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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중의 보수 독서가,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 나는 이런 류의 독서, 특히 고전 가이드를 좋아라 한다. 이런 책은 고전을 읽고 싶게 한다. 고전 문학은 어떻게, 왜 읽는가. 숱한 평론가와 독서 애호가들이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놨다. 미국의 인문학자이자 평론가 해럴드 블룸도 그중 한 사람이다. 문학 비평에 있어서 블룸의 위치는 ‘보수 중의 보수’라 할 만하다. 그는 (원제 How to read and why)에서 고전을 읽는 몇 가지 방식을 제시한다. 그 첫번째가 “머릿속에서 은어를 제거하라”다. 그가 ‘은어’라고 말한 것은 “한 분파나 수상쩍은 비밀 집회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용어”다. 즉 블룸은 역사주의, 페미니즘, 해체론, 마르크스주의 등 근대적 주체를 해체하고 저자를 죽이는 모든 사조에 저항한다. 블룸에 따르면 독서의 즐거움은 사회적이기보다 이기적.. 더보기
안동림, 내 마음의 아리아 난 오페라를 잘 모른다. 이번 기회에 들어보기로 하고 컴필레이션 음반을 리핑했다. '부드러운 속삭임이' 후반부에서 마리아 칼라스와 플룻이 경쟁하듯 지저귄다. 안동림 선생은 "절망적으로 아름답다"고 말했다. 안동림 선생은 신간 출판 기념회를 하기 하루 전날인 5일 팔순 생일을 맞았다. 그는 출판 기념회 인사말에서 책을 내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했다. 끝으로 지난 일요일 자신이 묻힐 자리를 가봤다는 말을 덧붙였다. 친지들이 많이 잠들어있는 장소 주변의 양지바른 한 곳을 찾았다고, 남들은 기분이 이상하다지만 자신은 날씨도 화창하고 해서 참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책 날개에 적힌 그의 공식 직함은 단 하나다. 청주대 영문학과 교수 역임.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책을 내면 그 내용으로 평가.. 더보기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내가 대단한 직업적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고, 그래서 동료에게 이 직업에 대해 그럴듯한 충고나 조언을 할 처지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조지 오웰이 무려 74년전에 내놓은 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사회주의는 몰락하고 자본주의 역시 몰라볼 정도로 변형됐지만, 1937년이나 2011년이나 중간 계급 이하 사람들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책의 1부는 영국 북부 탄광 지대와 그곳 사람들의 삶에 대한 르포, 2부는 오웰 개인의 사상적 정체성이 형성되기까지의 성장기와 당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 지지다. 내 경우 2부보다는 1부가 읽을만했다. 특히 2부 후반부는 당대 사회주의가 지지받지 못하는 이유라든가, 파시즘의 발흥에 대한 경고.. 더보기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리뷰. 근래 지면에 쓰기 위해 읽은 어느 책 중에서도 는 단연 추천도서다. 저자의 주장에 온전히 동의할 수는 없더라도 그 문체와 전개가 흥미로워서 끝까지 읽힌다. 수치에 의지한 분석에서 출발해 윤리학에 기반한 믿음(혹은 의지)으로 나아가며 좌파의 각성을 촉구하는 이 책은 어느 좌파에겐 매우 불편하고 심지어 '꼰대'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꼰대 좌파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토니 주트는 지난해 루게릭병을 앓다가 사망했기 때문에, 이 책은 그의 유작이다. “복지예산은 역대 최고”라고 자화자찬하는 집권자들이나 “사회 따위는 없다. 오직 개인과 가족이 있을 뿐”(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이라고 믿는 보수주의자들은 어차피 이 책에 관심이 없을 것 같다. 는 좌파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저자 토.. 더보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고인의 유고들을 재빨리 손대지 않고 출판한다고 해서 고인의 업적을 기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타계한 소설가 겸 번역가 이윤기의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 남아있던 원고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은 그중 하나다. 딸이자 번역가인 이다희가 유고를 정리했다. 을 저본으로 삼아 그리스 신화, 로마 역사 속 영웅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여기에 한국 독자가 익히 알고 있는 동양 설화를 비교했다. 이윤기의 여느 인문 교양서가 그러하듯, 초등학교 고학년생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쓰여졌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서양문화의 큰 뿌리인 헬레니즘의 초석이기에, 여기 인용된 상징적 표현, 촌철살인 경구를 익히면 현대 언어에 대한 지식도 풍부해진다. 그리스 영웅 중에서도 헤라클레스와 쌍벽으로 꼽히는 테세우스 이야기.. 더보기
