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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또봇 vs 파워레인저 혹은 매뉴얼의 중요성에 대해

아이는 뽀로로, 타요, 폴리를 거쳐 또봇의 세계에 입문했다. 또봇은 남자 아이들의 로망인 변신 자동차 로봇이다. 지난해 연말에는 부동의 1위였던 레고를 제치고 대형할인점 완구 판매 1위에 올랐다는 소식도 있었다. 또봇은 꽤 인기가 있어 어느덧 14시즌까지 방영됐으며, 얼마전에는 여름방학 특별판이 나오기도 했다. 


아이는 요즘 파워레인저를 본다. 또봇은 "시시하다"고 했다. IPTV에 무료로 나와있는 시리즈를 차례대로 보는데, 캡틴포스를 독파했고, 요즘은 미라클포스를 보고 있다. 케이블 어린이 채널에서는 다이노포스 시리즈를 방영중이다. 


그러나 오늘 하고픈 말은 컨텐츠가 아니라 그 부가 상품에 관한 것이다. 아이는 또봇 장난감을 꽤 가지고 있다. 또봇X, 또봇Y, 또봇Z, 또봇W, 또봇D, 또봇R, 쿼트란, 또봇 제로 등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꽤 많다. 칼이니 벨트니 종이접기니 하는 상품은 빼고서도 말이다. 이 로봇들은 대략 4만원~6만원이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또봇을 로봇에서 자동차로, 자동차에서 로봇으로 변신시켜주다 보면 어른이 먼저 화가 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또봇의 매뉴얼은 많아봐야 앞 뒤로 인쇄된 종이 한 장이다. 길게 펼친다 해도 4페이지 이상은 아니다. 제조사측에서는 이해가 쉽게 설명했다고 여기겠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아무리 매뉴얼을 따라 해도 변신이 잘 안되거나 동작이 뻣뻣할 때가 있다. 어른이 이 정도일인진데 이 완구를 직접 가지고놀 어린이들이라면 조작이 더 어렵다고 봐야한다. 그래서 억지로 변신을 시키려다가 완구가 파손되는 경우도 있다. 포장 상자 한쪽에 있는 QR마크를 찍으면 변신동영상이 나오긴 하지만, 그건 매뉴얼로 변신 방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데 대한 변명이라고 봐야 한다. 




또봇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D(위)와 W.


물론 내가 손재주가 없거나 매뉴얼을 읽는 능력이 둔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엊그제 아이가 뜯은 파워레인저 티라노킹을 만지면서 또봇 매뉴얼에 대한 내 불만에는 근거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티라노킹은 또봇보다 조작이 쉬운데 매뉴얼의 분량은 훨씬 많은 16쪽에 달한다. 아마 일본에서 제작된 매뉴얼의 번역본일 것 같은데, 꼼꼼하게 읽고 따라하다보면 변신 혹은 합체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당연히 동영상을 참조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알기 쉽고 상세한 매뉴얼을 작성하는 능력은 제품의 완성도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아이폰만 봐도 그렇다. 어린이도 포장을 뜯어 작동을 시키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아이폰에 관한한 모든 것이 직관적이어서 사용이 쉽다. 


사실 콘텐츠 자체는 또봇이 더 마음에 든다. 어른들이 보면 오히려 좋아할만한 이상하고 시니컬한 유머도 있고, 심지어 재벌의 지역상권 침해에 대한 풍자도 목격한 적이 있다. 로봇 마니아들 사이에는 디자인이 별로라는 말도 있는 듯하지만, 난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쓸데없이 진지하고 쓸데없이 "나랑 싸우자"를 연발하는 파워레인저에 호감이 덜 간다. 


오늘도 전국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엄마 아빠를 졸라 또봇을 얻어냈다. 그 아이들이 장난감 제조 기술에 실망해 조국에 환멸을 느낀다거나, 매뉴얼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독해력을 저주해 학업을 등한시 한다거나, 심지어 무리하게 변신을 시키다 부서진 장난감을 보고 마음의 상처를 입어서야 되겠는가. 콘텐츠, 제품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을 잘 알려주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좋은 리뷰어, 좋은 마케터, 좋은 기자가 필요한 이유다. 



파워레인저 티라노킹. 로봇 공룡 3마리가 합체한 모습이다. 모두 합체된 순간 삼바 음악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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