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기원
요제프 H. 라이히홀트 지음·박종대 옮김/플래닛/376쪽/1만8000원
진화론은 유력하지만 완벽한 이론은 아니다. 찰스 다윈의 방대하고 독창적인 이론 체계 사이에는 몇 가지 구멍이 나있다. 이후 많은 후학들이 그 구멍을 메우려했고,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윈의 골치를 아프게 한 동물이 몇 종 있다. 특히 수컷 공작이 화려한 꽁지깃을 펼칠 때마다 다윈은 당혹감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꽁지깃은 길고 많은데다가, 동물의 눈동자를 닮은 강렬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수개월간 지속되는 발정기동안 수컷은 꽁지깃을 부채꼴로 펼쳐보이며 암컷에게 구애한다.
그런데 발정기가 끝나면 어떻게 될까. 수컷 공작의 길게 끌리는 꽁지깃은 이제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꽁지깃은 비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지상에서 걸을 때도 질질 끌린다. 야생에서라면 포식자들에게 잡히기 딱 좋을지도 모른다. 수컷 공작의 꽁지깃은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에 위배되는 예다. 꽁지깃은 엄혹한 환경에서 생존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치' 혹은 '낭비'에 가깝기 때문이다.
자연의 사치, 공작 꽁지깃
다윈은 고민을 거듭했다. 진화론을 구하고 공작 꽁지깃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윈은 <종의 기원>이 나온 지 12년 뒤 또 하나의 이론을 발표했다. 바로 '성 선택' 이론이다. 수컷의 화려한 깃털 과시 행위, 거대한 뿔을 이용한 사슴들의 싸움, 각기 다른 음색으로 노래하는 새 소리 등은 암컷이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생기고 발전했다는 논지였다. 자연 선택 영역에서는 각 개체들이 자연의 변덕에 적응하고, 성 선택 영역에서는 같은 종의 수컷들이 암컷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툰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하면 다윈의 성 선택 이론에도 허점이 있다. 암컷 사슴이 수컷 사슴의 뿔에 반했다고 하더라도,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연이 개체의 '허영'을 허락할만큼 만만한가. 1975년 이스라엘의 생물학자 아모츠 자하비는 "다윈 퍼즐의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려고 했다. 자하비는 성 선택 이론이 옳다는 전제 아래 '핸디캡 원칙'을 덧붙였다. 암컷의 마음에 들기 원하는 수컷은 단순하고 쉬운 것이 아니라 힘들고 비용이 드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 젊은 남자가 목숨을 걸고 오토바이를 빠르게 몰듯이, "수컷은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수컷 공작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핸디캡은 암컷에게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요란한 깃을 갖고도 무사히 살아남은 수컷이라면 그 유전자도 훨씬 뛰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독일의 진화생물학자 요제프 H. 라이히홀트는 다윈과 자하비에게 다시 의문을 제기한다. 북유럽의 목도리도요 수컷들은 색과 깃이 무척 다양하다. 그러나 암컷은 가장 눈에 띄는 하얀 깃의 수컷 대신 수수한 색깔의 수컷을 선택한다. 또 목도리도요 정도를 제외한 다른 수컷들은 생김새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면 암컷은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고급 차를 가진 남자가 1명 있다면 여자는 그를 선택하겠지만, 세상 모든 남자가 고급 차를 갖고 있다면 여자는 선택하기 힘들다. 여기서 핸디캡 원칙의 허점이 드러난다.
라이히홀트는 공작 꽁지깃의 다른 목적을 의심한다. 그는 화려한 깃이 수컷을 오히려 보호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공작은 자신을 잡아채려는 표범에게 꽁지깃만 떼어주고 나무 위로 도망친다. 그동안 '낭비'처럼 보였던 꽁지깃의 실용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아울러 수컷의 화려함은 수컷이 출산 및 양육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인간이 그렇지만, 동물의 출산·양육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암컷 청둥오리는 몸무게의 3분의1에서 절반을 알에 투자한다. 또 먹이를 먹을 시간도 없이 둥지 자리를 물색하고 둥지를 만들고 그 안에 푹신한 것을 깐다. 알을 부화시키는데도 에너지가 소모되고, 부화한 새끼들이 홀로 생존할 수 있을 때까지 돌보는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이 사이 수컷은 별다른 할 일이 없다. 놀고 먹으면 살이 찌고, 살이 쪄 둔해지면 포식자의 쉬운 먹이감이 된다. 그래서 수컷은 '다이어트'를 하는데, 몸을 화려하게 꾸미거나 시끄럽게 노래하는 것이 바로 수컷의 다이어트다.
