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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뇌구조, <똑똑한 바보들> 똑똑한 바보들크리스 무니 지음·이지연 옮김/동녘사이언스/394쪽/1만6500원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다”지만,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씨는 있다”고 미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 무니는 말한다. 물론 오해의 여지가 많은 주장이다. 크리스 무니 스스로 버락 오바마를 지지하는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역시 보수주의자의 고지식함을 비판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이 특히 심했다. 정식 출간 전인 지난해 11월 의 주제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온라인으로 공개되자 보수주의자들은 즉각 무니를 공격했다. 보수적 논객인 조너 골드버그는 이 책이 ‘보수주의자에 대한 골상학’을 전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책의 원제는 , 즉 ‘공화당지지자의 뇌’다. 한국적 맥락으로 번역하면 ‘새누리당지지자의 뇌’가.. 더보기
가디언의 문선명 오비추어리 가디언의 문선명 오비추어리 번역. 이명박, 노무현, 반기문은 물론 김대중보다 유명한 한국인. 오비추어리의 어조는 쌉사레. 원문은 여기 신흥 종교는 창립자의 죽음 이후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 진정한 시험에 빠진다. 통일교 문선명 목사가 92세 나이에 폐렴으로 세상을 뜨면서 '무니스'라 불리는 통일교의 미래는 어두워 보인다. 자칭 메시아인 그의 국제적인 사업체와 미국의 보수 정치세력에 대한 은밀한 영향력의 전망에도 주목할 만하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문선명은 합동 결혼식, 젊은 남녀들을 고립된 캠프에 보내놓고 가족을 버리도록 '세뇌'시키는 교육 방식으로 악명 높았다. 신도들은 하루 16시간씩 모금했고, 자칭 '아버지'인 문선명을 대신해 무보수로 일해야 했다. 전세계에서 소송이 증가하.. 더보기
빚 권하는 사회, <약탈적금융사회> 약탈적 금융사회제윤경·이헌욱 지음/부키/264쪽/1만3800원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면 온갖 욕을 먹게 마련이다. 빌릴 때부터 갚을 생각이 없었던 파렴치한은 논외로 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갚아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 빌린 돈을 갚고, 그렇게 해서 생긴 2차 빚을 갚기 위해 3차 빚을 지곤 한다. 이렇게 빚이 거듭되면 이자는 불어나고, 결국 그는 헤어날 수 없는 빚의 늪에 빠져버린다. 어느 순간 그의 마음에 떠오르는 단어는 ‘포기’다. 이제 채무자는 채권자에 대한 죄의식과 삶을 망쳐버렸다는 절망감에 물들어 버린다. 그런데 잠깐 시선을 달리 해보자. 돈을 갚지 못하는 건 오직 돈 빌린 사람의 책임일까. 돈 갚을 능력이 안되는걸 알면서도 돈을 빌려준 이에겐 책.. 더보기
혼군인가 실용군주인가.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오항녕 지음/너머북스/372쪽/1만7000원 선인은 이미 죽어 진토가 되었지만, 후대 사람들은 그를 두고 담론의 장터를 펼친다. 때로는 이 담론이, 때로는 저 담론이 우세다. 조선시대 27명의 왕 중에서도 광해군은 장터의 열기를 뜨겁게 달군 ‘문제적 인간’이다. 광해군은 연산군과 함께 왕위를 강제로 빼앗긴 단 두 명의 왕에 속한다. 연산군이 ‘폭군’이라는 평가에는 큰 이견이 없다.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성정이 흐려졌다는 ‘동정론’도 있지만, 그래도 그가 왕으로서 수행해야할 내치와 외치에 모두 무능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광해군은 조금 다르다. 실록에 ‘혼군’(昏君·판단이 흐린 임금)이라 적혔던 임금이지만, 20세기 들어서 그에 대한 평가엔 변화의 움.. 더보기
유목민 황제와 그 딸들, <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 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 잭 웨더포드 지음·이종인 옮김/책과함께/432쪽/1만8000원 한때 몽골은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 전역과 유럽까지 호령한 제국이었지만,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칭기스 칸’을 칭송하는 흘러간 팝 음악, 몽골에 여행 다녀온 사람들의 승마 이야기, 한국에 온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정도다. 800년 전 대제국의 문화가 이토록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정주보다 이주를 선택한 유목민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머무는가 싶으면 떠나길 반복하는 노마드인 몽골인들은 최대한 짐을 줄였고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물론 정주의 유혹이 없지 않았다. 한족을 몰아내고 중국에 세운 원나라가 바로 그 유혹을 받아들인 사례다. 그러나 길들여진 늑대는 늑대가 아니라 개다. 원나라는.. 더보기
