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에 해당되는 글 3건

  1. 이것저것 섞여 더럽지만 아름다운 강물, '아사코'
  2. 멋진 삶에 멋진 자서전, <자서전 비슷한 것>
  3. 잔혹한 할아버지, 기타노 다케시


**스포일러 있음

어제 오전에 극장에서 다섯명 쯤의 관객과 함께 '아사코'를 봤다. 영화가 너무너무 이상한데, 바로 그런 이유로 흥미진진했다. 서사는 종잡을 수 없었지만, 감정은 정확히 묘사됐다. 젊은 남녀의 사랑과 이별이 주요 소재라는 점에서 멜로 영화라고 볼 수 있지만, 지금까지 본 멜로 영화는 아니다. 이상한 흐름이 자꾸 생각나고, 왜 그리 이상하게 찍었는지 궁금하고, 스스로 해명해보고 싶다. 훌륭한 영화라는 뜻이다. 

줄거리만 요약해도 이상하다. 오사카의 아사코는 어느 사진전에서 만난 바쿠와 사랑에 빠진다. 말도 안되게 급작스럽게 시작한 사랑이이었다. 하지만 바쿠는 안정적이기보단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저녁에 빵 사러 간다고 나갔다가 다음날 새벽에 돌아오는 사람이다. 빵 사러 갔다가 동네 목욕탕에 들렀는데 거기서 만난 아저씨와 친해져서 그 아저씨 집에 가 만취하고 잔 뒤 빵은 주고 왔다....는 식이다. 결국 바쿠는 신발을 사러간다는 말을 남긴 채 사라진다, 고 아사코의 내레이션을 통해 회상된다. 꼭 돌아오겠다는 말은 남겼다. 

2년 후, 아사코는 도쿄로 이사해 한 카페에서 일한다. 인근 회사의 직장인 료헤이라는 사람이 자꾸 아사코 앞에 나타난다. 놀랍게도 료헤이는 바쿠와 똑같이 생겼다(실제로 같은 배우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1인 2역을 한다). 료헤이는 아사코에게 다가가지만, 아사코는 바쿠와 너무 닮은 모습에 자꾸 뒷걸음질친다. 사귀어 보려고도 하지만 마음이 온전히 가지 않는다. 그러다가 모든 사람이 잠시 두려움에 떨만한 지진이 발생한 날, 아사코는 료헤이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지진 묘사가 섬찟하다. 죽거나 다친 사람은 하나도 안나오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와 혼란이 생생히 느껴진다. 거리 곳곳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후 5년간 둘은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료헤이는 성실하고 유머러스하며 다정다감하다. 어딘가로 갑자기 사라질 사람처럼은 절대 보이지 않는다. 둘은 동일본대지진 피해를 입은 센다이 지역에 가서 자원봉사 활동도 자주 한다. 주변 친구들도 그런 그들을 축복한다. 료헤이는 오사카 본사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마침내 아사코에게 청혼한다. 

청혼하기 전 빠진 에피소드가 있다. 바쿠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바쿠는 그 사이 꽤 인기 있는 모델이 됐고, 아침 드라마에 나와 인기를 끄는 셀러브러티가 됐다. 청혼을 받은 순간, 아사코는 옛 연인 바쿠 이야기를 한다. 사실 바쿠가 료헤이와 똑같이 생겼다고 말한다. 료헤이는 2년 전쯤 바쿠란 사람의 존재를 잡지에서 봤고,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사코가 자신을 처음 본 순간 멈칫한 이유도 이해했다고 말한다. 둘의 결혼은 문제 없이 진행될 것 같다. 오사카에는 창문에서 강이 바라다 보이는 집까지 구했다. 

아사코와 료헤이와 친한 친구들의 저녁 자리에 파국이 발생한다. 바쿠가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료헤이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의 바쿠를 보고 놀란다. 바쿠는 돌아오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테이블 위에 손바닥을 펴 올린다. 2~3초쯤 고민하던 아사코는 바쿠의 손을 잡고, 둘은 그대로 나가버린다. 바쿠는 아사코를 차에 태우고 달린다. 부모님이 쓰지 않는 빈 집이 훗카이도에 있다고 한다. 자기 일을 대신할 사람은 많다며 휴대폰을 부서 던져버린다. 아사코도 돌아오라는 친구들에게 이별의 말, 사과의 말을 남긴 채 휴대폰을 던진다. 그렇게 자동차는 밤의 도로를 달린다. 

