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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사람의 클래식 음악,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클래식 분야의 교양서가 종종 나오지만, 만족스러운 책은 드물다. 향유층이 넓진 않지만, 그들의 취향이 까다로운 분야에선 종종 그런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꽤 만족스러웠다. 클래식 인문교양서로서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 언급될만하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문학수 지음/돌베개/384쪽/1만8000원


음악을 하거나 듣기 위해서는 음악만 알면 되는걸까. 얼핏 생각하면 그런 것 같다. 음악가는 좋은 연주를 하면 되고, 청취자는 열심히 들으면 된다. 음악 바깥에 무엇이 있는가. 


실제로 “단지 음악을 했을 뿐”이라는 답한 이가 있었다. 베를린 필의 리더였으며 아마도 20세기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지휘자였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었다. 자발적으로 나치에 입당해 성공가도를 달렸던 그는 전쟁 이후 자신을 심문한 미군 장교에게 그렇게 말했다. 미군 장교는 카라얀에 대해 “오로지 음악만이 중요한 광신자”라고 적었다. 


정말 그게 다일까.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의 저자는 달리 생각한다. 카라얀이 주장한 ‘음악의 자율성’이란 “기회주의자들의 훌륭한 자기변호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하지만 한국 음악계는 음악의 순수성을 신앙처럼 받드는 이로 넘쳐난다. 그래서 “음악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뻔한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지휘자가 있고, 유능한 연주자를 많이 배출한 교육자에게 마치 동물을 다룬 듯 ‘명조련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음악은 음표의 집합이 아니다. 음악은 순수하지도 않다. 오히려 음악은 불순하다. 음악은 철학, 문학, 종교, 역사와 뒤섞여 ‘인문학’의 덩어리를 이룬다. 그래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자 “개인사와 당대사를 씨줄과 날줄로 삼은 ‘음악의 생애’를 만나는 일”이라고 믿는 저저가 자신의 책 부제를 ‘어느 인문주의자의 클래식 읽기’로 정한 것은 자연스럽다. 


책의 첫 장은 당연하게도 ‘음악의 규범’을 만든 바흐를 위해 마련됐다. 바흐는 고지식하고 완고했으며 초야에 묻혀 작곡에 몰두하는 소박한 사람이었다. 6대조부터 대대로 음악가를 배출했던 바흐 가문의 남자들에게 음악은 화려한 명성이라기보단 주어진 직분이었다. 그의 음악도 하늘에서 떨어진 듯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그렇게 과거를 이으면서 미래를 내다봤기에 훗날 ‘온건한 전범’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아마데우스> 같은 영화를 통해 ‘스타’처럼 묘사된 모차르트에게선 의외로 ‘고단함’을 읽어낸다. ‘신동’으로 소문났던 모차르트는 10살도 되지 않은 시점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서유럽 전체를 누비는 연주 여행을 떠났다. 자유로운 음악가라기보단 서커스단의 원숭이처럼 기교를 뽐내야했던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하루 종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작곡을 했다. 이렇게 모차르트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탕진했는데, 훗날 니체는 적절하게도 “천재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낭비가이기 마련”이라는 말을 남긴다. 


바그너는 뜨거운 사내였다. 바쿠닌과 함께 혁명에 참여했다가 쫓겨다녔고, 후원자의 아내를 유혹했으며, 이전 누구도 듣거나 본 적 없는 거대한 음악극을 선보였다. 그러나 바그너의 음악 속에는 반유대주의의 싹이 심어져 있었고, 나치들이 그런 바그너의 음악에 감동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바그너에 꺼림칙함을 느끼던 이들이 있었으니 유대인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이나 재일교포 지식인 서경식 등이다. 그러나 이들마저 종내는 “불가해한 감동”으로 몰아넣은 것이 바그너 음악의 힘이다. 


뜨거운 남자 바그너, 거대한 그림자 베토벤, 피곤한 천재 모자르트(위로부터)


20세기 지휘자, 연주자에 대한 서술도 4분의 1을 차지한다. 1925년 22살의 나이로 소련을 떠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순식간에 서유럽, 미국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피아노에 “불이 붙은” 듯한 기술로 연주하던 그를 보겠다고 청중은 휴식 시간에도 박수를 처댔다. 그는 늘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보잉747로 공수해가며 연주했고, 여행에 전속 요리사를 대동했다. 그는 연주의 즉흥성과 영감을 강조한 피아니스트였기에, 하루 2시간 이상 연습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많은 연습은 연주를 기계적으로 만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테르는 여러 면에서 호로비츠와 반대였다. 서방세계의 열렬한 찬사와 소련 공산당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결코 조국 소련을 떠나지 않았고, 명성을 즐기지도 않았다. 71세였던 1986년 자동차 한 대로 러시아 대륙을 횡단하며 100회 가까운 연주회를 치른 그는 시골 성당의 낡은 피아노, 조율 안된 피아노 앞에도 선뜻 앉았다고 한다.  


다루는 작품을 찾아 보고 싶게 만드는 평론이 좋은 평론이라면,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는 그런 글들로 가득하다. 음악가의 시대와 삶에 대해 읽다보면, 들어보지도 못한 곡들의 선율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 같고 유튜브에서라도 찾아듣고 싶어진다. 저자는 경향신문에서 음악 담당 선임기자로 활동중인데, 저널리스트답게 정확한 정보, 단정한 문장, 선명한 통찰을 전하는데 집중한다. 에를 들어 슈베르트는 “간결한 언어를 구사한 시인이라기보다는 미문의 에세이스트”, 베를리오즈는 “뭔가를 보여주려고 했던 인간”이라고 평하는 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클래식 사상 최고의 거인이라 할 만한 베토벤에 대한 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역량 부족’ 때문에 언급하지 못했다며 독자의 양해를 구하는데, 정작 베토벤은 이후 여러 작곡가들의 삶에 대한 설명에서 지울 수 없는 그림자처럼 등장한다. 각 음악에 대해 들을만한 음반 목록도 추천했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는 “음 하나하나를 충분히 눌러 무겁고 느리게 연주하라”는 음악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