특히 이 영화들이 다루는 복수는 물리력을 사적으로 동원하는 종류다. 다들 알다시피 현대 법치주의 국가는 이러한 종류의 복수를 금지한다. 폭력은 국가가 독점적으로 행하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은 국가에게 "쟤 좀 혼내 주세요"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간접 복수는 아무래도 복수로서의 원초적 쾌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대중영화는 그렇게도 많이 직접 복수를 다루는 것 같다. 현실에서 충족할 수 없는 원초적 복수의 쾌감을 대신 맛보게 해주기 위해. 두기봉의 (2009)의 원제는 직설적으로 다. 홍콩영화의 사실상 마지막.. 더보기
슬픔의 100가지 방식 (이 프로그램을 맘놓고 볼 수 있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듯 하지만) 세월호 사고 전 에서 '끝사랑'은 가장 뜨거운 코너였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이 코너는 다들 알다시피 인생의 풍상을 겪은 나이에 새 사랑을 시작하는 두 커플을 비교해 웃음을 선사한다. 점잖은 커플(권재관, 박소라)은 한국 사회가 중년에게 통상 기대하는 그러한 행동 패턴을 보인다. 둘은 데이트를 하면서도 함께 사진을 찍거나 손을 잡거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조차 남들 볼까봐 부끄러워 한다. 반면 닭살스러운 커플(정태호, 김영희)은 온갖 시끌벅적한 연애 행각을 벌인다. 가장 뜨거운 연애를 나누고 있는 젊은이들조차 하지 않을법한 그런 행동들이다. 정태호는 점잖은 커플의 밋밋하기 짝이 없는 연애를 보며 늘 이렇게 말한다. "저거 사랑.. 더보기
함께 울어야 할 시간 눈물을 머금고 글을 쓴다. 뉴스의 최전선에 있는 처지라 뉴스에서 눈을 돌릴 수 없는 처지가 원망스럽다. 이렇게 심약해서 무슨 기자냐고 자책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간간히 눈물을 훔치는 동료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위안한다. . 사고 당일 아침까지도 기자들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다. ‘침몰중’이라는 속보가 전해졌지만 곧 ‘학생 전원 구조’라는 소식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후에 접어들어 정부가 구조자의 수를 정정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전원 구조, 368명 구조, 164명 구조…. 이날 서울에 가득했던 미세먼지같은 우울, 슬픔, 탄식이 기자들의 얼굴에 스며들었다. 사회부로 전입온 뒤 여러 건의 죽음을 접했다.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사고의 대학생들, 송파의 세 모녀에 이어, 여객선 세월호의 고교생들까.. 더보기
모더니즘 막장극, <소리와 분노> 윌리엄 포크너의 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출판사의 번역본으로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수십 페이지는 읽은 것 같은데 그때까지 줄거리는커녕 등장인물조차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 읽은 에 포크너의 인터뷰가 게재돼 있기에 다시 흥미가 생겼고 마침 문학동네 판본을 구해둔 적이 있어 다시 도전해 보았다. 첫 페이지 안쪽에 써있는 역자의 다섯 줄짜리 설명을 읽자마자 내가 예전에 이 책을 읽다가 실패한 이유를 알아냈다. 첫번째 챕터의 화자는 33세이지만 3살 지능을 가진 지적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이 챕터는 벤지라는 이름의 남자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상상하는 것들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게다가 벤지의 머리 속에서는 크게 분류해 4 가지, 세밀히 분류하면 14가지 시간대가 별도의 구분 없이 혼재돼 흘러.. 더보기
