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의 나라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304쪽/1만3000원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생산성’은 놀랍다. 지난 한 해 동안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은 <안철수의 힘>을 비롯해 6권이다. 올해도 1월 나온 <증오상업주의>를 시작으로 신작 <갑과 을의 나라>까지 벌써 3권이다. 2~3달에 한 권씩 책이 나오는 셈이니, ‘(독자가) 읽는 것보다 (필자가) 쓰는 것이 빠르다’는 말이 나와도 무리가 아니다.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하는 녹취록이 공개되고, 검찰이 남양유업 본사를 압수수색했음을 알리는 경향신문 기사는 5월 7일자에 게재됐다. 각 언론들은 이때를 기준으로 한국 사회의 ‘갑을 관계’에 대한 기획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남양유업과 대리점주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는 사실은 1~2월 간간이 보도됐으나, 이때는 갑을 관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환기되진 않았다.
<갑과 을의 나라>는 20일부터 온·오프라인 서점에 배포됐다. 갑을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지 2주가 되지 않아 책이 한 권 나온 셈이다. 이 책은 월간 ‘인물과 사상’에 2007~2009년 연재된 글들 중 ‘갑을 문화’와 관련해 생각해볼만한 것들을 골라 묶었다. 최근 상황을 반영한 머리말과 에필로그는 이번에 새로 썼다.
강 교수는 한국의 갑을 관계가 보여주는 문제점을 최근의 대기업-중소기업, 본사-대리점 등 경제 관계에 한정하지 않고 좀 더 폭넓게 바라본다.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갑을 관계가 고착된 배경을 알아보고, 브로커, 선물과 뇌물, 시위 등도 갑을 문화와 관련해 살펴본다.
‘갑’과 ‘을’은 계약서를 쓸 때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일 뿐이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가 보여주듯 갑을 관계는 상호의 동등한 계약이 아니라 주종 관계를 맺는 것처럼 인식돼 왔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슬로건은 이런 인식을 압축해 보여준다. 을은 출세하면 언젠가 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현재의 굴욕을 감내한다. 한국인이 이런 심성 구조를 가진 것은 조선 시대로까지 거슬로 올라가기에, 현재 표면으로 불거진 몇 가지 문제를 고친다고 해서 갑을 문화를 전면적으로 바꾸기는 힘들다는 것이 강 교수의 견해다.
한국인들은 서열주의에 뿌리 깊게 빠져 있다.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엔 장군와 이등병이 똑같은 크기의 무덤에 안장돼 있지만, 한국 국립묘지엔 계급별로 무덤의 크기가 다르다. 계급에 따라 비석, 상석, 봉분 등도 차이가 난다. 최근의 ‘라면 상무’도 자신의 서열에 어울리는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껴서 소동을 벌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연구실의 강준만 전북대 교수/강윤중 기자
그 출발점은 관존민비의 인식이다. 백성들은 제 아무리 잘나도 평민으로 굽실대고, 제 아무리 못나도 양반으로 으스대는 문화에 질려있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고 외치며 체제 전복을 꿈꾼 혁명아들도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는 사회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그 사회 구조 안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열을 냈다. 조선 말기 대폭 늘어난 ‘가짜 양반’이 그 증거다. 일제의 침략으로 망국의 기운이 넘실대던 구한말에도 이런 분위기는 계속됐다. 적자생존·약육강식·우승열패의 가치를 내건 사회진화론이 이때 유행했는데, 이 역시 오늘날 갑을 관계의 이념적 원형이다.
나랏일을 하거나, 하다못해 이들 주위에라도 있으면 잘먹고 잘살 수 있는 구조는 해방 이후에도 지속됐다. 미군정기에는 몇 마디 영어로 미군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통역관이 큰 권력을 누렸다. 통역관은 훗날 각 분야에 광범위하게 퍼진 갖가지 브로커의 원조다. 좌파가 시민 사회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반공 블록 형성에 몰두하던 미군정은 좌파를 제압할 수 있는 치안·행정 조직을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정치학자 박찬표는 이것이 한국의 국가기구가 시민사회에 비해 과대성장한 배경이라고 지적한다.
관료의 권위주의는 정권을 넘어 이어졌다. ‘경제 발전’이라는 박정희 정권의 지상 목표는 관료와 대기업의 유착을 불렀다. 관은 기업을 조종하고, 기업은 관에 의존해 사업을 확장하면서 경영 합리화는 외면했다. 공무원들 역시 스스로 ‘정치적 도구화’되는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 정권에 충성하는 대신, 국민에게 군림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것이 합리적이며, 일단 관료가 되고보자는 고시 열풍이 부는 것도 당연했다.
관료는 퇴임해도 혜택을 누렸다. 바로 ‘전관예우’라는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각 기업의 상층부에는 전직 관료, 법조인들이 낙하산처럼 투입됐다. 전관예우를 ‘게임의 법칙’으로 받아들인 대중은 그것을 비판하기보다는 자신도 출세해 관료가 된 뒤 전관예우를 누리길 원했다.