눈을 떠보니 새벽이다. 차는 방파제 근처에 서있다. 센다이 초입이다. 바쿠는 졸리기도 하고 배고프기도 해서 차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는 방파제 때문에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아사코는 갑자기 돌아가겠다고 한다. 바쿠는 그러라고 한다. 차를 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아사코는 면허가 없다고 한다. 역까지 태워줄 필요도 없다고 한다. 바쿠는 그냥 떠나고, 아사코는 돈도 핸드폰도 없이 돌아간다. 

마침 센다이엔 평소 자원봉사를 하며 알고 지낸 지역 주민들이 있다. 한 할아버지가 돈을 빌려주면서도, 남자는 다른 남자와 놀다 들어온 여자는 용서하지 못하니 돌아가지 말라고 권한다. 하지만 아사코는 돌아가기로 한다. 원래 그렇게 하기로 예정된 여행이라도 떠나는 듯이. 

아사코는 오사카의 료헤이 집을 찾아 문 앞에서 기다린다. 전날 저녁이었다면 당연히 자신의 신혼집이 될 곳이었다. 아사코를 발견한 료헤이는 화를 내면서 무슨 낯으로 나타났느냐고 말한다. 그리고 함께 키우던 고양이는 버렸다고도 한다. 아사코는 고양이를 찾으러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앓아누웠다는 오사카 시절 고향 친구를 찾아가기도 한다. 활발하던 친구는 루게릭 병으로 침대에 누운 상태다. 아사코는 친구 어머니로부터 귀여운 반전이 담긴 옛 이야기를 듣는다. 

아사코는 다시 료헤이의 집 앞으로 와 고양이를 찾는다. 사실 료헤이는 고양이를 버리지 않았고 집에 데리고 있었다. 그걸 계기로 아사코는 료헤이의 집으로 들어간다. 료헤이의 목소리는 조금 누그러졌다. 료헤이는 앞으로 아사코를 완전히 믿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사코는 수긍한다. 그리고 료헤이에게 덜 의지하겠다고 말한다. 둘은 베란다에 서서 비가 와 불어난 강을 바라본다. 료헤이는 물이 더럽다고 한다. 아사코는 그래도 아름답다고 한다. 끝. 

자유로운 바쿠(위)와 성실한 료헤이(아래). 

처음엔 바쿠와 료헤이가 도플갱어인줄 알았다. 아니다. 도플갱어는 만나면 죽는데, 둘은 한 번 마주친다. 아니면 둘이 닮았다는 건 아사코만의 착각이었던가. 아니다. 바쿠와 사귀던 시절 아사코의 단짝 친구가 료헤이를 보고 똑같이 생긴 모습에 놀란다. 바쿠와 료헤이가 닮았다는 건 아사코의 주관이 아니라 제3자가 인정하는 객관적 사실이다. 

아사코는 다시 돌아온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바쿠를 외면하고, 오랜 시간 자신을 사랑할 료헤이를 찾기로 한다. 낭만과 현실의 대결에서 현실이 승리? 하지만 되찾은 현실이 그리 맑고 밝지만은 않다. 료헤이와 아사코의 마지막 대사는 시적이다. 강물은 더럽다. 하지만 아름답다. 폭우로 불어나 이것저것 뒤섞인 강물이지만 아름답다. 인간 관계는 단일한 감정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영원한 사랑이나 숭배나 증오는 없다. 여러 가지 감정이 비율을 달리하며 섞이며 관계를 직조해나갈 따름이다. 최상의 잉꼬 부부라해도 미움이나 의심이나 권태의 싹은 마음 어딘가 뿌려져있다. 그것이 얼마나 자라나느냐, 자라났을 때 얼마나 현명하게 가지치기해줄 수 있느냐의 문제일 따름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자서전 제목을 듣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자서전 비슷한 것>. 영문판 제목도 <Something like an autography>이다. 박찬욱 감독은 한국판 추천사에 '추천사 비슷한 것'이란 제목을 달았다. 