<필경사 바틀비>, 카프카 이전의 카프카 창비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세계문학전집 시장에 뛰어들면서 특이하게도 단편선집을 내고 있다. 이런저런 연유로 미국 문학사의 유명 단편들을 엮은 를 구입했다. 는 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의 작품이고, 그외 너새니얼 호손, 에드거 엘런 포우, 마크 트웨인, 헨리 제임스, 스콧 피츠제럴드, 윌리엄 포크너 등의 작품이 있다. 샬롯 퍼킨스 길먼, 찰스 W. 체스넛, 스티븐 크레인, 셔우드 앤더슨은 이 작품집을 통해 처음 알게된 이름들이다. (옮긴이는 헤밍웨이를 넣지 못해 "우울"하다고 썼다)엮고 옮긴이의 해설을 읽어보면 느낄 수 있는데, 선정 기준은 딱 영문과 교수의 그것이다. 현대 한국의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작품들이라기보다는, 미국문학사에서 의미를 가질만한 작품을 골라 묶었다.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니다. 를 표.. 더보기
낯이 얇은 인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 외>를 읽고. 도스토예스프스키의 중단편집 를 읽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을 훔치고 싶다. 낭만주의적으로 과장돼 있을지언정, 이 인물들은 살아있다! 의 바샤 슘꼬프를 보자.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남자다. 그러나 그 사랑에 대해 정신을 파느라 해야할 일을 제 시간에 하지 못했다. 그는 갑자기 쏟아진 행복과 일을 마무리해야한다는 의무감에 동시에 짓눌린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이같이 크나큰 행운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줄곧 의심한다. 결국 그의 '약한 마음'은 상황은 통제하지도, 견디지도 못한다. "팽!"하고 그의 신경줄이 끊어진다. 의 가난뱅이 에멜랴도 비슷하다. 잠자리를 빚지고 있는 야스따피 이바노비치의 물건을 우발적으로 훔친 그는 그 양심의 가책 때문에 지나치게 괴로워한다. 평생을 맞으며 살아온.. 더보기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염소의 축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2000)를 읽다. 옮긴이 송병선의 해설에 따르면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는 '독재자 소설'의 전통이 있다고 한다. 독재자 소설은 1844년 작품인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대체 그 동네엔 독재자가 얼마나 많았기에 독재자 소설이란 장르까지 탄생했을까 황당하다. 그러므로 나도 를 읽고 한국에 독재자 소설이 왜 많지 않은지 궁금해졌다. 한국의 현대사는 줄곧 독재자의 집권기였는데도 말이다. 독재자가 집권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많았지만, 독재자 개인을 다룬 소설은 본 적이 없다. 박정희에 대한 이런저런 책이 많이 나왔지만, 대부분 논픽션이었다. 독재자는 소설 따위로 다루기엔 너무 무거운 주제였을까. 그러나 그 어떤 논픽션이 같은 픽션보다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을까. 가 다루는.. 더보기
볼테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1694~1778)의 를 읽다. 추정컨데 이 책은 당대 프랑스 사회에서는 센세이션이었을 것 같다. 내가 그때 프랑스에 살았다면 이 책을 별로 안 좋아했을 것이다. 당대 사회 체제는 물론 철학, 전쟁, 귀족들의 예절, 종교, 문학 등 모든 것을 풍자하고 있는데, 아마 오늘날로 치면 진중권X100 정도 되겠다. 그래도 지금은 이 책이 쓰여진 시기로부터도 250년 가량이 지났으니, 이런 날선 풍자메 마음 상하지 않고 안전하게 독서할 수 있다. (예전에 마이크 타이슨이 성폭행을 저질러 수감됐다가 나오면서 "감옥에서 난 사람 됐다. 볼테르도 읽었고, 마오쩌둥도 읽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고 기억한다. 이후 친구들 사이엔 "타이슨보다 무식한 놈"이라는 농담이 유행이 됐다.) 독일 베스트팔렌 지방 한 귀족 .. 더보기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을 읽고+출판 담당 기간 만료 찾아보니 2월쯤부터 출판 담당 2진을 한 것 같다. 회사에 조직 개편이 있으면서 이번주를 마지막으로 출판 담당이 끝났다. 11개월 정도 출판 담당을 한 셈이다. 1진 선배에게 오는 책의 양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화요일이면 책상 가득 쌓이는 책 봉투를 뜯어 갓 배달된 책들을 훑어보곤 했다. 대단한 애서가나 장서가, 독서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처지로서는 즐거웠던 11개월이었다. 영화가 그렇듯, 오래도록 생각이 나는 좋은 책은 드문 것 같다. 그러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골라 읽은 책이 만족감을 줬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앞으로는 다시 독자로 돌아간다. 화요일부터 목요일 오전까지, 허겁지겁 활자들을 주워 삼키는 일도 없겠다. 이 블로그의 '서재' 카테고리 업데이트도 .. 더보기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출판계에선 이 책에 실린 공지영 작가의 사진을 두고 화제가 일고 있다고 한다. 왜 이런 사진을 찍었는지는 공 작가와 찍어준 사람, 출판사 편집자만 알 일이다. 아무튼 즐거움을 선사했으니 다행인 사진. 제목을 보고 두메산골의 대안학교 이야기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요절복통 시트콤의 대본에 가깝다. 시트콤 주연은 버들치 시인, 낙장불입 시인과 그의 아내 고알피엠 여사, 저자인 꽁지 작가 등이고, 조연은 강남좌파, 최 도사, 스발녀, 가수 등불, 수경·연관·도법 스님 등이다. 그런데 이 시트콤엔 눈시울 시큰해지는 대목이 종종 박혀 있다. 도시에서 쫓겨나 혹은 벗어나, 스스로 가난해지고 싶어, 뭇 생명을 사랑해, 아니면 그저 아무것도 하기 싫어 지리산을 등에 지고 섬진강을 내다보며 옹기종.. 더보기
