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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을 즐기다, <쇼를 사랑한 남자> **스포일러 소량 저런 미소는 어떻게 짓는 것인가. 소문은 들었지만 (원제 Behind the Candelabra) 에서 마이클 더글러스의 연기는 무시무시했다. 그의 연기가 늙은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착화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 전형을 기막히게 표현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아침에 자신의 침대에서 갓 일어난 맷 데이먼을 바라보는 더글러스의 그 눈빛, 미소!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피아니스트 월터 리버라치(더글러스)는 새 비서(겸 애인)로 스콧(맷 데이먼)을 들이고자 한다. 스콧은 이 늙은 남자의 애인이 돼도 좋은지 잠시 번민하는 척 하지만, 애초에 그는 '인생의 연인'을 찾아 방황하는 타입의 남자는 아니었다. 그가 머뭇댄 이유는 "돈에 팔려간다"는 주변의 비난을 의식해.. 더보기
본격 스티브 잡스 까는 영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2> 제목이 낚시성이긴 하지만, 에 스티브 잡스 비슷한 인물이 악당으로 나오는 건 사실이다. 별로 눈이 밝지 않은 사람도 이 악당이 잡스를 모델로 했다는 사실은 금세 눈치챌 수 있다. 공식 릴리스한 스틸 중에는 이 악당의 모습이 담긴 것이 하나밖에 없는 듯하다. 하얀 가운을 입은 주인공의 뒤를 따라가는 흰 수염 남자가 바로 그 악당이다. 당근을 연상시키는 패딩 조끼에 가려지긴 했지만, 그가 입은 옷이 검은 터틀넥 티셔츠에 청바지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이 악당은 '라이브'(LIVE)라는 회사의 CEO인데,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롤모델로 삼은 인물이기도 하다. 악당은 초반부터 본색을 드러낸다. 주인공이 전편에서 만든 음식 만드는 기계를 자신의 것으로 삼은 뒤 에너지바를 대량으로 만들어 팔겠다는 야심을 품는다. .. 더보기
안티고네 혹은 사제의 일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등 3대 그리스 비극작가의 작품 6편이 선별 수록된 (천병희 역/숲) 중에서 가장 마음을 움직인 것은 소포클레스의 였다. 기원전 441년쯤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오이디푸스 사후의 일을 다룬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왕권을 두고 다투었는데, 이 과정에서 폴뤼네이케스는 적국을 끌어들였다. 결국 형제는 전장에서 모두 죽고, 크레온이 새 왕으로 등극한다.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에게는 성대히 장례를 치러주되, 조국을 배신한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은 들짐승과 날짐승이 먹어치우도록 내버려두라고 명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친오빠의 시신을 장사 지낸다. 크레온은 왕명을 어긴 안티고네에게 분노하고 처형을 명한다. 명색이 '고대.. 더보기
왜 헬기는 안개 속으로 날아갔는가 안개가 자욱하게 낀 토요일 아침, 잠실헬기장에서 대기업 임원을 태우고 지방 공장으로 가기로 했던 헬기가 헬기장에 도착하기 전 서울 삼성동의 고층 아파트에 부딪힌 뒤 추락했다. 주민들은 무사했으나, 헬기 조종사 2명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고의 원인이 담긴 블랙박스는 현장에서 곧바로 수거됐다. 분석 작업에는 6개월이 걸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6개월을 기다리는가. 단언컨대, 6개월 뒤 이 사건의 원인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커녕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래서 언론은 이런저런 취재를 근거로 사고 원인을 '추정'한다. 물론 이 추정은 근거가 충분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김포공항에서는 이륙 허가를 내줬다. 안개가 짙었으나 규정상 이륙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안개는 불균질하다. 짙었다가 옅여지고 다.. 더보기
