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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의 손, 장민승 사적인 팁을 얻어 추진한 인터뷰였는데, 대단히 즐겁고 알찬 시간이었다. 그는 음악 만들고, 가구 만들고, 사진 찍고, 설치 한다. 다만는 글쓰기엔 좀 취약하다고 고백했다. 나로선 다행이다. 장민승(36)은 미다스의 손을 가졌다. 음악을 하다가 가구를 만들었고 또 얼마 있다가 사진을 찍고 설치 작업을 했다. 그리고 모두 성공했다. 작업 매체를 바꾼 이유는 “싫증을 잘 느낀다”는 것이다. 평생 한 가지만 하고도 이름을 못떨치는 사람이 보기엔 복장 터지는 노릇이다. 그는 최근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후보 3인에 올랐다. 서울 강남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는 그의 신작 가 전시중이다. 어두컴컴한 복도에는 일본의 단시 하이쿠 6편이 수용성 종이에 인쇄돼 걸려있다. “파도는 차갑고, 물새도 잠들지 못하는구나” “꿈은 마.. 더보기
모험은 무엇이든 좋다 도합 8시간에 이르는 3부작, 9시간이 넘는 3부작을 모두 본 관객들은 아마 1시간 이상 이어지는 치열한 전투 장면, 반지가 상징하는 권력에 대한 욕망, 탐욕에 병든 잔인한 용 스마우그, 엘프들의 아름다운 외모 등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내겐 험난한 모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호빗들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쩌면 피터 잭슨 감독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듯한 이 결말부에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호빗족 빌보 배긴스는 평화로운 샤이어 마을에서 자족하며 살아간다. 푸른 초원 위 아늑한 마을에는 장난끼 있지만 온순한 종족이 모여 산다. 그러나 빌보가 마법사 간달프와 난쟁이족의 모험에 본의 아니게 휘말리면서 그의 삶은 이전과 달라진다. 뜻밖의 여정을 떠난 빌보는 수차례 죽을 고비를 .. 더보기
세상에 이런 곳이. 대안의 대안 전시공간들 커먼 센터의 모습은 오랜만의 문화충격. 여러모로 재미있었다. 아무튼 이 기사를 마지막으로 건축, 디자인 담당은 해제. 영등포역을 나와 노숙자 급식소, 가발가게, 철학관, 직업소개소 등을 거치니 목적지가 나왔다. 그러나 낡아빠진 4층짜리 건물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청춘과 잉여’전 참여 작가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현수막만이 이 허름한 장소의 용도를 말해주었다. 공간 내부도 ‘불친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디서부터 전시가 시작되는지 알 수 없었고, 작품이나 작가 이름도 붙어있지 않았다. 전시공간인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바닥에 붙은 작은 화살표를 따라 검은 커튼을 젖히고 뒷마당으로 돌아가야 했다.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난방은 되지 않았다. 곱은 손을 불어가며 다닥다닥 붙은 작은 방들을 옮겨 다녔다.. 더보기
2015 달력들 왕년엔 문화부 언저리에 있으면 예쁜 달력들이 참 많았다. 아무래도 미술관, 갤러리 등 아름다움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들이 많다보니, 이들이 만드는 달력들도 멋있던 것 같다. 2014년 말을 문화부에서 보내고 있다. 하지만 회사로 들어오는 달력의 양은 예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다들 형편이 어려워 달력을 찍지 않는 것일수도 있고, 이제 사람들이 벽걸이 달력을 필요로하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다. 짐작으로는 겸사겸사인 것 같다. 그래도 주변에 있는 몇 가지 달력을 챙겨 펼쳐 보았다. 굳이 달력이 필요 없어도, 이 정도면 걸어도 될 것 같다. 그 유명한 리움의 달력이다. 풍속화를 주제로 삼았다. 인쇄의 질이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다. 해외에서 인쇄해 들여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문제작이다. 디자인회사 '육공일.. 더보기
