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탄생
최정운 지음/미지북스/580쪽/2만원
한국인은 무엇이고 무엇이 되려고 하는가. 어디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질문이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최고 수준의 학술 저작으로 평가되는 <오월의 사회과학>의 저자 최정운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 근·현대 소설을 텍스트로 삼는 우회적 접근법을 택했다.
그는 한국 근현대 사상사 연구의 난점으로 텍스트의 부재를 꼽는다. 당시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사회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어낸 저술이 없다는 것이다. 500년 왕조가 붕괴되고 경천동지할 새 시대가 열리는 한복판에 서있던 지식인들이 이를 차분하게 조망하는 글을 남기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소설이 남아있다. 고종이 즉위한 해는 1863년이었는데, 그 뒤 43년이 지난 1906년에서야 ‘신소설’이라 불리는 <혈의 누>가 나왔다. 이후 이광수, 김동인, 이상, 홍명희의 소설들은 당대의 한국인들이 무엇이었으며 또 무엇이 되려했는지를 보여주는 주요한 텍스트가 된다. 게오르그 루카치같은 서구의 문예비평가가 일찌감치 말했듯, 근대 소설문학은 인간이 소외되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탄생한 장르이며 또 소설 속 인물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세상과 갈등을 빚는다. 한국 근대 소설 속 인물들의 꿈을 살펴봐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근대 소설 속 인물의 특징은 홍길동 같은 등 전근대 소설 속 인물을 떠올릴 때 더욱 두드러진다. 홍길동은 분명 빼어난 영웅이었지만, 그의 활약상은 시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홍길동전>의 배경은 세종 재위시, 즉 조선 전기의 태평성대였다. 홍길동 하면 그 유명한 대사,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이 떠오르므로 이를 서얼차대를 없애자는 당대 사람들의 희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곘다. 그러나 최정운 교수는 홍길동의 율도국이 그다지 개혁적인 제도를 갖춘 흔적이 없을 뿐더러 홍길동이 부당한 재물을 빼앗아 백성에게 나눠준 적도 한 번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홍길동이 시대와 불화한 인물이 아니었다고 분석한다.
이인직이 쓴 <혈의 누>의 주인공 김옥련은 다르다. 평양의 부유한 중인 가정에서 태어난 김옥련은 청일전쟁의 와중에 부모와 헤어져 일본군 장교에 위해 목숨을 구한 뒤 일본,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이인직이 그린 대한제국 말기는 극단의 야만 상태, 즉 토마스 홉스가 말한 ‘자연상태’다. 사회, 공동체는 붕괴되고 개인은 모두 흩어졌다. 경제적으로 몰락했고 윤리적으로 타락했다. 내외국인 누구의 눈으로 봐도 당시 대한제국은 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나라였다. 1908년작 <금수회의록>은 이 시기를 “인물이 결딴나서 도덕도 없어지고, 의리도 없어지고, 염치도 없어지고, 절개도 없어져서, 사람마다 더럽고 흐린 풍랑에 빠지고 헤어나올 줄 몰라서 온 세상이 다 악한 고로…”라고 묘사한다. 한 마디로, 한반도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의 유일한 소설적 돌파구는 전통적 사상 체계인 유학과의 친연성이 적은 중인 집안의 소녀를 해외로 유학보내는 것이었다.
일진회는 이 “지옥 같은 나라”에서 탄생한 기이한 반역집단이었다. 관군에 의해 궤멸당한 동학 잔당을 중심으로 100만명이 가입했다고 알려진 일진회는 나라꼴을 갖추지 못한 대한제국을 멸망시키고 강한 국가권력을 갖춘 일본을 불러들여 사회계약을 맺자고 주장한 단체였다. 오랜 기간 학계에서는 일진회를 일본의 끄나풀 정도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바라봤다. 하지만 일본 극우단체 흑룡회 간부들이 “나라를 갖다 바치겠다”는 일진회 회원들의 말을 믿을 수 없어 몇 차례나 확인을 거쳤을 정도로, 당시 대한제국엔 망조가 짙었다.
그러나 일진회의 방식은 너무 나갔다. 이들 친일파에 자극받은 민족주의자들이 등장했다. <무정>(1917)의 주인공 이형식에는 ‘개화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초상이 담겨있다. 일본 유학을 거친 영어 선생 이형식은 서구에서 수입한 ‘사랑’과 근대소설 주인공이 가졌던 ‘내면’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러나 폐혀가 된 조선의 지식인 이형식은 가진 것이 전혀 없었다. 이형식은 한민족을 사랑하는 민족주의자가 되기 위해 기존 지배계급인 김 장로의 사위가 돼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지위도 사실은 불안정했다. 이형식은 ‘학자’가 아니라 ‘선생’이었다. 자신만의 사유를 발전시키는 대신, 서구의 지식을 일본을 통해 먼저 습득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었다..
<꿈하늘>(1916)은 ‘저항민족주의자’인 신채호가 망명 중 북경에서 쓴 작품이다. 주인공 한놈은 ‘우주의 본면목’이라는 처참한 싸움판에 밑도 끝도 없이 내쳐진다. 그는 “싸움에 이기면 살고 지면 죽나니 신의 명령이 이러하다”는 말을 듣고 끝없이 싸워나간다. 한놈에겐 이형식이 가졌던 ‘내면’조차 없었다. 그가 가진건 사심 없는 투쟁 본능 뿐이었다. “그들(이형식과 한놈)은 욕망하는 존재였지만 그 욕망하는 것, 아직 없는 그것이 무엇일지는 알지 못했다.”