삶을 바꾸는 글, <모든 것은 빛난다> 정보를 주는 글은 많겠지만, 삶을 바꾸는 글은 많지 않다. 일 때문에 한 주에도 많은 책을 훑어보고 또 그 중 한 두 권을 자세히 읽는 처지이지만, 사실 책을 덮고 그에 대한 글을 쓴 뒤에도 오래 기억할만한 책은 드물다. 미국의 철학자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켈리가 함께 지은 (원제 All Thins Shining)은 일 때문에 읽은 책은 아니지만, 일 때문에 읽은 어떤 책보다 훌륭했다.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을 넘어, 삶의 지향에 영향을 미친다. 나 자신이 대단한 독서가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주중에는 일을 위한 책을 읽고 나머지 시간엔 개인의 취향에 따른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그 '나머지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이 책은 증명한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난 서슴 없이.. 더보기
어떤 하루 3주에 한 번 일요일 근무를 하고, 그 주는 금요일 휴무를 한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이렇게 3주에 한 번 있는 금요일은 아침에 아이가 유치원에 갔다가 올 때까지 온전히 나의 시간이다. 가끔 영화를 보고, 남는 시간엔 분리수거, 빨래, 청소 같은 집안일을 한다. 밀린 외고를 쓸 때도 있었고. 그런데 오늘은 마침 아이 유치원에서 1년에 한 번인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참관이 의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이럴 때 의무를 느낀다. 난 2시까지 유치원에 가야했다. 오전엔 왕십리 아이맥스관에서 를 봤다. 무려 1만8000원. 여느 영화 두 편 값이다. 그나마 왕십리 아이맥스관은 인기가 좋아서 어제 예매했음해도 자리가 좋지 않았다. 영화는 내 예상만큼 감정을 움직이진 않았다. 그러나 감정은 움직이.. 더보기
음악인 주찬권(1955~2013) 그룹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이 20일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향년 58세. 'Too young to die, too old to rock'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롤링 스톤스, 에릭 클랩튼, 폴 매카트니가 60~70이 되도록 월드 투어를 도는 세상이다.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롤링 스톤스의 다큐멘터리 를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짝 마른 할배들이 2시간동안 무대 위에서 뛰고 구르고 소리지른다. 젊었을 때 건강에 좋지 않은 '짓' 많이 했을 것 같은데. 타고난 사람들은 그런 것 상관없나보다) 난 들국화의 전성기를 동시대에 경험한 청중은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그들의 명성을 듣고 몇 장의 엘피를 사모았다. 그리고서야 '행진'이나 '그것만이 내세상' 등 익숙했던 노래들이 들국화.. 더보기
한국인은 무엇인가, <한국인의 탄생> 한국인의 탄생최정운 지음/미지북스/580쪽/2만원 한국인은 무엇이고 무엇이 되려고 하는가. 어디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질문이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최고 수준의 학술 저작으로 평가되는 의 저자 최정운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 근·현대 소설을 텍스트로 삼는 우회적 접근법을 택했다. 그는 한국 근현대 사상사 연구의 난점으로 텍스트의 부재를 꼽는다. 당시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사회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어낸 저술이 없다는 것이다. 500년 왕조가 붕괴되고 경천동지할 새 시대가 열리는 한복판에 서있던 지식인들이 이를 차분하게 조망하는 글을 남기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소설이 남아있다. 고종이 즉위한 해는 1863년이었는데, 그 뒤 43년이 지.. 더보기
뉴 파워라이터20 - 1. 엄기호 이번에 '뉴 파워라이터 20'이란 걸 선정해보았다. 출판 관계자 32명의 추천에 여러 가지 기준을 더했다. 20명을 차례로 인터뷰할 예정인데, 첫 주자는 문화학자 엄기호다. 아래에 명단, 엄기호 인터뷰, 선정 과정 등을 차례로 옮긴다. 뉴 파워라이터 20(가나다 순)고병권 사회학자김원 정치학자김종대 국방평론가박천홍 역사저술가박해천 디자인연구자신형철 문학평론가엄기호 문화학자이강영 물리학자이원재 경제평론가이주은 미술사학자이현우 서평가임승수 저술가장대익 과학철학자전중환 진화심리학자정여울 문학평론가정혜윤 라디오 프로듀서정희진 여성학자진태원 철학자하지현 정신과전문의한윤형 칼럼니스트 도움주신 분들(가나다 순)강성민 글항아리 대표·기인선 이매진 편집장·김미정 책세상 인문팀장·김미정 푸른숲 편집장·김보경 웅진지식하우스.. 더보기