집이란 무엇인가, 두 개의 건축전시회를 보고 공교롭게도 집과 연관된 두 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아르코 미술관은 규모가 큰데다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서울시립미술관은 참여 작가들의 이름값이 있다. 현대 건축의 화려한 구상과 기술은 관공서, 기업, 도서관, 미술관 등 거대한 건물에서 빛나지만, 삶의 기본은 역시 집이다. 두 발 뻗고 편히 쉴 공간은 사람의 기본권이다. 집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내년 2월 15일까지 열리는 ‘즐거운 나의 집’전은 집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정리해볼 수 있는 자리다. 전시의 큰 틀은 고 정기용 건축가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따왔다. “집은 유년시절을 보낸 기억의 집, 현재 사는 집, 살아 보고 싶은 꿈 속의 집이 있다. 이 세 가지 겹친 집에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주최측.. 더보기
DDP는 명품백, 서대문형무소는 엽기테마파크, <서울건축만담> 건축가 최준석, 차현호씨는 소설가 김연수, 김중혁씨의 릴레이 에세이를 모델로 삼아 '건축 만담'을 구상했다고 한다.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책을 '건축책'이라고 취급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재미있는 만담 같은 책도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실제 책으로만 보면 한국 건축가들은 모두 철학자 같다) 기사는 둘을 인터뷰한 후 책 내용과 섞어서 구성했다. 책은 꽤 술술 읽힌다. 이 남자들, 치맥(치킨과 맥주)만 15년째다. 1999년 1월 한 대형설계사무소 면접장에서 만난 이후 한 달에 1~2번은 치맥을 먹었다. 만나면 건축 이야기, 사는 이야기,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고, 티격태격 다투기도 했다. 그 사이 한 명은 자신의 사무소를 차렸고, 한 명은 대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각자 몇 권의 건축책을 냈고,.. 더보기
찬란한 날은 지났다 <더 지니어스: 블랙 가넷>를 보며 요즘 내가 챙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EPL 첼시 경기, 아내는 tvN의 뿐이다. 아내가 볼 때 함께 를 보곤 하는데, 최근 두 차례의 방영분은 꽤 인상 깊었다. 이 프로그램은 매번 규칙이 복잡한 게임을 제시한 뒤 출연자들을 하나씩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최종 탈락자를 정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2명이 데스 매치를 벌인다. 매번 나오는 게임의 규칙이 복잡해, 나같은 시청자는 설명을 듣고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참가자들도 게임의 핵심을 신속히 파악해 플레이하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게임의 규칙을 잘 이해한다고 이기는 건 아니다. 여러 사람이 참여하기에 편을 먹거나 견제하거나 속이는 심리전이 벌어진다. 명석한 두뇌, 강한 정신력, 다른 사람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친화력 혹은 카리스마를.. 더보기
초인의 초상, <루시언 프로이드> 루시언 프로이드(1922~2011)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다. 현재 내 미감은 설치, 영상, 팝아트보다는 구상에 더 끌린다. 리움에 갈 때마다 상설관에 있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앞에 한참을 머물곤 한다. 반면 마크 로스코의 거대한 색면 분할은 스윽 스치고 지나가는 정도다. 베이컨은 "추상은 장식일 뿐"이라고 비아냥 거렸다고 한다. 내 주제에 베이컨처럼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로스코, 폴록의 그림보다 베이컨, 프로이드의 그림에 끌리는 건 분명하다. 동시대 같은 공간에서 활동한 베이컨과 프로이드는 친구였고 서로의 초상을 몇 차례 그려주기도 했는데, 작은 오해와 다툼으로 인해 의절한 뒤 평생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조디 그레이그가 쓴 (다빈치)를 읽었다. 어린 시절부터 프로이드의 .. 더보기