혁명인가, 개혁인가. 체제내인가 체제외인가. <중국인의 초상> 중국인의 초상자젠잉 지음·김명숙 옮김/돌베개/348쪽/1만7000원 현대 중국은 걸출한 인물들의 시대였다. 마오쩌둥, 장제스, 덩샤오핑 등 강렬한 캐릭터의 인물들이 역사의 변곡점에 그들의 이름을 새겼다. 그러나 조조, 유비, 손권이 의 전부였겠는가. 20세기 중국은 수억 인민 하나 하나의 삶을 거대한 파도 위에 올려놓았다. 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은 인물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파도를 탔다. (원제 Tide Players: The Movers and Shakers of a Rising China)의 저자 자젠잉 역시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라 사람들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복잡한 삶을 살아왔다. 자젠잉 인생의 첫번째 파도는 문화혁명과 함께 찾아왔다. 자젠잉의 부모는 하루 아침에 ‘역겨운 지식인’에다가 ‘반혁명분자.. 더보기
문학은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의 을 읽다. 일본의 사상가로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는 이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저서로 보인다. 책의 제목은 파울 첼란의 에 실린 한 시구를 인용했다고 사사키 스스로가 밝히고 있다. 부제가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인데, 인류 역사의 혁명은 폭력이 아니라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고쳐 쓰는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사사키는 "우리는 혁명으로부터 왔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서구의 여섯 가지 혁명을 언급하는데, 이는 중세 해석자 혁명, 대혁명, 영국혁명, 프랑스혁명, 미국혁명, 러시아혁명이다. 그중에서도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논하는 것은 통상 '혁명'이라고 언급되지 않는 중세 해석자 혁명과 대혁명이다. 먼저 대혁명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말한다. 그러나 루터의 '개혁'은 "세.. 더보기
우리에게 국적은 무엇인가,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일본 훗카이도 샤쿠베쓰 탄광 입구에서 찍은 징용자 단체 사진(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소장)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서경식 지음·형진의 옮김/반비/272쪽/1만4000원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는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한국, 일본, 중국의 스타 배우를 캐스팅하고 유명 감독이 연출했지만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일제 식민지 시절 강제 징집된 조선인 마라토너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의 흥행 실패 요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캐릭터의 갈등이나 생동감이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전세계의 전장을 누비면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변한 없는 휴머니스트의 면모를 보인다. 국가, 이념 따위가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라는 휴머니즘에 대해 시비걸 관객은 많지 않겠지만, 휴머니즘 하나로.. 더보기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의 삼국지, <디지털 워> 디지털 워찰스 아서 지음·전용범 옮김/이콘/464쪽/1만7000원 총알, 폭탄이 없고 사상자도 없었다. 하지만 1998년 이후 실리콘 밸리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예전의 많은 전쟁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디지털 전쟁’ 역시 우리 삶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동양 고전 에선 위·촉·오가 천하를 두고 겨뤘는데, ‘디지털 전쟁’의 주역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이었다. ‘디지털 전쟁’의 초반, 마이크로소프트는 천하를 거머쥐고 있었다. 애플은 한때 융성했으나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 듯 보였다. 구글은 스탠퍼드 대학원을 그만둔 25세 동갑내기 청년 둘이 창고에 세운 자그마한 정보기술(IT) 회사에 불과했다. 당시 구글은 닷컴 호황기에 거품처럼 생겼다 터질 수많은 벤처 회사의 .. 더보기
교과서적인 갈구와 구원, 엔도 슈사쿠의 <침묵> 엔도 슈사쿠의 을 읽다. 홍성사에서 나온 소설인데, 이곳은 기독교계 출판사로 최근에는 이재철 목사,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대담집을 냈다. 역자 후기에는 "번역을 끝내면서 가슴 뿌듯하게 밀려오는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했다"고 적혀있다. 물론 도 '진정한 믿음'을 찾아가는 카톨릭 사제들의 이야기지만, 이 책을 다른 대형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목록에 넣어도 항의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엔도 슈사쿠(1923~1996) 일본은 기독교가 그다지 세를 떨치지 못한 나라로 알려져있지만 의 배경이 된 17세기를 보면 역사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일찌감치 네덜란드, 포루투갈 등 당대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서유럽 국가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군인, 상.. 더보기
