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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아이를 9명씩 낳고, 음식 대신 티비를 사는 이유,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이순희 옮김/생각연구소/396쪽/1만7000원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는 거지들을 모아놓는 구빈원과 채무자를 가두는 감옥이 나온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참을성이 부족하고 앞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엄격한 법적·도덕적 원칙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스스로 불행의 나락에 떨어지고 사회도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제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경제학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적기 때문에 뭔가를 선택할 때 훨씬 더 신중하게 행동한다”며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빈곤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마법은 없지만, 개선할만한 작은 유인책은 많다고 말한다. 배너지와 뒤플로는 인도, 중국,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서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한 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왜 그렇게 살고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직접 물어봤다는 이야기다. 이들의 연구 대상은 미국 돈으로 하루 99센트밖에 쓰지 못하는 빈곤층이다. 


2008년 전세계에서 말라리아로 죽은 이는 약 100만명이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아프리카 어린이였다. 말라리아 발병을 막을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잘 때 모기장을 치는 것이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모기장에서 자게 하는 방법을 두고 경제학자들은 두 가지 각기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좌파 성향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나 국제연합, 세계보건기구 등의 원조 기구는 모기장을 무상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우파 성향 경제학자 윌리엄 이스털리나 미국 기업인협회는 모기장을 유상으로 판매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상 원조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며, 정부의 부패를 유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은 사람들이 공짜 모기장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 제대로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근거에서 나온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는 이 두가지 생각의 중간쯤에 있다. 경제학자들의 탁상머리 이론이 간과한 가난한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다. 예를 들어 밥을 제대로 못먹을만큼 가난한 사람들을 살펴보자. 돈이 없어 음식을 충분히 못먹으면 생산성이 떨어져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2008년 인도네시아 반둥의 작은 마을에 사는 파크 솔린은 두 달 동안 하루도 일하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 정부가 보조하는 쌀과 호숫가에서 잡은 물고기로 연명했다. 그는 일주일에 나흘은 두 끼, 사흘은 한 끼만 먹었다. 솔린은 “일하고 싶지만 잘 먹지 못하다보니 몸이 약해져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가 약해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돈을 더 벌면 열량 높은 음식을 많이 사먹을까. 조사 결과 그렇지 않았다. 극빈층의 경우도 식비 증가율은 소득 증가율을 밑돈다. 식비 지출을 늘린다 해도 그 증가분을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데 투자하는 대신 맛이 좋고 비싼 음식을 사는데 쓴다. 모로코의 외진 마을에 사는 오차 음바르크는 먹을 음식이 충분치 않은데도 텔레비전, 위성수신안테나, DVD플레이어는 갖추고 있었다. 그는 “TV는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겁니다”라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돈을 모아서 스마트폰, 옷, 가방을 사는 한국의 빈곤층 청소년들도 비슷한 사례다.  


일찍이 조지 오웰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가난한 영국 노동자의 삶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그들은 맛없지만 몸에 좋은 음식 대신, 맛있고 몸에 나쁜 음식을 먹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킬 물건 대신 쓸데없는 사치품에 투자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기회 실현과 생활의 근본적인 변화 가능성을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순간의 쾌락을 참고 자신에게 투자해봐야 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식량 안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곡물 지급량 증대 정책은 궁극적인 답이 되지 못한다.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을 펼치고 있음에도 인도, 중국, 에티오피아에는 인구가 많다.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낳을까. 지금까지는 가난한 사람들이 현대적인 피임법을 모르거나 육욕에 충실한 나머지 자녀수를 조절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피임도구에 접근하기 좋도록 하는 여러가지 정책이 동원됐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출산율을 거의 낮추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잘 모르거나 실수로 아이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출산을 선택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출산은 일종의 도박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넝마주이 파크 수다르노는 9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는 9명의 자녀 중 한 두 명은 잘 풀려서 아버지의 노후를 보살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부유한 나라의 부모에겐 연금, 보험, 펀드가 있지만, 가난한 나라의 부모에겐 공무원이 될지도 모르는 자식이 있는 셈이다. 실제 중국에선 강력한 가족계획 정책이 펼쳐지면서 출산율이 하락하고 저축률이 올라갔다. 