아빠 김근태, 딸 김병민 기자 생활 내내 문화부 부근에 주로 있어서 정치인들과는 인연이 없지만, 고 김근태 의원과는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2003년 가을 수습 기자 시절, 편집국 내 각 부서를 견학하다가 정치부에 들렀을 때였다. 정치부 선배는 10여명의 수습 기자들과 김 의원의 만남을 주선했다. 수습 기자들은 나란히 앉아 각자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문제는 자리 때문에 어쩌다 내가 첫 질문자로 지목됐다는 것이다. 난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비슷한 이력을 걸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중의 큰 인기를 얻은 반면, 김근태 의원은 별로 인기가 없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은 인터뷰이와 만나자마자 이런 질문을 던지면 "나랑 싸우자"라는 뜻이라는 것쯤은 안다. 이 질문은 대부분의 정치부 기자들이 생각.. 더보기
초현실적인 말의 질주, <카발리아>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공연을 보았다. 아니 셋이 같이 본 것은 처음인가? 어린이용 공연은 둘 중 하나만 들어갔으니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미션을 포함해 130분에 달하는 공연이라 아이가 지겨워할지 몰라 걱정을 했지만 기우였다. 어린이 관객이 많았고 대체로 즐겁게 관람하는 분위기였다. 중세 배경의 판타지 영화에서 본 듯한 말들이 눈 앞에서 질주하는 모습은 초현실적이었다. 수십 개의 말 발굽이 만드는 가설 좌석의 진동은 이 쇼가 현실임을 일깨워주었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내 화이트빅탑씨어터에서 공연중인 는 ‘태양의 서커스’ 공동설립자 중 한 명인 노먼 라투렐이 연출한 아트 서커스다. 는 2003년 캐나다에서 첫 공연된 이후, 미국, 독일, 호주, 싱가포르 등의 52개 도시를 순회하며 선보이는 중이다. 아랍.. 더보기
그 남자가 일하는 법, <모스트 원티드 맨> **스포일러 있음. 안톤 코르빈 감독의은 스파이 소설의 명장 존 르 카레(1931~)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83세의 르 카레는 올해에도 신작을 발표했다. 소설 은 2008년인데, 냉전 시대부터 스파이 소설을 써온 존 르 카레가 나날이 변하는 현대의 외교, 정치 상황에 대해 여전히 예리한 안목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 장군이 체첸의 미성년 여성을 성폭행해 태어난 청년 이사 카르포프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여러 곳을 떠돌며 신산한 삶을 살아온 그는 심성이 곱고 이슬람교에 대한 신심이 강하다. 독일 함부르크로 밀항해 온 카르포프는 한 소규모 은행을 찾아가려는 중이다. 그곳에는 아버지가 부정하게 모은 거액의 돈이 예치돼 있다. 카르포프가 돈의 쓰임새를 두고 갈등하는 사이, 독일의 온건한 정보요원과.. 더보기
도서정가제보다 중요한 것 니체의 , 칸트의 같은 책이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인터넷 서점들은 하루 종일 과부하 상태더니, 저녁 무렵부턴 아예 접속조차 되지 않았다. 접속자가 갑자기 증가해 서버가 다운된 모양이었다.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기 전날인 20일의 풍경이었다. 매일이 이렇다면 저자, 출판사, 서점이 모두 콧노래를 부르겠지만, 이런 소동도 이날이 마지막이다. 유행 지난 옷가지를 팔아치울 때나 쓰던 ‘창고정리’ ‘폭탄세일’이란 말을 책 사면서 들을 줄이야. 이 소동 속에 살 사람도 사고 안 살 사람도 샀다. 며칠 뒤 독자에게 배송될 은 아마도 책장에 고이 모셔진 채 위풍당당함을 뽐내지 않을까. “그 책 언제 읽을 거냐”고 묻지는 말자. “읽어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 더보기
세월의 마스터, <런어웨이> 장르 단편 모음집인 에서 시작해 조이스 캐럴 오츠, 레이먼드 카버까지 영미권 작가들의 단편집들을 잇달아 읽다보니 어느덧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앨리스 먼로에 이르렀다. 국내에 몇 권의 작품집이 소개돼 있는데 난 얼마전 가디언이 '최고의 단편선 10권' 중 하나로 뽑은 (2004)를 골랐다. 가디언은 이 작품집에 대해 "는 먼로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며, 그가 가진 최고의 기술들, 즉 때로 수십년에 이르는 시간의 매끄러운 이동, 몇 페이지로 전 생애를 전개하는 능력, 단순한 언어를 통한 복잡한 진실의 탐구 등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나를 사로잡은 건 가디언이 첫번째로 꼽은 기술이다. 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 표제작 '런어웨이'를 제외하면, 나머지 작품들은 수십 페이지로 수십 .. 더보기