오키나와 리얼판타문학, <물방울> 메도루마 슌의 을 읽다. 표제작 을 비롯해 , 등 3편의 중단편이 들어있는 작품집이다. 표제작은 1997년 발표돼 그해 117회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받았다. 1960년 오키나와에서 태어난 저자의 작품을 '오키나와 문학'으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세 편의 작품 모두 오키나와의 역사, 문화에 깊게 뿌리박혀 있다. 그러나 이 토착적인 작품들이 바다 건너 독자에게도 호소력을 지니는 까닭은, 작가가 작품의 특수성에 인류 감성의 보편성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마련해둔 까닭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메도루마 슌. 미안하지만 우리가 이런 얼굴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일본영화 속 야쿠자 중간 보스. 우리가 오키나와 하면 떠올리는 것들은 일본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졌던 류큐 왕국의 역사, 일본 영토 중 유일하게 연합군과의 전.. 더보기
성폭행, 식인, 남성 판타지가 넘친 한국 고전, <가족기담> 가족기담유광수 지음/웅진지식하우스/260쪽/1만4000원 어른이 된 뒤 다시 보면 안다. 어린 시절 눈을 빛내며 들었던 동화나 전설이 얼마나 잔혹한 이야기였는지. 우리가 그때 잔혹성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몇 가지로 추론할 수 있다. 우선 몇 가지 ‘심의 기구’의 존재다. 옛이야기를 어린이용으로 각색한 동화책 혹은 구전한 어른들은 원작 속 ‘적절치 않은’ 표현을 걸러내 아이에게 들려줬다. 예를 들어 “까마귀가 눈알을 파냈다”는 표현은 “벌을 받았다”로 바꾸었다. 또 아이는 아직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온전히 모른다. 이야기를 이야기로 소비할 뿐, 그것이 세상의 가혹함, 부조리, 울분에 가닿아있음을 알아내기 어렵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어딘가에 흥부 가족처럼 가난해 굶어죽는 사람이 있음을, 변학도처럼 권력.. 더보기
우리는 모두 적당히 부도덕하다,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댄 애리얼리 지음·이경식 옮김/청림출판/344쪽/1만6000원 인간은 얼마나 착하고 또 얼마나 나쁠까. 듀크대학교 심리학 및 행동경제학 교수인 댄 애리얼리는 1%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선하고 1%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악하다고 한다. 나머지 98%는 때로 선하고 때로 악한 평범한 사람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나는 착한 사람인가. 완전히 착한 1%에 들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대체로 착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무의식중에’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는 점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되뇐다. 문제는 완전한 악인 1%가 저지르는 거대한 악행보다, 평범한 98%가 저지르는 사소한 악행이 사회 전체에 더 큰 해를.. 더보기
훗날의 유산이 된 어느 여인의 정신병, <지옥변> 아쿠타가와 류스노케의 소설은 범우사에서 나온 문고판만을 읽었는데,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시리즈로 나온 을 구해두었다가 이번에 읽었다. 이번에 나온 은 10여년에 걸친 아쿠타가와의 활동 기간을 훑으며, 그의 작품 성향을 알 수 있는 대표작들을 묶었다. 어디서 가져온(사온?) 이미지인줄 모르겠으나 표지가 기막히게 마음에 들어서 기대감을 잔뜩 가지고 읽었다. 특히 '쇠퇴해가는 세계'라는 주제로 묶어 놓은 1부의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합쳐서 하나의 영화로 만든 과 이야 익히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의 섬세한 테크닉과 의 다층적 서술시점은 문학도들의 교과서로 읽힐만큼 잘 쓰여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난 문학도가 아니니까 내게 다가오는 작품 위주로 말하면 된다. 우화적.. 더보기
화학 실험은 아름답다, <실험에 미친 화학자들의 무한도전> 실험에 미친 화학자들의 무한도전 필립 볼 지음·정옥희 옮김/살림프렌즈/420쪽/1만5000원 훌륭한 회화나 시를 접하면서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나 활짝 웃는 미녀를 보면서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매끈한 스포츠카를 타거나 일류 요리사의 음식을 먹을 때 ‘아름답다’고 외쳐도 탓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화학 실험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지 편집고문이자 영국왕립화학회 연구원인 필립 볼은 ‘화학적 미학’을 이야기한다. 프루스트의 의 주인공이 마들렌 과자를 먹고 어린 시절로 향하는 기나긴 회상을 시작했듯이, 볼은 벤젠의 달작지근하고 씁쓸한 냄새를 맡는 즉시 시공이 다른 세계로 떠난다고 한다. 계란이 썩을 때 나는 황화수소의 고약한 냄새, 소변의 알싸한.. 더보기