책은 구로사와가 만 69세쯤인 1978년에 썼다. 구로사와는 이 책을 쓰고서도 20년을 더 살았고, 다섯 편의 장편 영화를 더 만들었다. 구로사와는 그동안 자서전을 쓰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글로 써서 남길 정도로 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는 생각하기 않았기 때문"에 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가 마음을 바꾼 계기는 두 명의 존경하는 감독 때문이었다. 한 명은 장 르누아르. 그는 르누아르의 자서전을 읽고 자극을 받아 그와 비슷한 것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은 존 포드. 구로사와는 존 포드의 자서전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한다. 


자서전을 집필한 배경을 소박하게 밝히고 있지만, 글은 매우 잘 쓰여진데다가 재미있다. 문장이 탄탄하다거나 묘사가 현란하다거나 구성이 튼튼하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구로사와는 자서전에서 군인 아버지의 나약한 아들로 태어난 시절부터 '세계의 구로사와'라고 불린 계기가 된 <라쇼몽>(1950)을 제작했을 때까지의 삶을 담았다. 나고 자라 전쟁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감독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과장이 없으면서도 재미있게 서술돼있다. 한 마디로 그의 '삶'이 흥미진진했기에 그것을 간략히 전하는 것만으로도 글이 흥미진진해진 셈이다. 애초에 <주간 요미우리>에 연재했던 것을 훗날 단행본으로 묶었다고 하는데, 추정해보자면 연재 당시 일본의 노련한 편집자가 글을 매끈하게 다듬지 않았나 싶다. 



<라쇼몽>의 미후네 도시로. (한국 네티즌에게는 '노홍철 닮은꼴'로 더 유명하지만) <라쇼몽>이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을 때, 구로사와는 출품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일본에 머물며 다음 작품 준비가 잘 되지 않아 낚시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구로사와는 훗날 자신과 함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던 소설가 우에쿠사 게이노스케와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권위적인 선생 때문에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시기를 거쳤고, 관동대지진 당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뒤 형과 함께 산더미같이 쌓인 시체더미들을 구경다니기도 했고, 군사훈련을 시키기 위해 중학교에 파견된 대위와 대결을 벌였다. 일찌감치 예술에 눈을 뜬 형을 따라 온갖 고전문학, 영화들을 독파했다. 구로사와는 10살~20살 사이(1919~1929) 본 영화들의 목록을 공개했는데 에른스트 루비치, 그리피스, 찰리 채플린, 라울 월쉬, 프리츠 랑, 존 포드,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무르나우, 에이젠슈타인 등 <세계영화사> 같은 책에서 분명히 언급할 무성영화 시대 거장들의 목록을 모조리 섭렵했다. 구로사와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작품만 보았다"고 돌이킨다. 


화가를 꿈꾸었던 구로사와는 한때 프롤레타리아 미술연구소를 통해 사회주의 지하조직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심한 감기에 걸려 앓아누운 동안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접선책과 연결이 끊겨 운동을 그만두었다. 그는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을 핑계로 괴로운 불법 활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망쳤다. 좌익 운동의 열이 식은 게 아니라, 애초 내 열의가 대단치 않았다"고 인정한다. 


무성영화 변사로 활동했던 형이 자살한 후, 구로사와는 우연 혹은 필연처럼 영화사에 입사한다. 영화를 많이 보긴 했지만 그것을 업으로 삼고 싶은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구로사와였지만, 신문에서 'PCL 영화촬영소(훗날의 도호 영화사) 조감독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덜컥 지원해 붙어버렸다. 그는 야마모토 가지로 감독의 조감독이 된 뒤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 얼굴에 고갯마루의 바람이 불어왔다. 고갯마루의 바람이란 길고 험한 산길을 오를 때 고갯마루에 가까워지면 산 저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말한다. 그 바람이 얼굴에 닿으면 고갯마루가 가깝다는 뜻이다. 그리고 곧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탁 트인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카메라 옆의 감독 의자에 앉아 있는 야마 상 뒤에 서서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감회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야마 상이 지금 하고 있는 일, 그것이야말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다. 

나는 겨우 고갯마루 위에 다다랐던 것이다. 그 고개 너머로 탁 트인 전망과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 보였다.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


책에는 창작자들이라면 새겨들을만한 노하우, 마음가짐도 많이 들어있다. 편집실에서는 촬영분이 잘려나가기 일쑤였는데, 고생해서 찍은 사람의 입장에선 마음 아픈 일이다. 하지만 구로사와는 말한다. 