피가 듣는 삶의 단면,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1938~1988) 예전에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몇 권을 읽은 적이 있다. 를 들고 있는 걸 본 한 친구가 표지의 제목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이거 그런 책 아니다'라는 식으로 해명을 한 적도 있다. 사실 그 책은 책 디자인이 좀 그래서 레이먼드 카버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오해할만도 하다. 아무튼 그때 카버를 읽었을 대는 "좋았다" 정도였다.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일환으로 다시 나온 을 읽은 뒤에는 그냥 입이 벌어졌다. 카버를 처음 읽은 뒤로도 10년이 흘렀고, 그 사이 나도 그만큼의 나이를 먹었고, 그래서 카버가 그린 삶의 정수를 조금 더 실감나게 느끼고 있는 걸까. 카버를 두고 '미국의 체홉'이라고 흔히들 얘기하지만, 난 체홉의 단편 몇 편을 읽으며 그다지 강렬한 인상.. 더보기
새로운 볼거리, 오래된 주제, <인터스텔라> **스포일러 있음. 촬영장에서도 잠바데기 같은 건 입지 않으시는 젠틀맨, 크리스토퍼 놀란(왼쪽) 크리스토퍼 놀란의 를 보러 간 극장 옆에는 세계 최대의 스크린임을 입증하는 '기네스 레코드' 표시가 붙어있었다. 황폐하고 좁은 지구를 떠나 끝없이 넓은 우주를 탐험하는 영화이니 큰 스크린에서 보는 것도 좋겠지만, 난 이 영화의 주제가 매우 고전적이거나 보수적이거나 고루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형용사를 택할 지는 아직 결정 못했다. 가 그리는 지구의 근미래는 그 어느 디스토피아 영화보다 디스토피아적이다. 차라리 혜성과 충돌하거나 외계인의 침략을 받거나 유전자 변형 괴물이 나타나거나 엄청난 독재 체제 아래서 신음하고 말지, 온 지구가 누런 먼지 구덩이 속에서 조금씩 목 마르고 굶주리고 헐벗어 죽어가는 모습은 끔찍하.. 더보기
마을은 뜨는데 주민은 떠난다, 젠트리피케이션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골목’이란 이름의 엘피바를 운영하는 김진아씨(39)는 낮시간의 동네 풍경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부동산업자들이 사모님들 모시고 돌아다니는 걸 보면…. 언론에선 연일 ‘마지막 노른자위 땅’ 같은 기사를 내고, 그러면 임대료는 또 올라요.” 골목은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계약 기간이 2년이니 아직 시간은 남았다. 김씨는 “한 번 정도는 더 재계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다음은 장담하기 어렵다”며 “앞집에 세들어 살던 노부부도 얼마 전 어딘가로 이사간 것 같다”고 말했다. 1960~1970년대 서구의 도시 개발 과정에서 활발히 벌어지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홍익대 부근, 삼청동, 가로수길에 이어 최근엔 홍대 인근의 합정동과 상수동, 서촌,.. 더보기
삼각관계의 공식, 헝거게임 시리즈. 에서 전편과는 차원이 다른 악역을 보여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무성의한듯 악랄하게 연기한다. RIP 제니퍼 로렌스가 주연한 (2012)과 (2013)를 뒤늦게 봤다. 조만간 시리즈의 3편인 이 개봉한다. 이 시리즈가 미국에선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나, 한국에선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는 정도의 정보만 알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청소년에게 인기를 얻은 이유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다. 우선 모르겠다는 이유. 영화가 상당히 시니컬하다. 독재국가 판엠은 부와 권력이 집중된 캐피톨을 중심으로 한 13개 구역으로 구성됐다 74년전 13개 구역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됐고, 판엠은 이후 매년 각 구역에서 10대의 남녀 1명씩을 뽑아 최후의 1인이 남을 떄까지 싸우게 하는 '헝거 게임.. 더보기
신해철과 그의 시대 감수성도 체력과 같이 평생을 두고 갈고 닦아야 한다. 끝없이 새로운 감수성을 계발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구려'진다. 본인은 자신의 감수성이 여전히 쿨한 줄 알겠지만, 새로운 자극을 받지 못한 감수성은 그저 구닥다리다. 그러나 새 자극에도 좀처럼 바뀌지 않은 채 한때의 수준으로 고착화하는 감수성이 있다. 음악이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새 음악을 찾아듣고 좋아하지만, 한창 음악을 들을 나이인 10대 때 듣던 음악은 그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한다. 난 근 몇 년 사이 주로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들었지만, 지금도 여드름 난 소년 시절의 음악들(건스 앤 로지즈, 메탈리카, 레드 제플린, 그리고 이건 부끄럽지만 스키드 로 등등등)을 들으면 가슴이 뛴다. 80년대 후반~90년대 중반 음악을 들은 세대들은.. 더보기
