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모퉁이를 돌았을 때 당신과 부딪치는 것은 대형 트럭일 수도, 일생의 연인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삶은 얼마나 확정적입니까.


코엔 형제 감독의 신작 <시리어스 맨>의 주인공 래리는 진지하게 살아가려는데, 운명은 그를 장난스럽게 쥐고 흔듭니다. 이 남자가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물리학 교수라는 설정은 그의 처지를 더욱 우스꽝스럽게 만듭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아내는 래리의 친구와 바람이 났다며 이혼을 요구하고, 자식들은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습니다. 덜 떨어져 보이는 래리의 동생은 형의 집에서 무위도식하며 얹혀 삽니다. 래리의 종신재직권을 심사하는 동료 교수들에겐 래리를 모함하는 편지가 날아듭니다. 낙제를 받은 한 한국 학생은 래리 몰래 뇌물을 두고간 뒤, 이를 빌미로 협박을 시작합니다.


<파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 코엔 형제의 영화들을 특징지었던 것은 기묘한 상황의 연쇄와 이를 아우르는 리듬감이었습니다. 평범하다 못해 소심한 남자가 나쁜 상황 속으로 조금씩 빠져드는 과정을 <시리어스 맨>은 간명하고 효과있게 그려냅니다.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씩 내디뎠더니 어느덧 지옥에 도착한 느낌입니다.


유대인인 래리는 공동체의 오랜 관습을 좇아 종교 권위자이자 인생 상담가인 3명의 랍비를 차례로 찾지만 해답은 신통치 않습니다. 래리는 묻습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나요. 이 뒤에 있는 신의 섭리는 무엇인가요.” 랍비는 말합니다. “모릅니다. 알게 뭡니까.”


명색이 코미디이니 간혹 웃음이 터지긴 하는데, 이 웃음에는 허무, 무기력, 우울, 체념이 묻어 있습니다. 오히려 <시리어스 맨>을 코미디로 규정하는 건 옳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이라는 거대하고 부조리한 수레 바퀴에 끼어 비명을 지르는 인간을 보는 것은 코미디보다는 공포에 가깝습니다.
종교, 법, 가족, 친구 어느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래리의 삶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현대인의 표상입니다. 우리는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습니다.
어제 퇴근길 구입한 로또가 내일 당첨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 다음날엔 한 달 전쯤 실시한 건강검진 결과가 나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영화 도입부에는 한 랍비의 말이 자막으로 떠오릅니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연민으로 받아들여라.” 정말 가련하군요, 우리의 인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