SF민주주의, 무의식민주주의, DB민주주의, <일반의지 2.0: 루소, 프로이트, 구글> 일반의지 2.0: 루소, 프로이트, 구글 아즈마 히로키 지음·안천 옮김/현실문화/320쪽/1만5000원 한나 아렌트나 위르겐 하버마스는 틀렸을까. 아렌트는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고 대화함으로써 정치적인 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 말을 나누지 않는 인간은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데만 관심있는 ‘노동하는 동물’로 전락한다고 했다. 하버마스는 18세기 영국, 프랑스의 신문, 카페를 살폈다. 여기서 저널리즘이 생기고 토론하는 공중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공공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두 사상가는 의사소통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여겼다. 당연하면서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 상황을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국가의 거시적 정책부터 시민 사회의 미시적 실천까지, 전쟁을 방불케하는.. 더보기
조용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콰이어트> 콰이어트수전 케인 지음·김우열 옮김/알에이치코리아/480쪽/1만4000원 ‘조용한’ 사람들은 조직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일쑤다. “오늘 회식!”이라는 부서장의 말에 한숨부터 나오고, 억지로 간 회식에서도 할 말이 없어 구석에서 조용히 안주만 축낸다. “왜 분위기 못맞추느냐”는 동료들의 타박에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기도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천근만근 피로가 쌓인다. 학교라고 다르지 않다. 초중고교와 대학에서 집단으로 하는 학습 방식이 많이 도입되면서 조용한 사람들은 힘들게 됐다. 가까스로 발표조에 끼어 자기 역할을 해보려고 해도, 작고 주저하는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동료는 많지 않다. 발표 방향에 대해 내심 “이게 아닌데…” 할 때도 있지만, 이미 주도권은 목소리 큰 학생에게 넘어간 상태다. 선생마저 .. 더보기
차가운 현대사의 뜨거운 재현, <일본의 검은 안개> 마쓰모토 세이초(1909~1992)의 상, 하권을 읽다. 마쓰모토는 일본에서 '사회파 추리소설'의 붐을 일으킨 작가라고 한다. 책날개에는 "트릭이나 범죄 자체에 매달리기보다는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드러내서 인간성의 문제를 파고드는"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근 몇 년 사이 읽은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코 모두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읽은 몇 안되는 사회파 추리소설중에는 미야베의 가 가장 좋았다) 마쓰모토는 찣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다가 41세에 작가로 데뷔해 이후 40년간 장편만 100편, 중단편을 합하면 1000편의 작품을 써냈다고 한다. 단행본으로는 700권에 이른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 정도를 손으로 썼다면, 그 손은 분명 펜을 들기(혹은 끼우기).. 더보기
컴퓨터같은 인간, 인간같은 컴퓨터, <가장 인간적인 인간> 저자는 철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인지과학과 논리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딥 블루와 카스파로프의 유명한 대결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에 체스의 룰도 조금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대목을 건너 뛰더라도 독서에 무리는 없다. 난 이 책의 결론이 마음에 든다. 저자는 이제 28살. 나보다 '꽤' 어리다. 아니, 난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가 첼시 감독이 된 이후부터는 나보다 어린 사람이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에 대해 무감해지기로 했다. 이 사람이 브라이언 크리스찬 가장 인간적인 인간브라이언 크리스찬 지음·최호영 옮김/책읽는수요일/434쪽/1만6000원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수학자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그는 2차.. 더보기
유럽의 로마, 아시아의 중국. <중국인 이야기1> 1966년 9월, 마오쩌둥, 린뱌오, 류사오치(왼쪽부터). 2인자 류사오치가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추기 직전이다. 파멸을 예감한 듯 표정이 좋지 않다. 중국인 이야기1김명호/한길사/548쪽/1만9000원 유럽에 로마가 있었다면 아시아엔 중국이 있었다. 로마는 4세기 무렵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갈라지면서 영향력이 쇠퇴했고, 지금도 이탈리아는 경제 위기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달랐다. 19세기 아편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 일본은 물론 동남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21세기 들어서는 미국과 함께 세계 양강 체제를 구축하는 중이다. 한길사는 1995년 1권이 나온 시오노 나나미의 로 장안의 지가를 올린 출판사다. 는 2007년 15권으로 완간되기까지 총 35.. 더보기
