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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의견과 현상

먼저 좀 뜬금없어 보이는 비유. 스릴러 영화에 등장하곤 하는 연쇄살인마들은 종종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부른다. 테크닉의 독창성, 행동의 과감함 혹은 무모함, 그리고 삶에서의 무용함 등 어찌 보면 살인과 예술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누구라도 그 기괴한 살인은 예술이 아님을 알고 있다. 대단한 미학 이론을 배우지 않았다해도, 그저 직관적으로 '안다'. 



요즘 인기있는 예술가, 아니 살인자 한니발


난 요즘 언론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한다. 언론에서 헷갈리는 건 '예술과 살인'이 아니라 '의견과 현상'이다. 특정한 정파 혹은 이익집단의 목적을 위해 복무하는 기관지가 아니라면, 언론은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의견을 고루 청취할 필요가 있다. 그 아무리 보수적인 언론이라도 진보적인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쪽의 주장이 아무리 근거가 강하다 해도, 그 반대의 항변도 일단은 들어봐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시늉이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 언론은 '정론'이라는 이상에 조금씩 근접한다. 


그러나 사회 속 여러 사람, 집단의 '반응'을 모두 '의견'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 '의견'이란 그것이 공론의 장에서 충분히 논의될만큼 합리적, 이성적이며, 그래서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청취할만하다는 점을 전제한다. 하지만 지금 언론에 등장하는 어떤 '의견'은 그렇지 않다. 


에를 들어 일간베스트. 5.18에 대한 이들의 폄훼는 '의견'인가. 아니면 한기총. 동성결혼에 대한 찬반 토론에서 이들을 '반대'쪽 패널로 섭외하는 것이 올바른가. 나는 이들의 반응이 공론의 장에서 다뤄지기 어렵다고 본다. 마치 "난 계란을 풀지 않은 라면을 좋아해", "난 비오기 전날 밤 기분이 좋아"와 같은 말에 대해 시비를 가리기 어려운 것처럼. 


물론 이들은 분명 한국 사회의 한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갖는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과소대표됐는지 과대대표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언론에서 이들의 존재를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언론은 이들의 존재를 어떻게 반영해야 할까. 난 그것을 '의견'이 아니라 '현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한기총 대표의 말들은 오피니언면이 아니라 사회면에서 다뤄야 한다. 


이들의 생각을 오피니언면에 게재한다면, 그 면이 흥미진진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어떤 '언론'은 그렇게 한다. 종편이나 케이블 텔레비전을 보면 양극단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이런  프로그램엔 종종 '끝장'이라는 말이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이런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은 각자의 생각이란 것을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언어로 반대편 허공에 쏘아대고는 출연료와 약간의 유명세를 얻어 사라진다. (그렇게 싸우는 척 한 뒤 카메라가 꺼지면 히히덕대며 술이라도 한 잔 하러 갈지도 모르지) 이런 말싸움은 가끔 재미있고, 시청률도 얼마간 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선정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