바리케이드가 높을수록 우리는 더 강해질 것이다, <안티프래질> 에서 캐리가 그의 리뷰를 받고 기뻐 날 뛸 정도로 유명한 것으로 묘사된 뉴욕타임스의 미치코 카쿠타니는 이 책에 대해 장문의 혹평을 씀. 책의 내용 뿐 아니라 인간 됨됨이까지 조롱하면서 묘사. 음..."서평을 이렇게 써도 되는 거구만" 싶음. 안티프래질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안세민 옮김/와이즈베리/756쪽/2만8000원 1960년 레바논에서 태어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월스트리트의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일하다가 2006년 에세이스트로 전업했다. 2007년 내놓은 은 그의 출세작이다. 서구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모든 백조는 희다”는 명제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검은 백조(블랙 스완) 두어 마리가 갑자기 발견됐다. 여기서 검은 백조는 과거의 경험으로는 존재 가능성.. 더보기
철학자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이 치열한 무력을> 사사키 아타루의 전작에 대한 블로그글에서 일부 인용(자기 표절?) 이 치열한 무력을사사키 아타루 지음·안천 옮김/자음과모음/408쪽/1만7000원 사사키 아타루는 일본에서도 시골인 아오모리에서 1973년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봐 도쿄대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종교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는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이었다. 그는 논문을 들고 10군데 출판사를 돌아다녔으나, 무명의 저자가 쓴 800여쪽의 학술서를 선뜻 내겠다는 곳은 없었다. 2008년 을 가까스로 출판하고 2년 뒤 내놓은 책이 이었다. 제목은 사사키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인 파울 첼란의 시에서 따왔다. 그는 이 책에서 서구에는 역사를 뒤바꾼 여섯 가지 혁명이 있다고 설명한다. 중세 해석자 혁명, 대혁명, 영국혁명, 프랑.. 더보기
세헤라자데, 아빠. 어쩌다 아이를 재울 때면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아이는 두 가지 종류의 이야기를 요구한다. 지웅이와 윤우 이야기, 지웅이 이야기. (윤우는 옆 동에 사는 사촌동생인데 언젠가부터 무슨 이유에선지 이야기의 조연으로 끼어들었다. 대부분 극 초반부에 등장한 뒤에 빠진다) 전자는 일종의 판타지다. 그날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하되, 판타지 요소를 살짝 섞는다. 마치 런던 킹스크로스 역의 9와 3/4 플랫폼으로 가면 호그와트행 열차를 탈 수 있는 것처럼. 이 판타지 세계는 시간적으로 현실 세계와 겹쳐있고, 공간적으로 현실 세계와 독립돼 있다. 예를 들어 오늘밤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웅이와 윤우가 살고 있었어요. 윤우는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고, 지웅이는 밤마실을 나가고 싶었어요. 엄마가 집을 청소하는 사이, 지.. 더보기
어떻게 '양놈'들을 이길 것인가, <제국의 폐허에서> 제국의 폐허에서판카지 미슈라 지음·이재만 옮김/책과함께/488쪽/2만5000원 35년의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지금도 그 여파로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낯선 이야기겠지만, 1905년 5월 쓰시마 해협에서 일본의 소규모 함대가 러시아 주력 함대를 이겨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최종 승리를 거뒀을 때 많은 아시아인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당시 무명의 변호사였던 간디는 “일본의 승리가 사방 곳곳에 뿌리를 내려서 이제 그 열매를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고, 학생 네루는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고 돌이켰다. 배를 타고 중국으로 돌아가던 쑨원은 그를 일본인으로 오해한 아랍인 노동자로부터 축하를 받기도 했다. 러일전쟁은 “중세 이래 처음으로 비유럽 국가가 주요 전쟁에서 유럽의 열강을 격파”한 사건이.. 더보기
