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강화복은 10년 내로 실용화되지 않을까 싶다.
**스포일러 포함
VOD로 뒤늦게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봤다. 52세의 톰 크루즈는 여전히 준수한 액션을 선보인댜. 크루즈는 심지어 극중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돼 최전방에 차출돼 생고생을 한다. (그리고 여러번 죽는다). 쓸만한 윙어가 나타나지 않아 라이언 긱스가 은퇴를 번복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로 돌아와서 50살까지 뛰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까.
정체모를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해 지구연합군을 궤멸시키고 있는 상황. 뺀질한 공보장교 케이지(톰 크루즈)는 전방에서 홍보영화를 찍으라는 장군의 말을 거역하려다가 이등병으로 강등돼 상륙작전에 투입된다. 종이에 베는 것도 참지 못하는 이 남자는 전장에서 무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해 허둥대다가 죽는다. 그런데 죽은 뒤 다시 이등병으로 부대에 배속되는 순간에 깨어난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전장에서 죽고, 다시 깨어나고, 죽고, 깨어나고...
전쟁판 <사랑의 블랙홀> 되겠다. <사랑의 블랙홀>의 빌 머레이가 똑같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호감있는 여자에게 다가서는 방법을 배웠듯, 케이지는 외계인과 싸우는 방법을 익혀나간다. 케이지가 시간을 '리셋'하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은 첫날 죽이면서 뒤집어쓴 외계인의 체액(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외계인들 중 일부는 시간을 리셋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앞날의 일을 알고 미리 그에 대비해 싸워 절대 지구인에게 지지 않는다. 케이지는 이를 반대로 이용해야 한다.
케이지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전장의 암캐'라 불리는 여군 리타(에밀리 블런트)다. 그녀도 수백 번 죽고 또 죽었기에 외계인의 행동 패턴을 알 수 있었고, 강한 군인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처를 입은 뒤 죽지 않고 치료를 받으면 리셋 능력이 사라진다. 현재 리타는 리셋 능력을 잃은 상태다. 케이지는 리타에게 접근해 함께 외계인과 싸우려 한다. 물론 매일 같은 방식의 설명을 반복해야 한다. 난 누구인데, 어떤 능력을 갖고 있으며, 넌 나를 처음 봤겠지만 난 너를 수백 번 봤으며, 우리는 이러저러한 일을 하려 하다가 이런저런 단계에서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이러저러하게 시도해봐야 한다... 이 능력을 가졌거나 현재 가진 사람은 리타와 케이지밖에 없기에, 둘은 정신병원에 갇히지 않으려면 비밀을 지켜야 한다.
이러저러한 수를 써서 외계인 숙주를 죽여 지구를 구했다는 건 톰 크루즈 영화니 당연한거고, 재밌는 건 그렇게 지구를 구한 케이지가 마지막에 다시 리타를 찾아간다는 사실이다. 케이지는 리타와 함께 수백번 죽은 경험이 있고, 극한 상황에서 내밀한 이야기도 나누었고, 할리우드 영화의 클리셰대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기 직전에 뜬금없는 키스도 나누었음을 안다. 문제는 리타가 케이지를 처음 본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리타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 말을 걸려는 케이지를 보여주면서 끝난다.
한쪽은 상대방과 생사를 함께하는 진한 경험을 나누었는데, 다른 한쪽은 상대방을 처음 봤다. 둘 사이에 관계가 시작될 수 있을까. 톰 크루즈의 (50대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싱그러운 미소는 둘의 밝은 앞날을 예견하는 듯 하지만, 난 이 관계가 어렵다고 봤다. 둘은 서로에 대한 정보를 비대칭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는 이런 상상력을 이미 멜로 영화에 써먹은 적이 있다. <첫키스만 50번째>의 아담 샌들러는 드류 베리모어를 사랑한다. 그러나 예전에 교통 사고를 당했던 드류 베리모어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 하루밖에 기억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 샌들러는 매일 둘의 사랑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한쪽은 매일이 첫날이고, 다른 한쪽은 그 날이 쌓인다.
하루의 연인, 100일의 연인, 1000일의 연인은 경험과 감정이 다르다. 첫만남의 설렘, 아슬아슬함은 오래 지속되지 않지만, 사랑은 영원한 긴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둘이 세월을 보내면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겪어 쌓아가는 감정의 퇴적층도 사랑을 지탱한다. 관계의 각자 다른 단계에 위치한 두 남녀가 서로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느낀 다른 한 가지는 '반복되는 죽음'이다. 이 영화에선 같은 인물이 수십, 수백번을 죽어나가지만, 죽는 장면 자체는 의외로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죽었다'는 정황을 암시할 뿐이다. 그건 이 영화가 12세 관람가 등급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을 듯하다. 그러나 이것이 온당한 태도일까. 죽어본 사람의 말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생명이 빠져나간다는 것이 스위치를 끄듯 손쉽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전장에서의 죽음은 다른 어떤 죽음보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를 수백번 반복한다고 익숙해질 수 있을까. 케이지와 리타는 마치 잘못 플레이한 게임을 새로 시작하듯 무언가 잘못되면 바로 죽음을 택한다. 그런 의미에서 반복되는 죽음과 풀리지 않는 전쟁 게임에 지친 케이지가 탈영해서 런던의 한 펍에서 맥주를 들이키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설득력있는 장면이었다.
기계가 아닌 이상, 매일 반복되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긴 어렵다. 이 영화는 죽고 또 죽어도 손쉽게 생명을 얻는 게임 세대의 감수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우리 삶이 게임은 아닌데, 죽음을 이토록 가벼이 리셋할 수 있는 대상으로 다룰 수 있는지.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 난 죽음의 고통, 슬픔을 완전히 삭제한 이 영화의 방법이 너무 손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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