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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여자, 신, 조국


▲ 톨스토이…앤드류 노먼 윌슨 | 책세상

빼어난 소설가이자 명민한 전기작가였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전기를 남겼다. 츠바이크는 톨스토이를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나병에 걸린 뒤 모든 것을 잃어 영적 고통을 당하는 성경 속 인물 욥에 비유한다. 유서깊은 귀족 출신인 톨스토이는 육체가 건강했고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으며 13명의 자녀를 얻었고 생전 큰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 모든 것에 어떤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겐 어떤 병도, 파산도, 실연도 닥치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한순간 사물 배후의 ‘무(無)’를 통찰했을 뿐이다. 츠바이크가 탁월한 통찰을 통해 길지 않게 남긴 톨스토이 전기를 영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앤드류 노먼 윌슨은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812쪽에 걸쳐 써내려갔다. 윌슨은 90권의 톨스토이 전집을 세부적으로 분석한 뒤 그의 생애와 동시대 역사의 상관관계를 꼼꼼히 따진다.

톨스토이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키워드는 여자, 신, 러시아다. 수도자와 같은 삶을 산 말년의 톨스토이를 보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젊은 날의 톨스토이는 사교계의 단골 손님이었다.

그에겐 원하는 삶을 누릴 재력과 체력이 충분했다. 19세기 러시아에선 아내를 위한 생일선물로 자신의 일기를 읽을 기회를 주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톨스토이의 선물을 받은 18세의 약혼자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는 이때 읽은 일기의 충격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했다고 훗날 적었다. “나는 남자들의 방종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면서, 마음속에서 질투심과 공포심으로 겪은 그 지독한 격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톨스토이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하녀를 건드렸고, 성병 치료약을 주기적으로 먹었고, 일기를 건네주기 전까지도 정부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었다. 츠바이크는 이러한 톨스토이를 ‘고백광’이라고 불렀다.

<전쟁과 평화>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쓰기까지의 시간과 <크로이처 소나타>와 <부활>을 남긴 시간 사이엔 큰 강이 흐른다. <안나 카레니나> 집필 이후 톨스토이는 오랜 슬럼프에 빠졌다.

많은 평자들은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 이후엔 진정한 걸작을 남기지 못했다고 말한다. 창조 행위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지만, 열정이 투입될 제재가 없었다. 이 시기 톨스토이는 예술가에서 현자 혹은 성자로 발전한다. 윌슨은 “러시아 작가들이 예언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날 방법은, 푸시킨이나 레르몬토프의 경우처럼 요절하는 것밖에 없었다”고 썼다. 톨스토이는 성스러운 농부의 삶을 살려고 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내 소피아는 이런 톨스토이를 빈정거렸다. 톨스토이가 가난한 노파의 집을 수리하거나 장작을 패주러 다니는 동안, 소피아는 또 다른 아이를 임신해 힘겨워하고 있었다. 소피아는 남편이 ‘로빈슨 크루소 놀음’을 한다고 여겼다.

톨스토이는 당대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인물군에 속했다. 오랜 차르 체제가 붕괴하고 혁명의 여명이 동터오자, 톨스토이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혁명 세력에 합류하거나 정부에 협조하는 개량주의자가 되는 길. 그러나 톨스토이는 두 방법 모두 택하지 않았다. 칼을 들거나 정부를 따르는 대신, 그는 오직 사유와 글, 생활 방식이라는 무기로 정부와 싸웠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고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방법론”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0년, 82세의 톨스토이는 평생에 걸쳐 불화한 아내와 함께 살던 야스나야 폴랴나의 영지를 새벽에 몰래 빠져나왔다. 톨스토이가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기차여행 중이라는 소식은 전 세계에 급히 타전됐다. 집을 떠난 지 채 10일이 되지 않은 11월7일, 톨스토이는 야스타포보의 역장 집에서 숨을 거뒀다. 러시아의 차르와 소련의 레닌·스탈린이 모두 불편해했으나, 그의 문학과 삶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존경심 때문에 재갈을 물릴 수 없던 유일한 사람은 톨스토이였다. 이상룡 옮김. 3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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