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2008)는 <노예 12년>(2013)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감독으로 기록된 영국 출신 스티브 맥퀸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마거릿 대처가 기세등등하게 집권했던 1981년 북아일랜드 메이즈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은 북아일랜드에서 영국군이 철수할 것을 주장하며 무장 투쟁을 벌였다. IRA를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규정한 영국정부는 이들에 대한 전면적인 체포 작전을 시도했다.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된 IRA 조직원들은 영국정부에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대처 정부는 “테러리스트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라며 거절했다.
한때 전세계를 호령한 제국이었던 영국은 무기의 질, 군인의 양이 압도적이었다. 대처는 협상을 모르는 단호한 정치인이었다. 세상에서 고립돼있던 IRA 죄수들은 ‘안씻기’ 투쟁을 벌였다. 벽에 똥칠하기, 복도에 오줌 흘리기, 먹다 남은 음식 벽에 붙이기 등이었다. 교도관들이 죄수들을 끌어내 구타한 뒤 강제로 소독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하자, IRA 죄수들은 마지막 남은 저항 수단을 택한다. 바로 단식이다.
죄수들을 강제로 소독중인 간수들
단식 투쟁을 주도한 보비 샌즈가 조금씩 죽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20분은 지켜보기가 괴롭다. 샌즈는 면회온 신부에게 단식 투쟁의 결심을 알린다. “할 일이 없어서 내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게 아니에요. 옳은 일이기 때문이에요.”
병상 옆에는 소시지, 오믈렛, 베이컨 등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차려지지만, 샌즈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본다. 샌즈의 뼈와 가죽이 들러붙고, 피부에는 상처들이 생기고, 변기에 앉으면 혈변이 나온다. 의사는 말한다. “간, 콩팥, 췌장의 기능이 약화됐습니다. 골밀도도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심근도 기능장애를 일으킬 겁니다. 저혈당이 올테고, 에너지 부족으로 근위축이 오겠죠.” 샌즈는 66일간의 단식 끝에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샌즈가 주도한 7개월간의 단식 투쟁 기간 동안 9명이 더 죽었다.
보비 샌즈 역의 마이클 파스밴더(사진 위). 단식에 들어가기 직전의 보비 샌즈와 신부가 대화하는 15분 가량의 롱테이크 장면.
2014년 여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는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가 45일간의 단식 투쟁을 벌였다. 노모와 남은 딸의 설득에 김영오씨는 다행히도 샌즈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피했다. 단식 기간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의 손을 잡았고 야당 정치인과 시민들이 단식에 동참했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김영오씨를 폄훼하는 여론전이 벌어졌다. 이혼한 처가쪽 사람들 말을 비려 ‘아빠 자격 없는 사람’으로 몰아붙였고, 자식 잃은 충격에 내뱉은 거친 말을 ‘폭언 파문’이라고 수식했다. 평범한 중년 남자의 처가 사람들, 취미, 언행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은 언론이 할 일인가, 흥신소가 할 일인가.
김영오씨 단식의 결과는 무엇일까. 여당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기소권을 주자는 세월호 유족들의 의견을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경찰은 “언제든 찾아오라”는 대통령 말을 믿고 나선 유족들을 청와대 멀찌감치서 가로막고 고립시켰다. 겉보기에 이 단식 투쟁은 얻은 것이 없다.
보비 샌즈의 투쟁도 마찬가지였다. 대처 정부는 IRA 죄수들의 정치범 지위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대처의 행동이 “영국병을 치료했다”며 칭송한다. 하지만 영국 분위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사람이 죽으면 정치적 반대자조차 애도를 표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처가 죽었을 때는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마녀가 죽었다” “지옥불에서 타라”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해서 가장 싼 업체에 맡기자”는 말들이 나왔다. 거리에서는 축하연이 열리기도 했다.
단식 투쟁은 가진 건 몸뚱아리밖에 없는 약자들이 벌이는 최후의 행동이다. 이 목소리를 무시하는 정치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생전의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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