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출판사의 번역본으로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수십 페이지는 읽은 것 같은데 그때까지 줄거리는커녕 등장인물조차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 읽은 <작가란 무엇인가>에 포크너의 인터뷰가 게재돼 있기에 다시 흥미가 생겼고 마침 문학동네 판본을 구해둔 적이 있어 다시 도전해 보았다.
첫 페이지 안쪽에 써있는 역자의 다섯 줄짜리 설명을 읽자마자 내가 예전에 이 책을 읽다가 실패한 이유를 알아냈다. 첫번째 챕터의 화자는 33세이지만 3살 지능을 가진 지적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이 챕터는 벤지라는 이름의 남자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상상하는 것들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게다가 벤지의 머리 속에서는 크게 분류해 4 가지, 세밀히 분류하면 14가지 시간대가 별도의 구분 없이 혼재돼 흘러가며 그대로 서술된다(고 한다.). 해외에는 시간대에 따라 글자색을 달리한 판본도 나와있다고 하고.
윌리엄 포크너(1897~1962)
<소리와 분노>는 20세기 초반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부유한 콤슨가가 20여년에 걸쳐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 소설에는 네 개의 챕터가 있는데 첫번째 챕터는 아까 말한 정신지체인 벤지, 두번째 챕터는 콤슨가의 장남이자 자살한 퀜틴, 세번째 챕터는 콤슨가의 삼남이자 아버지, 형의 사망 이후 집안을 이끌어가는 제이슨의 1인칭이다. 마지막 챕터는 콤슨가의 흑인 하녀이자 실질적인 살림꾼 딜지가 주인공인데, 유일하게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쓰여졌다.
벤지 섹션, 퀜틴 섹션까지는 읽기가 무척 괴롭다. 퀜틴 섹션 중간쯤에서 책을 덮으려는 마음을 다섯 번쯤 먹었다. 아버지는 땅을 팔아 퀜틴을 하버드대에 보냈는데, 그는 여러 가지 정신적 불안을 겪고 있으며 그러다가 강에 투신해 자살한다. 퀜틴 섹션은 그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벤지가 논리 체계를 갖추지 못한 원초적 감각, 반응의 상태를 보여준다면, 퀜틴은 그 논리가 붕괴된 이후의 상태를 보여준다. 제 머리 속도 정리하지 못한 독자가 남의 머리 속의 무질서한 풍경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여간한 고역이 아니다.
손익을 철저히 따지는 제이슨 섹션에 들어서야 전통적 소설 독자는 한시름을 놓고 글을 읽어나간다. 아버지가 술독에, 형이 강에 빠져 죽고, 어머니는 신경쇠약에 빠져있고, 누나는 절연했고, 동생은 지적장애이며, 누나가 낳은 뒤 맡기고 간 딸, 그러니까 조카는 말이라곤 지지리도 안듣는다. 제이슨의 말들이 독설, 자조로 뒤범벅된 것도 당연하다.
모더니즘의 현란한 기법을 제쳐놓고 줄거리만 따지면, <소리와 분노>는 허무, 방종으로 점철된 어느 부유한 가족의 몰락기다. 이런 이야기를 주말 드라마에서 하면 '막장'이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다 거기서 거기다. 그렇다고 "형식이 전부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형식은 내용에 긴밀히 얽혀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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