<월경독서>의 목수정 작가 글이나 사진으로 본 이미지 때문에 조금 '쫄아서' 만났는데, 의외로 쾌활하고 다감하심. 목수정 작가/김정근 기자 재불작가 목수정(44)은 8살짜리 딸 칼리와 함께 경향신문사 인터뷰실에 도착했다. 목수정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방학을 맞아 엄마의 나라 한국에 온 칼리는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인터뷰 내내 얌전히 앉아 있었다. 전날 밤 열린 독자와의 만남 행사에서는 엄마의 책에 사인까지 함께 하며 판매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인터뷰실에서 목수정의 일과 삶은 섞여들었다. 그의 독서 편력도 마찬가지다. 3년만에 낸 신간 (생각정원)에는 목수정이 “30여년간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읽었던 책들 가운데 근본을 뒤흔드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고 여긴 17권이 담겨있다. 그러나 목수정의 책 이야기.. 더보기
'충성'의 가치를 다시 보기, <위험한 충성> 위험한 충성에릭 펠턴 지음·윤영삼 옮김/문학동네/304쪽/1만5000원 여러 단계로 구성된 단테의 속 지옥은 밑으로 내려갈수록 큰 죄인을 가둔다. 가장 아래쪽에 있는 아홉 번째 지옥에는 불충한 자들이 모여있다. 카이사르를 죽인 브루투스, 예수를 배반한 유다 등이 이곳에서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사탄의 이빨에 영원히 물어뜯긴다. 그러나 군대에서 거수경례할 때를 제외한다면, 이제 ‘충성’(loyalty)을 이야기한다는 건 고풍스러움을 넘어 촌스럽게 들린다. 텔레비전 사극에서조차 ‘퓨전 사극’ 바람 때문인지 군주에 대한 신하의 충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아직 충성을 언급하는 세력이 있긴 하다. 우선 ‘국가에 대한 충성’이다. 한국에는 태극기를 들고 시청앞 광장을 점유하는 어르신들이 있고, 미국에서는 2001년.. 더보기
당신은 무엇이 부끄러운가,<셰임> 셀 수 없을 정도로 잦은 이성간의 섹스, 충동적인 동성애, 그만큼 잦은 자위, 영화 속 성인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의 연쇄에도 불구하고, 은 매우 엄격한 도덕주의를 설파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음란한 것은 주인공의 성기를 뿌옇게 가린 채 흔들리는 한국 검열관들의 모자이크 뿐이다. 뉴욕의 여피, 브랜든은 섹스 중독자다. 매춘부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건 예사고, 컴퓨터 하드에는 온갖 종류의 음란 동영상이 가득 차 있다. 회사돈으로 포르노를 결재했다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근무를 하다가 화장실에 가서 자위도 한다. 브랜든이 왜 그러는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브랜든의 '평온한' 삶은 동생 씨씨에 의해 깨진다. '동생'이라고 소개하긴 하지만, 사실 둘의 관계는 의심스럽다. 첫만남부터 벌거벗은 채다... 더보기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이상적인 젊은이가 거친 시대와 대결해 패하고 절망하고 타락하는 이야기는 숱하다. 난 영화 부터 떠오른다. 그러나 난 한국에서 만든 영화 보다 스페인에서 나온 만화 (길찾기)에 더 공감했다. 왜 그랬을까. 이 만화에 대해 덧붙일 말은 많지 많다. 작가가 자기 아버지의 일생을 사실적으로 옮긴 이 만화는 그 자체로 완결적이기 때문이다. 만화의 줄거리, 아니 주인공 안토니오의 삶을 간략하게 옮기는 것만으로도 이 만화에 대한 좋은 소개가 되리라 생각한다. 안토니오는 2001년 5월 4일 90세의 나이로 양로원에서 자살했다. 동료와 복지사의 눈을 피해 교묘하게 건물 꼭대기로 올랐다. 안토니오가 지상으로 추락하는 장면에서 만화는 안토니오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오른다. 그는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탐욕스럽.. 더보기