금욕의 왕 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 톨스토이에 대해선 그의 교훈적이고 종교적인 우화와 말년의 자족적 공동체 생활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19세기 러시아 소설의 두 거두로 대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꼽지만, 왠지 요즘의 ‘트렌드’는 도스토예프스키 쪽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무래도 ‘성스러운’ 톨스토이보다는, 차르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극적으로 살아나고 훗날엔 도박빚에 쪼들리며 소설을 써나갔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이 더 극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몇 편을 읽어 보았으나 솔직히 말해 그다지 깊숙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나 이 그랬고, 얼마전 읽다가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집어치운 도 그랬다. 아, 단편집 도 읽긴 했다. 기억 나지 않긴 하지만. 그러나 톨스토이는 달랐다... 더보기
글쓰기는 일이다, <작가란 무엇인가> (다른)는 1953년 창간된 문학 계간지 '파리 리뷰'가 게재해온 작가 인터뷰 중 12편을 묶어낸 책이다. 이 계간지가 지금까지 인터뷰한 인물은 250여명이라고 하는데, 출판사는 앞으로도 12명씩 묶어 두 차례 더 책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파리 리뷰' 인터뷰가 한국에 처음 묶여 나온 것은 아니다. (책세상)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으며, 나도 그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헤밍웨이 편은 과 에 모두 실렸다. 읽은 김에 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발췌해 옮긴다. 12명의 작가 인터뷰를 한 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확실한 느낌은 '글쓰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세간에선 소설가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영감에 의지해 엄청난 작품을 써내는 '낭만주의적 천재'로 여기겠지만, 이 책 .. 더보기
상식의 하한선 매순간 빛나는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상식의 하한선은 지키며 살아야 한다. 최근 구설에 오른 한 유명인의 인터뷰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되새겼다. 함익병씨는 피부과 의사로 성공해 큰 돈을 벌었고, 최근에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인기를 끌었다. 방송사는 50대의 그에게 연예대상 신인상을 안겼다. 문제는 그가 과 나눈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불거졌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찬사야 개인의 성향이다. 그의 재임기에 한국 경제가 발전한 것은 사실이며, 많은 이들이 이를 박 대통령의 치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독재가 왜 잘못된 건가요?… 독재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하나의 도그마입니다”라는 말을 읽고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한 명의 위대한 철학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다스리는 플라톤의 ‘철인정치’를 끌.. 더보기
이야기보다 분위기, <트루 디텍티브> 의 네번째 에피소드 마지막 10여분을 재차 봤다. 멀게는 이나 부터 시작해 1990년대 이후론 나 같은 미드를 즐겨봤지만, 미드의 같은 에피소드를 이틀 연속으로 부분적으로나마 두 번 본 것은 이번 처음이다. 형사 러스틴 콜(매튜 매커너히)은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에 접근하기 위해 용의자가 마약을 공급하는 조직에 잠입한다. 콜은 예전에 마약단속반 소속으로 4년간의 위장 근무를 한 적이 있기에, 이 조직과 안면이 있다. 조직원들은 콜을 여전히 마약상이자 과격한 갱으로 여긴다. 이 조직원들은 대체로 비대하고 머리는 대머리인데다가 수염을 길게 길렀다. 풀린 듯한 눈을 하고 있긴 하지만 금발을 멋지게 기른 콜과는 사뭇 다른 외모다. 조직원들은 콜을 의심하면서도 그를 자신들의 일에 끌어들인다. 이들의 일이란.. 더보기
인생의 기회, <인사이드 르윈> 은 외관상 음악영화다. 1950년대말, 음반을 두어 장 냈지만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은 포크 뮤지션이 주인공이다. 원래는 듀엣이었지만 파트너가 자살을 한 뒤 솔로로 전향한 르윈 데이비스는 밤에는 시시껄렁한 농담과 함께 클럽에서 노래를 하고, 그보다 늦은 밤에는 동가식서가숙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예술가'하면 이리저리 떠도는 '보헤미안'의 느낌이 자연스럽게 연상되고 그런 모습이 그다지 나빠 보이지도 않지만, 르윈의 경우는 좀 다르다. 르윈이 하루 혹은 며칠밤의 잠자리를 청하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이고, 르윈 역시 아티스트답게 당당하기보다는 어딘지 궁상맞이 보인다. 르윈은 스스로 자조적으로 농담하듯 "다 그게 그거 같은" 포크송을 불러대는데, 가사만큼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날 목매달아.. 더보기
