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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인가, 두 개의 건축전시회를 보고


공교롭게도 집과 연관된 두 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아르코 미술관은 규모가 큰데다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서울시립미술관은 참여 작가들의 이름값이 있다. 



현대 건축의 화려한 구상과 기술은 관공서, 기업, 도서관, 미술관 등 거대한 건물에서 빛나지만, 삶의 기본은 역시 집이다. 두 발 뻗고 편히 쉴 공간은 사람의 기본권이다. 


집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내년 2월 15일까지 열리는 ‘즐거운 나의 집’전은 집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정리해볼 수 있는 자리다. 전시의 큰 틀은 고 정기용 건축가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따왔다. “집은 유년시절을 보낸 기억의 집, 현재 사는 집, 살아 보고 싶은 꿈 속의 집이 있다. 이 세 가지 겹친 집에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주최측은 이 세 종류의 집을 세 공간에 재현했다. 제 1전시실은 집에 얽힌 과거의 추억을 더듬는다. 전시실이 마치 집의 각 공간처럼 구성됐다. 입구에는 평범한 주택처럼 현관문이 달려 있고, ‘다녀왔습니다’라고 적힌 발 매트가 깔려있다. 거실에는 평범한 중산층 가족의 거실에서 본 듯한 트로피, 가족사진 액자, 유리 공예품 등이 놓여있다. 부엌에는 갖가지 모양의 식탁이 있다. 식탁은 벽에 맞대 있거나, 마주 앉은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도록 길거나, 무릎이 닿을 만큼 짧다. 식사 자리에서 연출되는 각종 가족 관계를 식탁 모양으로 표현했다. 반투명 커튼으로 가린 변기가 몇 개 놓여있는데 옆에는 책이 있어 관람객들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관람객들은 원형의 공기 침대에 누울 수도 있다. 벽에는 열대 휴양지의 영상이 모니터를 통해 나온다. 전시를 기획한 디자인 회사 글린트의 김범상 대표는 “‘만지지 마시오’라고 써있는 전시회에 반감이 있었다”며 “관람객이 직접 앉고 누워보면서 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정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 2전시실은 현재 한국인이 살고 있는 집을 보여준다. 옵티컬레이스의 설치작품 <확률가족>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관람객들은 각자 월급(80만원~800만원대)이 적힌 발 매트 앞에 서서 닫힌 문을 열어야 한다. 문 뒤의 정면 벽에는 자신의 월급으로 대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오른쪽 벽에는 부모의 재산이 동산, 부동산으로 나뉘어 적혀 있다. 정면 벽과 오른쪽 벽을 각각 X축, Y축으로 삼아 자리를 찾으면 30년후 각자에게 남는 돈이 나온다. 누구나 양수가 적힌 원색의 매트에 서고 싶겠지만, 현실은 음수의 백색 매트에 서는 사람이 대부분일 듯하다. 제 3전시실은 대안적 주거형태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러나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핀란드, 일본,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주택 정책을 간단히 소개하는데 그친다.    





옵티컬레이스의 <확률가족>.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하얀 적자 칸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아르코미술관 제공



대안 주거 공간에 대한 그림은 1월 2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는 ‘협력적 주거 공동체’전에서 볼 수 있다. 저출산 고령화 추세가 이어지고 1인 가구가 느는 등 사회 구조가 변하고 있지만, 주거 공간만큼은 4인 핵가족 시대의 모습 그대로다. 유걸, 황두진, 조재원씨 등 9명(팀)의 건축가들은 이같은 획일적 주거 공간을 바꿀만한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대안 주거 공간의 핵심은 ‘공유’다. 공간의 공유는 남는 자원을 나눠 장기 불황을 견디는 방책이자, 공동체를 복원하는 방식이다. 조남호 건축가는 목재 프레임을 활용해 거주자 스스로 주거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수직마을’을 제안했다. 100세대로 구성된 이 마을은 2/3의 개인 영역과 1/3의 공유 영역으로 이루어진다. 개발운영비, 금융비용, 개발이익을 제외해 주변 시세의 60%로 집을 만들 수 있는 방안이 제출했다. 김경란·이진오·김수영 건축가의 ‘아파트멘트’는 ‘주거공간=사적공간’이라는 등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LH공사 84㎡(25평) 표준평면을 최소한으로 변형해 공동체의 삶을 다채롭게 꾸미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들의 계획에서는 운동실, 목욕실, 시가바, 게스트룸, 공유주방, 명상실 등이 때론 사적 영역으로, 때론 공유 공간으로 이용된다. 황두진 건축가는 아파트 내 영농법을 한 독신남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공간이 남지만 임대하기도 여의치 않자, 이 남자는 아예 공간 일부를 외부화해 도시농업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자기가 살 영역만 남기고 나머지는 경작지, 사랑방, 세미나실 등으로 꾸민다. 


박가희 큐레이터는 “우리는 그동안 재테크의 수단이 된 주거 문제는 쉽게 비판했으나, 공간 자체를 의심하거나 구체적인 대안은 그려 보지 않았다”며 “이들의 제안은 낭만적인 동시에 오늘날 개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현실적인 생태계를 구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