간첩이란 무엇인가, 박노자와 박찬경의 대담 기사가 나간 후 관련 코멘트가 세 건 있었는데 하나는 박노자 교수가 언제까지 체류하느냐는 것이었고(기사에 이미 출국했다고 씀), 다른 두 개는 박노자 교수의 체형 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아시아는 위급하다.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격변기다. 지금 예술은 무엇을 할 것인가. ‘간첩, 귀신, 할머니’란 주제로 열리는 미디어시티서울 2014(11월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은 ‘아시아’를 화두로 삼았다. 한국사회에 대해 비판적·성찰적 시선을 제공해온 노르웨이 오슬로대의 박노자 교수(41)가 미디어시티2014 강연을 위해 내한해 박찬경 예술감독(49)과 23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났다. -전시 어떻게 보셨습니까. 박노자=황홀경이었어요. 아직 이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 적군파가 국.. 더보기
우리는 무언가를 버려야 성장한다, <보이후드> **스포일러 있긴 한데, 관람에 영향 미칠 정도는 아닐 듯. 사실 스포일러랄 게 없는 영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신작 를 봤다. 링클레이터가 요상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영화 제목은 얼마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날 다시 익혔다. 그날 한국의 문화부 기자들은 외국의 한 도박 사이트를 종일 들락날락 해야 한다. 그곳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두고 도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수상자인 파트릭 모디아노는 5위권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사이트에서는 내년초 아카데미 수상자를 두고도 벌써 도박판을 벌이고 있는데, 는 가장 유력한 작품상 후보였다. 배당율은 2/1. (지금 확인해보니 마찬가지다. 참고로 2위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와 안젤리나 졸리 감독님의 으로 둘 다 4/.. 더보기
냉소적인 부음, 소녀 수집하는 노인(+10가지 글쓰기 팁) 조이스 캐롤 오츠(1938~)의 단편집 을 읽다. 살아있는 미국 작가 중 매우 각광받는 인물이라고 하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올해도 도박 사이트에서 10위권 내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섯 편의 단편은 모두 영미권 문학 대가의 말년을 상상해 그리고 있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손에 의해 요리된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마크 트웨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헨리 제임스, 에드거 앨런 포, 에밀리 디킨슨. 디킨슨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다. 내가 '요리'라고 표현한 건 이유가 있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각 작가의 작품 혹은 삶에서 영감을 얻어 그들의 말년을 재현했다. 책을 읽기 전이라면 이것이 앞선 대가들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읽으면 조이스 캐롤 오츠가 그린 그들의.. 더보기
가난하지만 빈곤하지 않은 리슨투더시티 남산 회현시범아파트는 44년이라는 세월을 고려하면 상당히 깨끗하게 관리된 편이었다. 이곳에 둥지를 튼 젊은 예술가들은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들의 행동은 '어떻게든 되겠지'식의 근거 없지만 낙관적인, 그래서 사랑스러운 패기에 근거한다. 물론 거대한 상대에 맞서야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표정에는 30% 정도의 망설임과 두려움도 스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 30%가 오히려 이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남산 회현시범아파트의 사무실 부근에서 포즈를 취한 리슨투더시티 멤버들. 왼쪽부터 정영훈, 권아주, 박은선씨. /김창길 기자 예술 공동체 ‘리슨투더시티’의 사무실은 1970년 완공된 남산 회현시범아파트에 자리 잡고 있다. 어둡고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복도를 따라가니 이들의 거처가 나왔다. 한가하게 남산.. 더보기