위에서 언급한 무료 모기장을 경제학에서는 ‘따기 쉬운 열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의 공무원들은 열매를 따게 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적은 돈으로 예방하면 될 것을 많은 돈을 들여 치료하고,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 대신 사설 개업의를 찾는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한국 속담은 전세계적으로 통용된다. 인간에겐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하찮게 보는 경향이 있다. 가벼운 병에 대해 국가가 운영하는 보건소 의사들은 별다른 처방을 내리지 않지만, 사설 병원 의사들은 과잉 진료를 한다. 두 경우 모두 병이 낫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다음부터는 아무 처방도 내리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의사 대신, 무언가 일을 한 것처럼 보이는 의사를 찾는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사람들의 옆구리를 슬쩍 찌르는’, 이른바 ‘넛지’로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인도 우다이푸르의 농촌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많은 사람 앞에 나오면 악마의 눈에 띄어 일찍 죽는다는 미신이 있었다. 그래서 부모들은 돌이 안된 아기들을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고, 유아 사망률은 높아졌다.  저자들은 접종에 참여하는 부모들에게 그 지역의 주식인 말린 콩 2파운드를, 종합 예방접종을 완료한 부모에게는 스테인리스 쟁반 세트를 주는 실험을 했다.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나오는 대가로 그 부모에게 일종의 뇌물을 준 셈이다. 


실험은 성공했다. 이 마을의 예방접종률은 이전보다 7배 상승했다.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손실을 현재의 자신보다 미래의 자신에게 부과하려는 마음이 있다. 헬스 클럽 회원권이 3일만에 쓸모 없어지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오늘 헬스 클럽에 가 운동을 하면 앞으로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당장 운동을 하러 가기엔 여러모로 귀찮다. 그래서 “내일부터 가자”고 마음 먹다가 결국 가지 않는다. 이럴 때 말린 콩 같은 유인책, 작은 벌금 같은 과태료, 즉 ‘넛지’는 매우 효과적이다. 


사실 가난한 사람들은 독창적인 방식으로 경제 계획을 꾸린다. 가난한 나라의 교외에는 짓다만 주택들이 많다. 벽만 있고 지붕이 없거나, 페인트칠을 하다 말거나, 창문이 없는 집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생길 때마다 벽돌 몇 장, 시멘트 몇 포대를 사서 집을 짓는다. 이렇게 오랜 시간 집을 지으면 건물에 좋지 않고, 도중에 들어가 살 수도 없기 때문에 건축 기간에는 무용지물이다. 그렇다면 돈을 모았다가 한거번에 건물을 짓는게 좋지 않을까. 이같은 미완성 건물은 가난한 사람들만의 저축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은행에서는 소액 계좌 관리에 드는 비용을 아까워해 저축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모여도 스스로 간수해야 하는데, 수중에 돈이 있으면 인간의 자제심은 시험에 든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자신도 함부로 써버릴 수 없도록 벽돌, 시멘트로 바꾸어 두는 것이다. 좌절감은 자제력의 적이다. 빚이 없으면 빚을 지지 않기 위해 참지만, 빚이 생기면 빚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지 않는다. 저축은 ‘내일은 오늘보다 낫다’는 희망에 기반한다. 미완성 집은 미래를 향한 작은 희망, 안도감, 위안인 셈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무조건 원조하지도,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둬서도 안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필요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미시적 정책이다.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의 책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예방주사의 대가로 ‘뇌물’을 주는 일의 정당함을 논하거나, 가난한 나라의 부패한 관료 조직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저 현 시점에서 빈곤 문제에 대한 가장 쉽고 빠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주력한다. 배너지와 뒤플로는 지방분권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치가 늘 정책의 우위에 있다고 보는 정치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좋은 정책이 좋은 정치를 낳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생각한다면, 흥미롭게 읽어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