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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로스

어느 위대한 작가의 전처 비난, '사실들: 한 소설가의 자서전' 필립 로스(1933~2018)가 1991년 펴낸 '사실들: 한 소설가의 자서전'은 작가의 분신 주커먼이 표현하는 대로 "내 전처는 쌍년이었다"라고 말하는 글이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의 초반 3분의 1은 유대계 미국인으로서 작가의 성장기를 다룬다. 아버지는 유대계에 대한 은근한 멸시와 차별을 굳건한 의지로 이겨낸 남자였다. 로스는 그런 가정에서 모나지 않은 삶을 살다가 대학에 진학한다. 여기까진 부드럽게, 애상 어리면서도 적당히 진지한 분위기의 글이다. 그러다가 로스가 조시라는 여성을 만나는 대목부터 글의 분위기가 급변한다. 연상의 조시는 유대계가 아니었고, 다소 난폭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며, 이혼한 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웨이트리스였다. 단편 작가로 데뷔했고, 이제 남은 삶을 문학에 바치겠다고 다짐하.. 더보기
난삽하지만 신랄하고 철저하고 까끌까끌한, '유령퇴장' 타계를 추모하는 혼자만의 의식으로 필립 로스의 2007년작 (문학동네)을 뒤늦게 읽다. 국내에는 2014년 출간됐는데, 언젠가 입수했다가 회사 책상 앞 책꽂이에 꽂아놓은 뒤 읽지 않고 두었다. 알다시피, 책은 한 번 읽을 시기를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로스의 책을 몇 권 읽어나갔을 때 은 제 순서를 맞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난 로스의 책에 조금 지쳤고, 그렇게 을 방치했다. 그래도 책을 치워버리지는 않아서 몇 번 자리를 옮기면서도 줄곧 눈에 보이는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그 사이 은 100년전부터 거기 있었던 정물처럼 놓여있었다. '나'는 70대의 유대계 미국 소설가 네이선 주커먼이다. 주커먼은 1974년 로스의 책에 처음 나온 뒤, 까지 모두 9번 등장했다. 등 로스의 대표작이 그 9편에 속한다.. 더보기
우연하고 쓸쓸한 삶, <에브리맨> 정동길을 걸으면 매번 지나는 부대찌개 식당이 있다. (회사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그 집을 안다) 얼마전 늦은밤 퇴근을 하다가 이 식당을 지나치고 있었다. 영업이 끝났는지 매장엔 불이 꺼져있었고 오직 높게 매달린 텔레비전 불빛만 반짝였다. 낮에는 손님들이 앉았을 자리에 식당에서 일하시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종종 불을 모두 끄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 같다) 브라운관에서는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아마 김연아?)가 우아한 동작으로 은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식당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것도 재빠르지 않을 법한 할머니는 그 날렵하고 아름다운 젊은이의 동작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필립 로스의 은 매 페이지마다 독자에게 "메멘토 모리"라고 속삭이는 책이다. 번역본으로 200쪽에 .. 더보기
삶은 하나의 얼룩, <울분> 을 읽은 김에 필립 로스의 소설을 한 편 더 꺼내들었다. 2008년작인 (Indignation)이다. 2권으로 분책될 정도의 분량인데다가 인종, 성, 계급 등 다양한 문제를 현학적인 문체로 다뤘던 과 달리 은 한 젊은이가 자신의 길지 않은 삶을 회상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더 쉽게 읽힌다. (혹시 번역 때문?) 약간의 스포일러일지도 모르겠으나, 의 주인공은 죽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사의 경계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에서도 그랬지만, 로스는 소설이 3분의 1쯤 전개됐을 때 주인공이 이미 죽었다는 암시를 한다. 주인공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고, 주변 인물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형성이 돼 본격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는 시점이다. 서서히 독서에 속도를 내 문장을 빠르게 훑어나가려는 차에 작가의 이런 기교에 .. 더보기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 <휴먼 스테인>과 <화장>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을 어렵게 읽은 김에 현대 미국 작가의 소설을 좀 더 읽고 싶어졌다. 책꽂이를 살피니 필립 로스의 두 권짜리 책이 있었다. . 난 보지 못했지만, 앤서니 홉킨스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은 동명 영화로 알려진 작품이다. 읽어보니 은 영화 제작자들이 탐낼만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 인습을 넘는 사랑, 그에 대한 질투, 살인, 오해 받는 남자, 인종 갈등, 가족간 불화 등. 이 소설의 통속적인 고갱이만 뽑아내니 이렇다. 허나 영화가 소설을 얼마나 담아냈는지는 좀 궁금하다. (솔직히 회의적이다) 앤서니 홉킨스는 의심의 여지 없이 좋은 배우다. 70대에 접어들어서도 젊은이같은 활력을 보이며, 자신의 주장에 굽힘이 없고, 오만한데다 독선적인 동시 지적이며, 세상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혹은 우연히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