소문, 뒷담화를 퍼트리는 이유, <무엇이 우리의 관계를 조종하는가> 무엇이 우리의 관계를 조종하는가존 휘트필드 지음·김수안 옮김/생각연구소/392쪽/1만6000원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 인근의 식당을 찾았다. 두 군데가 나란히 붙어있는데 한 곳은 손님이 가득찼고, 한 곳은 파리만 날렸다. 두 곳 다 가보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로 들어갈까. 보통은 사람이 많은 식당을 찾게 마련이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물고기조차 다른 물고기가 좋아하는 물고기를 덩달아 좋아한다. 생물학자 리 듀거킨은 트리니다드 섬에 사는 거피(Guppy) 물고기로 실험을 했다. 네 개의 투명 상자 안에 관찰자 암컷, 시범자 암컷, 색이 화려한 수컷, 초라한 수컷을 한 마리씩 넣었다. 그리고 초라해 매력이 떨어지는 수컷과 가까운 곳에 시범자 암컷의 상자를 두었다. 때문에 관찰자 암컷은 시범자 암컷이 초.. 더보기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함께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인가.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2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음/휴머니스트/각 권 380쪽·392쪽/각 권 2만3000원 역사는 사실의 나열을 넘어 관점의 개입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고 자라 각기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자들이 함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학자들의 국적이 공존, 평화가 아니라 침략, 피침략으로 엮여 있는 한국, 중국, 일본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어렵다고 피해선 안되는 일이 있다. 2차대전이 끝난 지도 70년이 다 돼가지만, 한중일 세 나라는 여전히 근현대사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잊을만하면 '망언'이 나오고, '피해보상'이나 '사과' 문제도 여태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세 나라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기술해놓지 않으면, 상처가 아물기능커녕 .. 더보기
필연과 자유 사이의 긴장이 미를 만든다. <미의 기원> 미의 기원요제프 H. 라이히홀트 지음·박종대 옮김/플래닛/376쪽/1만8000원 진화론은 유력하지만 완벽한 이론은 아니다. 찰스 다윈의 방대하고 독창적인 이론 체계 사이에는 몇 가지 구멍이 나있다. 이후 많은 후학들이 그 구멍을 메우려했고,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윈의 골치를 아프게 한 동물이 몇 종 있다. 특히 수컷 공작이 화려한 꽁지깃을 펼칠 때마다 다윈은 당혹감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꽁지깃은 길고 많은데다가, 동물의 눈동자를 닮은 강렬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수개월간 지속되는 발정기동안 수컷은 꽁지깃을 부채꼴로 펼쳐보이며 암컷에게 구애한다. 그런데 발정기가 끝나면 어떻게 될까. 수컷 공작의 길게 끌리는 꽁지깃은 이제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꽁지깃은 비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지상에서 .. 더보기
가난한 사람이 아이를 9명씩 낳고, 음식 대신 티비를 사는 이유,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이순희 옮김/생각연구소/396쪽/1만7000원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는 거지들을 모아놓는 구빈원과 채무자를 가두는 감옥이 나온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참을성이 부족하고 앞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엄격한 법적·도덕적 원칙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스스로 불행의 나락에 떨어지고 사회도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제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경제학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적기 때문에 뭔가를 선택할 때 훨씬 더 신중하게 행동한다”며 “가난한.. 더보기
살림하는 아빠, 일하는 엄마. <아빠의 이동> 아빠의 이동제러미 스미스 지음·이광일 옮김/들녘/332쪽/1만3000원 전통적인 남성 영웅의 특징은 무엇일까. 큰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낮춰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영웅이라 부르기 어렵다. 조건없는 자기희생이야말로 모든 남성 영웅이 갖춰야할 미덕이다. 미국 시카고에 사는 하프 조율사 켄트 호프먼을 만나보자. 그는 이른바 ‘주부 아빠’(stay-at-home dad)다. 이는 아내가 직장에 나간 사이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육아를 담담하는 남성을 말한다. 호프먼이 처음부터 살림을 자청한 것은 아니었다. 호프먼은 잘나가는 금융자산관리사인 동갑내기 여성 미순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은 사이가 좋았지만 “더 나아가려면 꼭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프먼은 양육에 자신이 없었고, 미순 역.. 더보기