‘인정투쟁’이 인간의 본능임을 인정한다 해도, 한국에서 인정의 잣대가 획일화된 점은 분명 문제라고 강 교수는 지적한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평등주의, 남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하는 차별주의를 함께 가진 한국인들은 ‘초강력 중앙집권주의’와 그에 따른 위계질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왔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는 “권력자의 갑질에 시달려온 을의 반란”으로 해석된다. 시위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강 교수는 ‘심정 민주주의’라는 말을 끌어온다. 이성적으로 차분히 대화하고 토론하기보다는, 잠자코 참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폭발해 민주주의가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김주열, 박종철, 이한열 등 개인의 죽음이 이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곤 했다. 남양유업 문제도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젊은 영업사원이 나이든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하는 녹취록이 공개된 후 사태가 급속히 확산됐다. 대중이 ‘욱’한 것이다.
한국의 시위 문화는 해방 정국의 반탁·친탁 시위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1945년 12월 31일 서울에서 열린 반탁대회에는 영하 20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30만명의 시민이 모였다. 당시 서울 인구는 120만명이었다.
4·19 혁명은 시위의 절정이었다. 자식이 시위를 나가겠다면 말리는 것이 보통 부모들의 심정이겠지만, 이때 어느 일간지에는 “너는 그날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라는 제목의 기고가 실렸다. 글의 화자인 아버지는 딸이 다니는 대학이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뒤 “네 젊음을 스스로 모독한 시대의 고아”라고 공개 비판했다. 이렇게 한 시대에서 터져나온 ‘정의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을 그때 사람들은 사명으로 받들었다. 국문학자 신형기는 4·19 정신의 메커니즘에는 국가주의가 작동하고 있었으며, 국가주의를 구현할 역사 주체는 5·16을 통해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시위는 문화적 행동 양식이기에, 그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4·19 직후엔 ‘데모 공화국’이란 말이 어울렸다. 초등학생들이 “어른들은 이제 데모를 그만하라”는 데모를 열 정도였다. 1990년대에는 ‘애국 시민’을 자처하는 이들이 나타나 시위의 과격화를 유도했다. 언론에선 이들을 ‘민주 불량배’라고 불렀다. 2000년대에는 홍보성 시위가 이념·정치형 시위를 압도했다. 재건축, 피해 배상, 공사 중지 등을 요구하는 민원성 집회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중반에는 촛불 집회가 크게 유행했다. 정치적 사안부터 지역 민원까지, 일단 시위를 벌이고 보자는 방식은 매우 감정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위 이전에는 합리적 의사 표시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강 교수는 “시위 공화국의 감성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동시, ‘심정 폭발’이 있어야 움직이는 권력 집단의 관행을 비판한다.
갑을 관계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정치권에서는 일제히 ‘갑을 관계 타파’를 외치고 있다. ‘을’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고, ‘을을 위한 정당’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사회 분위기에 발맞춰 계약서에 ‘갑을’이란 말을 표시하지 않겠다는 대기업도 있었다. 갑을 관계의 왜곡에 대해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언어적 해법’을 모색하는 형국이다.
강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4년을 즈음해 갑을 관계란 말이 언론에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시기를 즈음해 경제 성장이 정체기를 맞았고, 대기업 등 갑의 위치에 있는 개인 혹은 집단이 이윤 보전을 위해 을을 옥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시적인 일상이다. 진보가 선이고 보수가 악이라거나, 그 반대의 구호를 내걸어봐야 귀 기울이는 사람은 크게 줄었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에는 시큰둥하던 대중이 ‘갑의 횡포’가 구체적 사례로 등장하자 득달같이 일어나 분노한다. 신자유주의 타도, 재벌 개혁이란 말에 거부감을 느끼던 사람들도 갑을 관계에서 벌어지는 미시 권력의 횡포를 고발하는데는 열심이다.
설령 절대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의제라 하더라도 그것이 연역적이라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고 강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노무현 정권이 “연역적 개혁의 최악을 보여줬다”고 말한다. “절대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개혁마저 곧잘 이념 투쟁이나 정치투쟁으로 전락하는 현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강 교수가 지난해 안철수 지지를 선언하며 내건 ‘증오의 종언’과 맞닿아 있다. 그는 이것을 ‘시대 정신’이라고 부른다. 증오는 갑을 관계에서 나오므로 갑을 관계를 청산해야 정치 개혁을 할 수 있는데, 정작 개혁을 부르짖은 정치인들은 갑을 관계의 지속을 전제로 “나를 뽑아야 개혁할 수 있다”고 외친다. 이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
강 교수는 ‘을의 반란’이 ‘증오의 이용’을 넘어 ‘증오의 종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논객이 새롭게 던지는 어젠다가 어떤 이들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을지 살펴보는 것은 독서를 뛰어넘는 흥미로운 경험이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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