안도와주는게 도와주는 것, 부산영화제와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서병수 부산시장이 개막인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너는 안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처리가 서툰 사람을 놀릴 때 하는 말이다. 그런데 문화의 영역에서 이 농담은 종종 진리가 된다. 특히 관이 후원하는 문화행사의 경우가 그렇다. 정확히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이 유지될 때 문화행사가 성공하고 관도 체면을 살린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 초기에 빠르게 자리잡은 배경에도 이런 원칙이 있었다. 문화 관료로 잔뼈가 굵었던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은 관의 간섭을 막기 위해 온갖 수를 다썼다. 당시엔 영화제 출품작도 규정상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했다. 그러나 영화제에는 온갖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 방식의 영화가 출품된다. 만일 .. 더보기
관계의 다른 단계, <엣지 오브 투모로우> 저 강화복은 10년 내로 실용화되지 않을까 싶다. **스포일러 포함 VOD로 뒤늦게 를 봤다. 52세의 톰 크루즈는 여전히 준수한 액션을 선보인댜. 크루즈는 심지어 극중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돼 최전방에 차출돼 생고생을 한다. (그리고 여러번 죽는다). 쓸만한 윙어가 나타나지 않아 라이언 긱스가 은퇴를 번복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로 돌아와서 50살까지 뛰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까. 정체모를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해 지구연합군을 궤멸시키고 있는 상황. 뺀질한 공보장교 케이지(톰 크루즈)는 전방에서 홍보영화를 찍으라는 장군의 말을 거역하려다가 이등병으로 강등돼 상륙작전에 투입된다. 종이에 베는 것도 참지 못하는 이 남자는 전장에서 무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해 허둥대다가 죽는다. 그런데 죽은 뒤 다시 이등병으로.. 더보기
낙관과 무대책 사이, <큐레이션의 시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예전 출판 담당일 때 슬쩍 제목만 봤던 (사사키 도시나오/민음사)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이런 류의 일본 서적이 그러하듯, 이 책도 마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다. '큐레이션'은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의 저자 사사키 도시나오는 큐레이션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특히 인터넷의 시대 이후 도처에 쏟아지는 정보를 적절히 취합한 뒤 추려 내놓는 행위를 통틀어 큐레이션이라고 한다. 예전이야 콘텐츠가 주인이었지만, 이젠 아무리 뛰어난 콘텐츠라 하더라도 수많은 콘텐츠 중의 하나로 묻힐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콘텐츠의 발굴은 창작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논지다. 저자는 이를 위해 큐레이션에 의해 빛을 본 사례들을 언급한다. 아마추어 화가가 .. 더보기
제 몸을 제 맘대로 부리는 사람들, <신체지도 다시 그리기> 단상 오랜만에 무용 공연을 보고 왔다. '문화'라는 넓은 카테고리에 속해도, 공연마다 관객의 분위기가 다르다. 클래식 음악, 대중음악, 무용, 뮤지컬, 전통적인 회화, 미디어아트 관객의 느낌은 미묘하게 다르다. 성급한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몇 가지만 예를 들면 클래식 음악 공연엔 "나 이런데 오는 사람이에요"라고 머리 위에 말풍선을 달고 있는 중장년층이 좀 계시다. 오늘 본 무용 공연에는 무용수임이 티가 나는 관객이 많았다. 매우 짧은 머리카락에 펑퍼짐한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었으며 몸매가 날렵해 보이는 남자 관객은 어떠한 뮤지컬 전용관, 미술관에서도 만나기 어렵다. 오늘 본 공연은 스위스 링가무용단의 였다.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의 일환으로 열리는 공연이었다. 취재를 위해 며칠전 연습실을 방문해 .. 더보기