외로우면 아프다?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존 카치오포, 윌리엄 패트릭 지음·이원기 옮김/민음사/400쪽/2만2000원 영화 의 주인공 척(톰 행크스)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국제 택배회사의 직원이다. 해외출장중 비행기 사고를 당한 그는 무인도에 표류한다. 다행히도 비행기에 싣고 가던 화물들이 무인도의 해안으로 떠밀려왔다. 척은 이 화물들을 이용해 무인도에서의 생존법을 익혀나간다. 그런데 수많은 화물 중에서도 척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은 평범한 배구공 하나였다. 척은 제조사의 이름을 따 배구공에게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친구로 삼는다. 자신의 손에서 흐른 피로 배구공 표면에 눈, 코, 입을 그리고, 마른 풀잎 같은 것을 머리카락처럼 꽂아놓는다. 척은 윌슨이라는 ‘친구’ 덕에 절망적인 무인도 생활을 견딜 수 있었.. 더보기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전후라는 이데올로기>의 고영란 인터뷰 (현실문화)는 혼란스럽다. 여러 분야에서 분명했던 사고의 경계선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다. 누가 억압했고 누가 억압당했는지, 누가 전쟁하자 했고 누가 평화를 주장했는지, 누가 친일파이고 누가 반일파였는지, 알 수가 없다. 저자인 고영란 니혼대 국문학과 교수(45)의 의도가 바로 그것이었다. e메일로 만난 그는 “역사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을만큼 간단 명료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는 일본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이데올로기, 집단기억의 프레임을 검토한다. 아시아의 제국주의 국가로서 이웃 나라들을 침범했던 일본은 미국의 점령기 동안 ‘평화로운 일본’, ‘약한 일본’, ‘피지배자’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이를 위해 20세기 초반 일본의 진보적 사상가, 문학자들의 글을 소환한 뒤 ‘세계 평화’의 표상으로 .. 더보기
유머와 자학, 서민 교수 인터뷰 좋은 과학책을 읽으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가끔은 인생의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그런데 과학책을 읽으며 웃기는 정말 힘들다. (을유문화사)은 이 힘든 과제에 도전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렇다고 마냥 웃기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박멸된 것처럼 여겨져 좀처럼 대중의 화제에 오르지 않는 기생충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저자인 서민 단국대 교수(46)는 알만한 사람에겐 알려진 유명인사다. 신랄하고 기발하고 유머 넘치는 정치·사회 풍자 칼럼으로 강력한 팬덤을 누리고 있으며, 여세를 몰아 MBC TV 에도 고정 출연중이다. 서민은 “앉아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기생충, 기생충’ 하면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실로 오랜만에 탄생한 ‘스타 과학자’다. 자신의 신간 을 들.. 더보기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왜 그랬을까, <미완의 파시즘> 미완의 파시즘가타야마 모리히데 지음·김석근 옮김/가람기획/400쪽/2만5000원 일본의 화가 후지타 쓰구하루(1886~1968)가 그린 세로 193.5㎝, 가로 259.5㎝의 대작 ‘아쓰시마 옥쇄’는 1943년 ‘결전미술전’에 출품됐다. 그림은 누가 일본군인지 미군인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분할 수 없는 거대한 혼돈의 전장을 묘사한다. 작품이 그려진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진으로 돌진한 일본군의 용맹을 칭송하고 전쟁을 미화하는 듯 하다. 반면 전장의 모습이 끔찍하게 묘사된 것을 보면 전쟁을 반대하는 그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후지타 쓰구하루의 '아쓰시마 옥쇄' 그림의 배경은 1943년 5월 29일 밤에서 30일 새벽 사이, 알류산 열도 서쪽 끝의 애투 섬(일본에게는 아쓰시마)에서.. 더보기