잊어도 좋은 기억, 몰라도 좋은 사실 며칠전 퇴근길에 지하철을 탔다가 들은 대화다. 둘은 부부로 추정됐다. 남녀는 연예인 이야기를 꺼냈는데, 대화는 그들이 출연한 영화로 이어졌다. 남: 엄태웅이 이민정하고 에 나왔네. 여: 봤어?남: 음...기억이 안나. 여: 누구랑 봤어?남: 안본 것 같아. 여자는 3초 정도 침묵하다가 다른 화제를 꺼냈다. 이렇게 가정의 평화는 유지됐다. 기억력은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좋다고들 여기지만, 때론 잊어도 좋은 기억들이 있다. '트라우마'라 할만한 끔찍한 사건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50년전, 100년전, 200년전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자극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그러한 자극들은 우리의 기억에 자꾸만 쌓인다. 그 많은 기억을 고스란히 쌓아두는 인간은 아마 미쳐버리지 않을까. 쓸데없는 프로그램과 파.. 더보기
유아기의 끝 아이가 아기였을 때부터 쓰던 물건들이 하나 둘씩 정리되고 있다. 따져보면 모빌, 기저귀, 젖병 등은 진작 처분됐지만, 사용한 기간이 적거나 크기가 작아 별 의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처분한 물건들은 아이가 꽤 오랜 기간 사용한데다가 크기가 커서 물건이 사라진 공간이나 느낌이 각별하다. 먼저 부스터. (아마 아기를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것이 무슨 물건인지 모를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부스터는 일종의 보조 의자다. 몸집이 작은 아이가 성인 의자에도 앉을 수 있도록 돕는 기구다. 여기저기 들고다니며 아이를 앉힐 수도 있다. 우리도 그랬다. 아이가 홀로 앉을만큼 허리 힘이 받쳐주지 않았을 때, 부스터를 들고가 거기에 앉혀두곤 했다. 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식당 같은 곳에 갈 때 .. 더보기
월스트리트에서 필요한 두 가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스포일러 소량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를 줄곧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2013)가 (1990)의 월 스트리트 버전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두 영화는 큰 흐름의 측면에서 비슷하다. 야심만만한 젊은이가 큰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그러나 대개 위험하고 종종 불법적인 직업의 세계에 뛰어든다. 개인의 능력과 몇 가지 우연으로 젊은이는 금세 성공한다. 그러나 이른 성공에는 많은 함정이 기다린다. 마약 또는 여자. 젊은이는 둘 중 하나, 아니면 둘 다에 중독돼 짧은 전성기를 누린다. 세상엔 그처럼 되길 꿈꾸는 젊은이가 많지만, 법의 수호자들은 이들의 뒤를 노린다. 그리고 젊은이는 결국 법망에 걸려들어 이른 전성기를 끝내고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인생의 많은 나날들을 초라하게, 가끔 옛 영.. 더보기
영원한 하루, <하나 그리고 둘> 2013년 마지막 날 집에 들어가니 가족이 모두들 자고 있었다. IPTV의 영화 목록을 스크롤하다가 마음에 드는 영화가 없어 디비디를 뒤졌다. 지금은 폐간한 영화 주간지에서 독자에게 끼워준 이 눈에 띄었다. 173분의 러닝 타임 때문에 좀처럼 디비디 플레이어에 넣을 엄두를 못냈던 영화다. 그러나 이날은 1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영화는 대만의 어느 중산층 4인 가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아들의 결혼식날 노모가 갑작스럽게 쓰러져 의식을 잃은 채 병상에 눕는다. 말을 들려주면 차도가 있을 것이라는 의료진의 말에 가족들은 돌아가면서 할머니에게 말을 걸기로 한다. IT회사의 중역인 사위, 어머니께 들려줄 말이 없다며 울먹이는 그의 아내, 웬인일지 외할머니께 말 걸기를 싫어하는 장난꾸러기 초등생 손자, 내성적인 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