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 없을 정도로 잦은 이성간의 섹스, 충동적인 동성애, 그만큼 잦은 자위, 영화 속 성인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의 연쇄에도 불구하고, <셰임>은 매우 엄격한 도덕주의를 설파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음란한 것은 주인공의 성기를 뿌옇게 가린 채 흔들리는 한국 검열관들의 모자이크 뿐이다.
뉴욕의 여피, 브랜든은 섹스 중독자다. 매춘부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건 예사고, 컴퓨터 하드에는 온갖 종류의 음란 동영상이 가득 차 있다. 회사돈으로 포르노를 결재했다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근무를 하다가 화장실에 가서 자위도 한다. 브랜든이 왜 그러는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브랜든의 '평온한' 삶은 동생 씨씨에 의해 깨진다. '동생'이라고 소개하긴 하지만, 사실 둘의 관계는 의심스럽다. 첫만남부터 벌거벗은 채다. 씨씨는 브랜든이 없는 사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와 샤워를 하고 있고, 브랜든은 집에 도둑이라도 든지 알고 야구 방망이를 든 채 샤워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브랜든은 씨씨의 존재에 놀랐을 뿐, 그녀의 나체에는 놀라지 않는다. 둘의 야릇한 관계는 이후에도 몇차례 암시된다.
씨씨가 얹혀살기 시작한 뒤로, 브랜든은 어딘가 불안해 한다. 씨씨를 필요없이 박대하고, 치밀어오르는 성욕에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인다. 단지 동생이 함께 있어 매춘부를 쉽게 부를 수 없기에 그런 건 아닌 듯하다. 동생에게 자신의 성욕을 들키기 싫어하는 오빠의 모습으로 보인다.
더 흥미로운 건, 브랜든이 매춘부나 포르노가 아닌, 비교적 정상적인 데이트를 통해서는 성욕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브랜든은 직장의 동료 여성과 분위기 좋은 데이트를 하고, 얼마 후 모텔에서 밀회를 하는데, 하루에 몇 번이고 사정하던 그가 이번에는 실패한다. 그녀가 떠난 뒤 브랜든은 기어코 매춘부를 불러 일을 치르고 만다. 일탈된 섹스에 중독돼 '정상적'인 섹스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인가, 섹스중독자인 자신이 중독자가 아닌 여성을 함부로 범할 수 없다는 죄책감 때문인가. 영화는 차츰 브랜든이 자신의 성욕을 한없이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영화의 제목도 '셰임' 아니던가.
그에 반해 씨씨는 자유롭다. 물론 그녀도 가끔씩 치밀어오르는 자살 충동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인정한다. 자살을 하든 안하든, 섹스를 하든 안하든, 행복한 것은 씨씨고 불안한 것은 브랜든이다. 부끄러우면 하지 말 것이지, 브랜든은 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온갖 충동, 욕망에 휘둘리는 우리 평범한 사람으로서, 브랜든을 쉽게 비난하긴 어렵다. 그래도 그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이렇게 블로그에 말해볼 수는 있다.
<셰임>은 깊이보다는 감각의 영화다. 주제는 선명하고 단순하다. 재차 생각할 것도 없다. 감독은 떄로 자신의 감각에 관객보다 먼저 도취된 듯 보인다. 마이클 파스벤더와 캐리 멀리건은 요즘 주목받는 좋은 배우긴 하지만, 그래도 관객이 도취되기 전에 감독이 먼저 이들의 표정, 연기, 얼굴에 홀린 듯 보이는 건 문제가 있다. 조금 겉멋이 낀 영화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셰임>은 이렇게 블로그에 간략하게 글을 남길만큼의 생각은 들게 한다.
씨씨 역의 캐리 멀리건과 브랜든 역의 마이클 파스벤더(멋지다 파스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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