하루키의 여자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일본 출장 기간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를 다 읽었다. 그리고 귀국하는 길 나리타 공항의 22번 게이트 앞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쓴다. (음...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쿨하고 고독한 도시 남자 같군. 그래도 여기선 인터넷에 연결할 수 없어 글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나중 일) 하루키(사실 성으로 사람을 표시하는 관습을 따르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무라카미'라고 해야 하지만, 그리고 기사라면 그렇게 쓰겠지만, 여기는 블로그이고, 한국에서는 왜그런지 하루키라고 표기하고 있어, 그냥 하루키로 씀)의 꾸준한 독자는 아니었다. 남들이 그렇듯이 (로 알려진 시절의) 을 읽었고, 몇 편의 단편집을 읽었고, 에세이는 읽다 말았고, 몇 년 전 를 읽었다. 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3권이 나왔을 때 구해보지는 않았다. 그저 .. 더보기
김우창, 가라타니 고진의 '동아시아 문명의 보편성' 대담 전문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75)와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71)은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의 거인이다. 30여년전 미국에서 처음 만나 오랜 친분을 맺어온 두 사상가가 ‘2013 도쿄국제도서전’이 열리는 도쿄 빅사이트에서 3일 다시 만났다. 가라타니는 이날 대담을 앞두고 김우창 교수에게 미리 서한을 보냈다. 한국은 통일신라, 일본은 헤이안 시대를 거치면서 각자 중국화를 진행했지만 그 양상은 달랐다. 한국이 ‘민심은 천명’이라는 맹자의 왕도사상을 받아들인 반면 일본에서는 민심을 챙긴다든가 공개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관습이 없었다. 이런 전통은 한국에서 시위가 자주 일어나지만, 일본에서는 시위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현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가라타니의 논의였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답으로 대담을 시작했다. 가.. 더보기
'진보적 예술'에 침을 뱉어라, <모래그릇> 마쓰모토 세이초의 을 읽어 나갈 때의 첫 느낌은 '의뭉스럽다'는 것이다. 직전에 정유정의 소설을 읽어서 더욱 대비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마쓰모토는 사건을 진행시키다가 뜬금없이 엉뚱한 사람의 이야기를 꺼내고, 또 사건과는 별 상관도 없는 듯한 등장인물들의 구체적인 일상을 슬며시 보여준다. 살펴보니 은 1960년 5월 17일~1961년 4월20일 요미우리 석간신문에 연재된 소설이라고 하는데, 신문 연재소설의 느릿한 호흡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난 신문 연재소설보다는 일일 드라마를 떠올렸다. 정유정의 소설이 2시간 안에 승부를 보는 장편 극영화라면, 마쓰모토의 은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중심 인물, 주변 인물 모두를 조금씩 풀어나가는, 그러다가 극의 완결성과는 상관 없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들.. 더보기
재활용품으로 본 도시 생활,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제프 페럴 지음·김영배 옮김/시대의창/360쪽/1만8000원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날짜에 분리수거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며칠간 머문 휴양지에서 돌아오는 날 직접 청소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버리는지. 한국보다 생활 수준이 높고 소비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더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쓰레기가 정말 쓰레기일까. 보는 사람에 따라 쓰레기는 보배가 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싼값에 충동적으로 구매한 여름용 원피스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치자. 두어 번 입어보길 시도하다가 끝내 포기하고 버린다. 이제 그 옷은 그에게 분명 쓰레기다. 그러나 이 옷이 어울리는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는 이번 여름 휴가지에서 멋진 원피스를 입고 시선을.. 더보기