시베리아, 시베리아 좋은 기회로 시베리아에 7박8일간 다녀왔다. 여정에는 13시간, 17시간의 버스 여정이 각각 한 차례씩 있었으니, 이틀은 그냥 버스 안에서 보낸 셈이다. 자다 깨니 나무, 자다 깨니 벌판, 자다 깨니 아까 그 나무... 정말 넓긴 넓었다. 카메라에 담아본 풍경을 올린다. 이르쿠츠크에서 우스트일림스크까지 가는 17시간의 버스 여정 중 잠시 내려 찍음. 노르스름하게 물든 것이 자작나무다. 하얀 줄기에 손을 대면 하얀 가루가 묻어나온다. 버스 창밖으로 찍은 풍경. 기계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땅이다. 우스트일림스크의 숙소에서 바라본 앙가라강과 시가지. 300여개의 강이 바이칼호로 흘러들고, 그 중 하나만이 빠져나와 북으로 흐르는데 그 강이 앙가라 강이다. 앙가라 강에 있는 세 개의 수력발전소중 가장 북쪽에.. 더보기
다시, 예술이란 무엇인가, 미디어아트 전시회 2제 공교롭게 미디어아트 전시회 2건이 비슷한 시기 열리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는 미디어시티서울 2014와 금천문화공장에서 열리는 다빈치 크리에이티브다. 또 공교롭게도 두 전시회의 주체는 모두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울문화재단이다. 시기와 주제가 다소 겹치기에 두 기관 사이에 모종의 껄끄러움이 없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미디어시티서울 2014는 올해 내가 본 몇 안 되는 전시중 최고다. 솔직히 리움 10주년 기념전보다 좋았다. 물론 리움도 훌륭했다. 어딘가에 숨겨뒀던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 내놓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미언 허스트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은 (이렇게 말하면 천박하게 들리겠지만) '돈값'을 한다. 이전에 상설전시돼있던 허스트와 부르주아의 작품은 별로 좋지 않았는데 .. 더보기
작심한 단편모음집, <안 그러면 아비규환> 단편집을 읽으면서 한결같이 주옥같은 작품들만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에, 몇 편에서라도 번뜩이는 인상을 얻으면 만족하는 편이다. 장편은 읽는데 어느 정도의 노력, 시간을 투자해야 하므로 그만큼 기억에도 남는 반면, 쉽게 읽히는 단편은 쉽게 잊힌다. 이지 컴, 이지 고. 은 "영미권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작정하고 쓴 ‘장르’ 단편소설 모음집"를 표방한다. '공포'라는 주제 외엔 공통점이 전혀 없는 단편집이라고 홍보되지만, 어떤 것들은 별로 공포스럽지도 않다. 제목을 표제로 따온 닉 혼비의 '안 그러면 아비규환'은 티비 시리즈 의 한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였다. 별 볼일 없는 15살짜리 남자 아이가 교내의 퀸카 여핛생과 섹스를 하게 된 사연을 1인칭의 구어체로 풀어놓는다. 남자 아이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 더보기
보비 샌즈와 김영오 (2008)는 (2013)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감독으로 기록된 영국 출신 스티브 맥퀸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마거릿 대처가 기세등등하게 집권했던 1981년 북아일랜드 메이즈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은 북아일랜드에서 영국군이 철수할 것을 주장하며 무장 투쟁을 벌였다. IRA를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규정한 영국정부는 이들에 대한 전면적인 체포 작전을 시도했다.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된 IRA 조직원들은 영국정부에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대처 정부는 “테러리스트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라며 거절했다. 한때 전세계를 호령한 제국이었던 영국은 무기의 질, 군인의 양이 압도적이었다. 대처는 협상을 모르는 단호한 정치인이었다. 세상에서 고립돼있던 I..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