감독이 고생을 하건 조감독이 고생을 하건, 아니면 카메라맨이나 조명 담당이 고생을 하건, 그런 일은 관객이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군더더기 없이 충실한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찍을 때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찍는다. 하지만 찍고 나서 보면 찍을 필요가 없었던 것도 많다. 필요 없는 건 필요 없는 거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가 고생한 양에 비례해서 가치판단을 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영화를 편집할 때는 절대 금물이다. 


당시의 검열관을 혹독하게 비판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튼 검열관이라는 도베르만은 당대의 권력에 잘도 길들여져 있었다. 권력에 길들여진 하급 관리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데뷔작 <스가타 산시로>의 성공에 고무된 영화사가 속편을 추진한데 대해서는 이런 감상을 전한다. 


그들은 과거에 히트한 작품만 영원히 쫓아다닌다. 새로운 꿈을 꾸려고 하지 않고 옛꿈만을 바란다. 리메이크한 것은 절대로 원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오류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거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리메이크하는 사람은 원작에 신경을 쓰면서 만든다. 이는 마치 먹다 남은 음식을 재료로 해서 이상한 요리를 만드는 셈이다. 그런 것을 먹어야하는 관객들이 무슨 죄인가. 


멋진 삶을 살았으나 멋진 자서전을 남기지 못한 이는 있을 것이다. 비루한 삶을 살았으나 멋진 자서전을 남긴 이는 없을 것이다. 







 
 1991년 5월 <8월의 광시곡>으로 칸국제영화제를 찾은 구로사와 아키라


기타노 다케시의 신작 <아웃레이지>는 올 칸영화제에서 봤다. 최근의 그는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초현실적으로 풀어내는 영화를 잇달아 만들어왔는데, 대중이 좋아할리가 없다. <아웃레이지>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야쿠자 영화다. 때문인지 칸 현지의 반응은 '폭탄'에 가까웠다. 그래도 난 이 영화를 즐겼다. 상업적인 장르 영화로만 본다면 악당끼리 싸우다가 다 죽는 얘기는 원래 재밌지 않은가. <아웃레이지>가 경쟁 부문이 아니라 비경쟁 부문이었다면 현지의 평가도 조금은 더 후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개봉한 이 영화의 홍보사가 보도자료를 보내왔다. 제목은 '견딜 수 없이 잔혹한 명장면 베스트3'다. 잔혹한데 어떻게 보면 좀 웃기기도 하다. 이런 장면들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라이벌 조직을 함정에 빠뜨려 본의 아니게 자신들의 조직에 무례를 범하게 한 뒤 사죄의 의미로 손가락을 자르라고 한다. 라이벌 조직원은 제대로된 도구를 달라고 요구하지만, 다케시는 커터칼을 주면서 자르라고 한다. 잘 잘릴리가 없다. 그러자 다케시는 커터칼로 상대의 얼굴을 X자로 그어버린다.


 



기타노 다케시는 치과 치료를 받고 있는 상대 조직 보스를 찾아가 직접 치료해주겠다며 치료기를 뺴앗아 위와 같이 입 속을 휘젓는다. 그렇다. 치과는 그 어떤 병원보다 무섭다. 차마 보진 못했지만 예전에 <덴티스트>라는 공포영화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친 치과의사가 주인공이었다.  <마라톤맨>에서 숨어살던 나치 의사 로렌스 올리비에는 자신의 정체를 밝혀내는 더스틴 호프만에게 치과 치료 고문을 가한다. <올드보이>에서도 최민식은 오달수의 이빨을 뽑았다. 치과는 무섭다.  




라이벌 조직을 제거하고 그후로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라고 하면 좋겠지만 그럴리가 없다. 기타노 다케시의 조직원들도 이상하지만 잔혹한 방식으로 복수당한다. 이런 방법으로 죽이는 야쿠자가 정말 있을까. 감독이 고안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충격적인 건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배우 가세 료의 모습이다. 그는 주로 유약하고 고독하고 생각있고 고독한 도시 남자 역으로 많이 나오는데, 빼어난 꽃미남은 아니지만 독특한 느낌을 줘서 인기가 있다. 최근엔 무려 구스 반 산트의 신작에 유령으로 캐스팅돼서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아웃레이지>에도 나오는데, 처음 봤을 때 못 알아봤다. 아래와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가세 료 팬들은 <아웃레이지>를 건너 뛰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