민족 담론의 내용이 갖춰진 것은 1919년 3·1운동 이후였다. 이광수는 ‘민족주의자’였지 ‘민족’의 실체를 창조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3·1운동은 ‘민족’이라는 실체를 눈앞에 드러냈다. 스스로 천재임을 자부했던 김동인이 1919년 발표한 데뷔 단편 ‘약한 자의 슬픔’은 이후 우리 민족주의의 기본 문제의식이 된 ‘강한 자/약한 자’의 문제를 제기했다. 19세 여학생 강 엘리자베트는 걸음걸이에서도 유행을 따를 정도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인물이다. 훗날 어떤 사건으로 인해 송사를 겪은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표본 생활 이십 년!”이라고 한탄하며, 자신의 설움이 “약한 자의 슬픔!”이라고 말한다. 강 엘리자베트의 ‘약함’은 재산, 권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해야 할 일, 하기로 마음먹었던 일을 못해낸 데서 기인했다. 김동인이 훗날 ‘광화사’, ‘광염소나타’ 같은 ‘예술가 소설’에 기운 것도 ‘강한 인간’에 대한 희구 때문이었다. 김동인에게는 세상의 이목 따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가야말로 ‘강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동인의 ‘강한 인간’은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는 ‘블랙홀’ 같은 존재였다. 이제 내면을 가진, 아울러 강한 지식인을 창조해내는 일이 남았다. 1930년대 소설가 박태원과 이상이 이에 도전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은 일본 유학파 소설가인 26세 구보씨의 하루를 다룬다.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집을 나선 구보씨는 종로, 장충단, 청량리 등을 하루 종일 헤맨다. 구보씨는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형식같은 ‘선생’이 아니고 그저 무직자다. “세상을 다스리고 규정해야 할 계급”인 지식인이지만, 자신들의 존재가 그럴 처지가 안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상은 그로부터 2년 뒤에 <날개>를 발표함으로써 전대미문의 지식인 탄생 실험을 계획한다. 대도시 안의 무인도와 같은 창녀촌에서 아내의 벌이에 의지해 살아가는 ‘나’는 어린아이나 백치처럼 이전의 사유와 기능을 지운 채 새로운 탄생을 꿈꾼다. 이것은 “가상 생체 실험을 통해서 지식인의 야망을 회복시키는 실험”이었으며, “지식인의 작위적 죽음을 통한 부활 이야기”였다.
이광수는 <무정> 이후 16년만인 1933년 <유정>을 발표한다. 기존의 문학평론가들은 <유정>에 <무정>보다 박한 평가를 내리지만, 최정운 교수는 반대한다. 독립운동가 출신의 교장 최석은 죽은 동료가 맡긴 딸 남정임과의 스캔들에 휘말린다. 둘은 소문대로의 일을 벌이지 않았지만, 서로 연모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부정하진 못한다. 최석은 자신의 욕망을 이성으로 이기기 위해 조선땅은 물론 정임의 곁으로부터도 멀리 떠나는 길을 택한다. 그는 하얼빈, 바이칼호 등지를 헤매며 욕망과 투쟁한다. 최석은 이광수가 만든 ‘강한 인간’의 모델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괴물로서의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인간이며 대화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끈질기고, 독살스러우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지가 강한, 자신을 결코 포기하지 않능 그런 종류의 강한 인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석의 방황은 일종의 순례 여행이다. 이광수가 창조한 ‘강한 조선인’은 심훈의 <상록수>(1935) 속 계몽주의자 커플로 이어진다. 최정운 교수는 “한일병합을 당할 시점의 우리 민족의 모습과 해방을 맞이했을 때 우리 민족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고 분석한다. 이광수, 심훈의 인물들이 보여주듯, 해방 무렵의 조선인은 누구와도 싸울 준비가 돼 있을 정도로 강한 인간들이었다. 물론 그 싸움이 ‘우리끼리의 싸움’으로 귀결됐다는 점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다.
1928~1940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홍명희의 <임꺽정>은 근대소설 주인공이 가졌던 ‘내면’을 보여주면서도, 이를 ‘고독한 주인공의 고백체’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격의 없는 대화, 농담, 욕지거리로 전한 획기적 작품이었다. 임꺽정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 사회에 반항한 ‘전통의 파괴자’였는데, 이는 그의 ‘반지성주의’에 의해 강화됐다. 글공부란 임꺽정이 싸워이겨야할 조선 지배계층의 핵심 문화였기 때문이다.
김동인, 이광수, 홍명희(위로부터)
최 교수는 우리 역사에서 <임꺽정>과 같이 반지성주의가 노골적으로 나타난 적은 없다고 지적한다. 무장 투쟁을 했던 조선 말기의 저항민족주의자들조차 백성에게 학문을 권하고 학교를 세웠다.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일본에 유학까지 다녀온 홍명희는 정작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회의했다. 이런 점에서 반지성주의란 “민중의 목소리가 아니라 민중을 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문제는 ‘임꺽정 신화’가 “나르시시즘에 전염되어 임꺽정을 자신과 혼동하는 정치 ‘스타’들을 대량으로 양산”했으며, “지식과 지성을 경멸하며 타고난 능력과 직접 경험에만 의존하는 기형적인 독불장군 유형의 정치 영웅”으로 이어졌다는데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저자는 구한말과 일제 시대의 지식인들이 거친 시대 속에서 무력하거나 냉소하기는커녕, 처음엔 지옥, 그 다음엔 폐허 같은 땅에 살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찾기 위해 쉬지 않고 애썼다고 본다. 다만 ‘강한 인간’에 대한 지나친 열망과 반지성주의는 이제 극복해야할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사회과학자가 한국의 근·현대 문학작품들을 국문학자, 문학평론가들이 보지 않는 방식으로 읽어냈다. 논지가 흥미롭고, 다루고 있는 텍스트에 대해 궁금해지며, 한국인의 정체성에 호기심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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