공작이 라이히홀트의 가설을 증명한다. 수컷 공작 장식깃의 단백질 함량은 암컷이 알에 투입하는 양과 비슷하다. 또 수컷 공작이 털갈이를 하는 주기는 암컷이 알을 낳는 주기와 비슷하다. 반면 수컷이 양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종은 수컷과 암컷의 모양. 몸집이 비슷하다. 수컷도 양육에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꾸밀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미의 기원>은 1부 성 선택, 2부 미의 해석, 3부 인간과 아름다움으로 구성돼 있다. 책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1부에서 라이히홀트는 매우 신중하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 후에, 이론과 관찰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새나 짐승의 생태를 통해 인간의 삶을 엿보겠다는 의도도 드러내지 않는다. 1부에서 그는 다윈을 닮았다.
그러나 2부 이후부터 라이히홀트는 과감해진다. 자신의 가설과 관찰을 바탕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나간다. 여기서 그의 글쓰기 방식은 프로이트를 연상케한다. 어떤 독자에게는 불쾌감을 주거나 매우 단정적이어서 논란이 될만한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1부와 2·3부 사이에는 깊은 계곡이 있다.
생물은 '환경이 찍어내는 복제품'이 아니다.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적응'은 가능성이지 필연성은 아니기 때문에, 적응의 개념은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 비슷한 환경에서 사는 두더지와 물밭쥐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다.
여기서 '자유'의 개념이 도출된다. "유기체는 내적 복잡성과 신체 크기의 확대와 함께 삶의 외적 조건들에서 점점 자유로워진다. 생물이 비생물적 자연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것이 생물을 더 자유롭게 만들고, 생물은 독립과 자유를 얻는다." 그리고 미(美)는 환경에 적응할 필요와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사이에서 발생한다. 이 자유가 얼마나 커질지는 각 생물체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른데, 인간이 다른 생물체보다 이 자유를 훨씬 많이 누린다는 것은 분명하다.
진화생물학은 모든 생물 중에서도 오직 인간만이 가진 것으로 여겨졌던 '품위'를 공격하곤 했는데,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동물 세계와 달리 왜 인간은 여성이 남성보다 꾸미길 좋아하고 아름다운가. 라이히홀트는 그것이 다른 동물에 비할 수 없이 오래 걸리는 인간의 양육 기간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걷고 1~2년 뒤면 생식 능력을 갖추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14~18년간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 가족, 공동체의 도움이 있어야 아이를 원활히 키울 수 있다. 여성이 스스로를 가꾸는 이유는 배우자인 남성이 아이를 돌보지 않은 채 떠나는 걸 막기 위해서다. 매력을 유지해야 남자를 붙잡을 수 있다. 동물 세계도 비슷하다. 새끼를 보살피고 번식 조건을 유지하기 어려운 종일수록 암수의 유대 관계가 좋다.
발정기가 따로 없는 인간의 성(性)도 비슷하게 해석된다. 아이를 오랜 시간 함께 보살펴야 하는 남녀 파트너는 수시로 결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가장 강력한 수단이 성이다. 성은 자손 생산의 수단을 넘어 인간 결속의 원동력이다.
3부의 어떤 대목은 문제적이다. 설령 사실이라 해도 독자에게 불편함을 안겨줄 말이 적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고, 젊게 행동하고, 또 남자들에게 성적 매력을 풍기는 여자들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 "여성적 공격성의 대부분은 경쟁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거기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것이 미의 표현이다." "'그 여자가 그렇게 잘 살면 안 되지! 그 여자가 어떻게 나보다 잘 살아?' 이런 태도는 지금도 여성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사회적 질투는 대부분 아름다운 여성에게 쏠려 있다."
역시 결론은 '자유'다. 생물은 환경에 길들여지지만, 또 거기서 벗어나려 한다. 어떤 종이 환경에 의해 허락된 이상형에 가까워진다면, 오히려 그 종은 멸망할 가능성이 크다. 유전적 다양성이 미미하면 갑자기 들이닥친 외부 병원체에게 취약하다. 단일 혈통으로 내려온 지체 높은 귀족은 면역력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줄곧 이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중매체에서 흔히 '여신'이라는 수식어를 헌사받는 아름다운 여성은 부와 권력을 누릴 가능성이 높겠지만, 저자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 가장 자식을 많이 낳는 여성은 아니"라고 위안한다.
'표준'에서 벗어난 이들을 떠안는 사회가 강한 사회고, 미의 이상에서 벗어난 개성이 강인한 종족을 만든다. 이 정도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여겨질만한 결론이다. 물론 독일에서 '학계의 이단아'라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는 저자가 올바름에 대한 세간의 정의에 신경을 쓸 것 같지는 않다.
'텍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문, 뒷담화를 퍼트리는 이유, <무엇이 우리의 관계를 조종하는가> (1) | 2012.06.10 |
---|---|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함께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인가.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0) | 2012.06.02 |
가난한 사람이 아이를 9명씩 낳고, 음식 대신 티비를 사는 이유,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0) | 2012.05.13 |
살림하는 아빠, 일하는 엄마. <아빠의 이동> (0) | 2012.05.10 |
우리들의 최후방어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0) | 2012.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