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이가 아침을 먹고 난 식탁을 보고 조금 놀랐다. 닦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식탁이 깨끗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아침 등원을 내가 책임지기 시작한 것은 약 1년전 쯤이었다. 난 꽤나 긴장했다. 나 하나 씻고 옷입고 먹고 뛰쳐나가기 바쁜 것이 보통 직장인의 아침 아닌가. 거기에 아이까지 챙겨서 어린이집(지금은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니. 밥 먹는 것은 그중에서도 큰 일이었다. 아이는 비교적 밥을 잘 먹는 편이지만,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먹는 속도가 느리고 때론 투정도 한다. 처음엔 거의 떠먹여주었고, 아이가 혼자 먹는데 익숙해진 뒤에도 식탁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식탁만이 아니라 자칫하면 옷까지 엉망이 됐다. 가재 수건을 목에 하나 걸고 가슴팍에 하나 받치는 것이 필수였다. 음식은 식탁엔 물론, 부엌 바닥에까지 튀어있기 일쑤였다. 아이가 딩동댕 유치원을 보며 얼어붙어 있는 사이, 난 씻고 옷을 입고 그릇을 치우고 행주로 식탁을 훔쳤다.
그러던 아이가 오늘, 음식을 거의 흘리지 않고 먹었다. 1년 동안 아이는 아주 조금씩 그 작은 손가락의 근육을 움직이는 법, 적당한 타이밍에 입을 벌리는 법, 음식이 숟가락을 넘치지 않도록 적당량 뜨는 법, 그릇을 함부로 만지지 않는 법을 익혀나간 것이다.
얼마전엔 그런 일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유아가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큼직하게 나온 레고 듀플로를 사줬는데, 지난 토요일에 처음으로 보통 레고를 사줬다. 조금 걱정이 됐다. 아이는 아직 이 작은 레고를 가지고 놀만큼 손가락을 정교하게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레고 듀플로(왼쪽)와 레고. 급찍음.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았다. 아이는 큼직한 조각들은 곧잘 맞췄지만, 작은 조각을 끼우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긴 그런 조각들은 나도 맞추기 힘드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제뜻대로 블록을 맞추지 못할 때마다 징징거리며 운다는 사실이었다. 레고를 붙잡고 화를 내며 징징대는 아이에게 어떻게 맞추고 싶은지 물어보고 대신 맞춰준다. 아이는 혼자 가지고 놀다 다시 징징댄다. 그러면 다시 맞춰준다. 조금 놀다가 또 징징댄다. 이하 반복.
아이가 징징댈 때마다 말했다. 울지 말고 아빠를 부르라고. 그러면 아빠가 도와줄 거라고. 그래도 아이는 징징댔다. 난 그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는 3초 정도 징징대다 멈칫하더니 아빠를 불렀다. "아빠, 도와주세요!"
아이는 자란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자란다. 그것만 잊지 않으면 나날의 육아는 정말 행복한 일이다.
'라이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견과 현상 (2) | 2013.05.17 |
---|---|
축구 끊을까, 수아레즈의 '이빨 사건'을 보고. (3) | 2013.04.22 |
철학자와 테러리스트의 만남: 사르트르와 바더의 경우 (4) | 2013.02.07 |
프리챌의 질문 (0) | 2013.01.18 |
아빠, 물리학의 법칙을 어겨주세요. (7) | 2012.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