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아니고, 정말 조만간 희랍 비극 읽기에 도전 예정. 마침 집에 챙겨둔 책이 있었음. 예전에 강대진 선생 책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그린비) 읽은 뒤 <일리아스>에 돌입한 바 있음. 기대.
베르나르디노 메이, <아이기스토스와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하는 오레스테스>, 1654년, 이탈리아 시에나 살림베니 궁전 소장.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죽이고 있다. 그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는 이미 피를 흘린 채 쓰러졌다. 오레스테스의 뒤에는 복수의 여신 둘이 나타났다.
비극의 비밀
강대진 지음/문학동네/400쪽/2만2000원
서양고전학자인 저자는 ‘비극’이 ‘슬픈 이야기’라는 통념을 반박한다. 실제로 오늘날 ‘비극’으로 번역된 희랍어 ‘tragoidia’에는 ‘슬프다’는 뜻이 들어있지 않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독자들이 특히 희랍 비극을 읽을 때 등장인물이 처한 불행과 겪는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면 핀트가 어긋난 독서가 되기 쉽다. 희랍 비극이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 불행, 고통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 해도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희랍 비극을 읽어내기는 지난한 일이다. 기껏해야 오이디푸스, 엘렉트라 정도의 이름을 정신분석학의 용법대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제 한 말이 오늘 무의미해지는 세상에서, 희랍 비극은 2500년 세월을 너끈히 견딘 텍스트다. 거기엔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다. 단지 희랍 비극의 위대함을 직접 알기 위해선 몇 가지 사전 지식이 필요할 뿐이다. <비극의 비밀>은 희랍 비극에 대한 최상급의 가이드북이라 할만하다.
저자는 12편의 희랍 비극을 ‘콩알 헤아리기’ 식으로 세세하게, 그러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정수를 뽑아 설명한다. 주제와 줄거리를 문학적으로 해석하거나 거기서 인생의 교훈을 끌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초심자가 지나치기 쉬운 형식적·구조적 특성까지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특성이 어떤 의미를 낳는지 분석함으로써 깊이 있는 독서로 안내한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3부작 비극인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보자. 아르고스의 아가멤논 왕이 트로이아 전쟁에서 돌아와 자기 부인 클튀타임네스트라의 손에 죽는 과정을 그린 <아가멤논>, 그로부터 7년 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죽임으로써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가 복수의 여신에게 쫓겨다니다가 아테나이에서 재판을 받고 풀려나는 <자비로운 여신들>이 그 3부작이다.
내용만 보면 오늘날 한국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어떤 드라마들 이상으로 패륜, 불륜, 피범벅이지만, 아이스퀼로스는 이 비범한 작품 안에 복수라는 인간 감정의 원초적 요소와 그것이 법이라는 문화 형태로 해소되는 과정을 그려냈다. 아가멤논, 클뤼타임네스트라, 오레스테스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어 가족 중 누군가를 죽였고, 그 살인에 대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의 죄과를 주고 받았다. 하지만 인간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이러한 피의 복수는 어디선가 중단돼야 한다. 이를 위해 도입된 것이 <자비로운 여신들>에 나타난 재판 제도다. 말하자면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인류 역사에서 사고가 비약하는 순간을 재현해 보인 것”이다.
오늘날의 드라마·연극·영화 관객은 극의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스포일러’에 민감하지만, 고대 그리스 관객들은 줄거리를 이미 알고 비극 공연을 보았다. 관건은 속속들이 알려진 이야기를 각기 다른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 다르게 보여주느냐 하는 점이었다. 소포클레스는 오레스테스보다 그의 누이 엘렉트라에게 더 주목했다. 엘렉트라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자들과 한 집에 살면서 그들의 처분에 숙식을 맡겨야 하는 비참한 처지다. 그래도 엘렉트라는 누구보다 섬뜩한 복수심을 간직한 채, 어머니를 찌르려는 동생에게 “한 번 더 쳐라”고 외치는 인물이다.
반대로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에서는 정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악인들이 온화하고 예의바르게, 정의를 집행하는 이들이 극단적이거나 나약한 인물로 그려진다.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는 아예 농부의 아내로 물동이를 든 채 등장한다. 오레스테스는 복수할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매번 주변 사람들에게 방법을 묻는 우유부단한 남자다.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에서 “이루어진 정의는 불분명하나 거기 수반된 고통은 너무나 뚜렷하다.”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는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감당할 수 없어 쩔쩔매는 젊은이들이다.
가장 유명한 희랍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는 특유의 집요한 이성으로 안개 뒤의 진실을 찾아나서지만, 결국 그 진실에 의해 파멸한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서 최고 권력자는 내전을 치른 적의 장례를 금지하지만, 안티고네는 그렇게 널부러진 오빠의 장례를 당당히 치른다. 여기서 남성이 만든 국가의 법과 여성이 지키는 가족의 법이 충돌한다. 권력자가 증오와 차별을 내세우자 안티고네는 사랑과 평등을 이야기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희랍 비극이 한 뼘 앞으로 다가온 듯 하다. 이제 원전 번역을 읽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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