어린이책 코멘트1 아이와 놀아줄게 별로 없다. 이래저래 몸을 써도 한계가 있고. 어쩌면 가장 쉬운게 책 읽어주기다. 그래서 예전엔 전혀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어린이책을 몇 권 집어들게 됐다. 그림이 중심인 책들이다 보니 의외로 아름답게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일본 작가의 은 내 마음에도 든다. 작은 남자 아이가 옷을 하나 둘씩 벗더니 강, 바다, 산으로 날아다니며 호연지기를 기른다는 내용이다. 선 굵게 그린 그림이 호방하다.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나는 바다의 왕자다"같은 대목을 힘차게 읽어주면 아이가 꺄르르 웃는 경우까지 있다(고 아내가 일러줬다). 난 한국작가의 이 책도 마음에 드는데, 아이는 몇 페이지 읽어주면 마치 '닭살 돋아 못보겠다'는 표정으로(물론 내 추측) 도망가 버린다. 곰인형을 안은 작은 소녀가 여.. 더보기
스티븐 킹의 <죽음의 무도> 스티븐 킹은 소설도 재밌지만, 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있다"는 유명한 말이 나온다. 도 읽어볼만 하다. 물론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책읽기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타사에 나온 리뷰를 보니 '번역이 거칠다'는 평도 있던데, 킹 특유의 미국식 유머와 구어체가 섞여 있어서 번역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부분을 죽이면 정갈하고 읽기 좋겠지만, 번역자는 원본의 느낌을 살리는 쪽을 선택한 것 같다. 먼저 퀴즈. 다이아몬드부터 쓰레기까지, 온갖 종류의 공포영화를 봤으며 스스로도 무시무시한 공포를 창조해내는 작가 스티븐 킹이 두려움에 떨다가 관람을 포기한 영화가 단 한 편 있다. 킹은 이 영화를 같이 보던 아들에게 “저 빌어먹을 영화를 꺼!”라고 소리질렀다고 한다... 더보기
평생독서계획 클리프턴 페디먼과 존 S. 메이저의 을 읽다. 사실상 페디먼이 주요 저자이고, 메이저는 페디먼이 자신이 취약한 아시아쪽을 보강하기 위해 개정판에서 영입했다고 한다. 1960년에 초판이 나왔고, 번역본은 1997년의 수정 4판을 기초로 했다. 부터 치누아 아체베의 까지, 동서고금의 책 중 '평생독서' 리스트에 들어갈 133명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모았다. 각 작가당 원고지 12매 정도다. 시인이나 소설가 등 문인이 주를 이루지만, 마크르스와 엥겔스, 토마스 쿤, 공자, 헤로도토스, 혜능, 데카르트, 토크빌 등 학자나 종교인도 있다. 단점부터 간략히. 저자가 미국인이기 때문인지, 리스트가 영미권에 편향됐다. 물론 이러한 리스트가 모든 이를 만족시킬 리는 없지만, 그래도 조지 버나드 쇼, 유진 오닐은 있는데 .. 더보기
'편의점 요리'에 대해 '편의점 평론가'라 불리는 채다인의 이 옆에 있다. 저자 약력을 보니 놀랍게도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물론 영문과 전공했다고 영어 잘하는건 아니지만)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요리를 모았다. 아마 어떤 사람에게 이 음식은 '요리'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이다. 먼저 '지구촌 일품요리' 챕터. '돈부리'라고 해놓고는 '냉동 돈가스' 사진이 있다. 돈가스를 튀긴 뒤 양파를 채썰어 넣고, 물, 간장, 맛술, 설탕 등의 소스 재료와 함께 2분간 끓인다. 양파가 투명해지면 끓인 소스에 돈가스를 넣고 달걀를 푼다. 달걀이 반숙이 되면 파를 채썰어 넣는다. 끝. 이 정도는 '요리'라고 봐줄 수도 있다. '세계의 면 요리'로 넘어가면 상황이 악화된다. '냉라면' 편에는 팔도 비빔면 .. 더보기
톨스토이의 여자, 신, 조국 ▲ 톨스토이…앤드류 노먼 윌슨 | 책세상 빼어난 소설가이자 명민한 전기작가였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전기를 남겼다. 츠바이크는 톨스토이를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나병에 걸린 뒤 모든 것을 잃어 영적 고통을 당하는 성경 속 인물 욥에 비유한다. 유서깊은 귀족 출신인 톨스토이는 육체가 건강했고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으며 13명의 자녀를 얻었고 생전 큰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 모든 것에 어떤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겐 어떤 병도, 파산도, 실연도 닥치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한순간 사물 배후의 ‘무(無)’를 통찰했을 뿐이다. 츠바이크가 탁월한 통찰을 통해 길지 않게 남긴 톨스토이 전기를 영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앤드류 노먼 윌슨은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812..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