작가가 지시한 대로 움직이기, <28> *약 스포일러 한국 소설을 나오자마자 읽은 것은 오랜만이다. (아니 처음일지도 모른다). 정유정의 신작 을 읽었다. 그의 전작 을 읽은 적이 있다.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 소설에 대해 할 말이 있는가. 모르겠다. 전문적인 평자라면 무엇이든 말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겐 그럴만한 꺼리가 없었다. 은 그보다는 할 말이 있다. 정유정은 책 출간을 전후한 인터뷰를 통해 구제역 파동에서 작품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언급했다. 살아있는 소, 돼지 등이 중장비에 매달린 채 거대한 구덩이 속으로 던져지는 그 풍경 말이다. 실제로 은 '빨간 눈'이라 불리는 인수공통전염병이 창궐한 서울 인근의 가상 소도시 화양을 배경으로 한다. 개와 사람이 동시에 걸리는 이 병은 환자를 2~3일 내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 살아있는 사람을 .. 더보기
엘지팬 여러분께 재차 사과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백승찬입니다. 지난 저녁 제가 한 경솔한 말로 많은 엘지팬분들이 상처 입으신데 대해 사과를 드렸습니다. 그래도 미진하다고 여기신 분이 많으신 듯 합니다. 아마 사과문에 조롱이 섞였다고 생각하신 듯 한데요, 전혀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진심입니다.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말 한 마디를 해도 더욱 신중히 하겠습니다. 더보기
엘지팬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잘못된 농담으로 엘지팬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음을 이렇게 사과문을 쓰면서 다시 한번 반성하고 있습니다. 너무 놀라 트위터는 계폭했지만, 혹시 여기를 찾아 주시는 분들께라도 사과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요즘 엘지 경기를 보면 문선재, 김용의, 봉중근 선수가 참 잘 하더군요. 일요일 넥센 경기를 보았는데, 위기를 극복하고 1점차 승리를 지켜내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엘지가 지금처럼 멋진 경기 해서 팬 여러분도 유광점퍼 입고 가을에 응원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더보기
비경제적, 비인간적인 월스트리트, <호모 인베스투스> 학술적인 책이다. 인류학의 방법론을 설명하는 대목은 읽기가 좀 어렵지만, 현장의 상황이 잘 반영돼 있어 전체적으로 흥미롭다. 다만 오탈자가 너무 많다. 호모 인베스투스캐런 호 지음·유강은 옮김/이매진/520쪽/2만3000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브라질 내륙 소수 원주민의 삶을 관찰한 뒤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했다. 브로니스라프 말리노프스키는 파푸아 뉴기니의 트리브리안드 군도 원주민들의 농경과 주술을 연구한 뒤 인간의 경제적 본성에 대한 통찰을 전했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 말리노프스키같은 유명 인류학자들이 ‘원시 부족’을 연구한 것은 80~100년 전 일이다. 우리 시대의 인류학자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연구하는가. 젊은 인류학자 캐런 호는 세계 금융의 중심을 자처하는 월스트리트로 향했다... 더보기
웨이팅 포 언아더 슈퍼맨, <슈퍼맨 리턴즈> 먼지 쌓인 DVD 선반을 보다가 에 눈이 머물렀다. 그동안 뜯지도 않은 비닐을 벗겨내고 플레이어에 넣었다. 아마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 영화인 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내 안의 무언가를 자극했겠지. 2006년 개봉 당시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시원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찾아보니 2억 달러 제작비를 들여 전세계적으로 3억9천만 달러를 벌여들였으니 장사는 생각보다 잘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슈퍼맨 신작을 기다려온 대중을 충분히 만족시킨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가 잘나가던 엑스맨 시리즈를 버리고 슈퍼맨 프로젝트로 합류한 브라이언 싱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아마 엑스맨의 팬들은 "어디 잘되나 보자"는 심정이었을테지) 아니나 다를까,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차기작 소식은 사라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