우리들의 최후방어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지음·안기순 옮김/와이즈베리/336쪽/1만6000원 몇 달 전의 경험이다. 퇴근을 위해 2호선 지하철을 잡아탔다가 현기증을 느꼈다. 지하철 한 칸의 내부가 어느 스포츠 의류의 광고로 도배돼 있었다. 벽면 광고판은 물론, 지하철 천정과 바닥까지 모두 다 같은 회사의 광고였다. 지하철이 아니라 의류 회사의 홍보 차량에 오른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니 프로 농구가 중계되고 있었다. 경기 막바지에 접어들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의 상박이 카메라에 잡혔다. 민소매 운동복 아래로 드러난 어깨 부분에 해당 팀을 후원하는 기업의 로고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물론 지울 수 있는 문신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지하철에는 언제나 광고가 있었다. 손잡이를 .. 더보기
신이 많은 미국, 신이 없는 덴마크. <신 없는 사회> 신 없는 사회 필 주커먼 지음·김승욱 옮김/마음산책/368쪽/1만6000원 사회학자 필 주커먼이 고향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의 동네 은행에서 목격한 광경이다. 한 손님이 은행 간부 직원의 책상 앞에서 갚기 힘든 빚에 대해 상담하고 있었다. 직원은 손님에게 조언했다. “채무 자료를 모두 모으세요. 신용카드 청구서, 대출금 청구서, 대출 서류, 연체 통지서…. 그것들을 봉투에 넣은 뒤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세요. 그분은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시고, 빚을 없애주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계세요.” 직원은 매달 50달러씩 헌금을 내면 1년도 안돼 빚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게 해서 효과를 본 사람이 많다고도 덧붙였다. 은행 안의 누구도 이 ‘조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보기
인간은 무엇이고 기계는 무엇인가, <페가서스 10000마일>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를 가진 컨테이너 터미널인 홍콩 콰이충 터미널에 들어서고 있는 페가서스. /워크룸 프레스 제공 페가서스 10000마일이영준 지음/워크룸 프레스/320쪽/2만원 엘리베이터로 고층건물을 오르내리고,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다. 스마트폰으로 친구와 통화하고, 거실의 텔레비전에서 드라마를 본다. 현대인은 이렇게 기계에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기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드물다. 인간은 무엇이고 기계는 무엇인가. 인간과 기계를 둘러싼 자연이란 또 무엇인가. 이영준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51)는 ‘기계비평가’다. 한국에서 스스로를 기계비평가라고 부르는 이는 이영준씨가 유일하다. 그는 기계의 구조를 연구하고 거기에 얽힌 의미를 밝히려 한다. 이영준씨가 이번에 연구한 기계는 ‘CMA CGM .. 더보기
죽어서 사는 여자,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레베카 스클루트 지음·김정한·김정부 옮김/문학동네/512쪽/1만8000원 1920년 8월 1일 미국 버지니아 주 로어노크의 작은 오두막에서 태어난 헨리에타 랙스는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살았다. 헨리에타가 4살 때 그녀의 어머니는 열 번 째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떴고, 헨리에타는 곧 할아버지네 집에 맡겨졌다. 어린 시절부터 우유 짜기, 닭 모이 주기, 담배잎 따기 등의 노동을 했던 헨리에타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마치고 학교를 그만뒀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촌과 자연스럽게 몸을 섞은 헨리에타는 열네살 때 첫 아들 로런스를 낳았고, 그 이후로도 2명의 아들, 2명의 딸을 더 낳았다. 1951년 헨리에타는 자궁에 혹이 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근에서 흑인을 치료해준 유일.. 더보기
민주주의를 위한 '마음의 습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지금까지 북섹션 프론트 페이지에 쓰기 위해 10권 가량의 책을 읽어왔는데, 그 중에서도 과 함께 가장 좋은 편에 속했다. 배운 것과 느낀 것이 고루 많아, 내 '마음'에도 영향을 줬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파커 J 파머 지음·김찬호 옮김/글항아리/328쪽/1만5000원 택시 기사는 민심의 풍향계다. 서민들의 생각을 알고 싶으면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누면 된다. (원제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을 보면 미국에서도 비슷한 모양이다. 그런데 사회운동가인 저자 파커 J 파머는 뉴욕에서 난폭한 택시에 올라타 기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또다른 생각을 이어갔다. 파머가 “이 직업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고 묻자 기사는 답했다. “글쎄요, 어떤 손님이 탈지 전혀 알 수가 없지요. 그래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