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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배우를 말한다

수애 ‘첫사랑 이미지’ 버리고 악역 해보세요

(난 수애가 한국에서 가장 멋있게 악한 여자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쟁자는 손예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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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애는 좀 더 못되게 굴어야 합니다. ‘추억 속 첫사랑의 그녀’ 노릇일랑은 잊어버려 주세요.
 



지난주 개봉한 <심야의 FM>이 주말 동안 전국 35만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수애로서는 2004년 <가족>으로 데뷔한 이래 처음 차지해본 박스오피스 1위라고 합니다.
 



고전적이고 단아한 외모 때문에 잠시 잊곤 하지만 수애는 동년배 여배우와 비교해서도 연기력이 빼어난 편입니다. 그는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삶의 목표에 근접하는 역할을 곧잘 해냈습니다.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이드 노릇을 하는 탈북자, <님은 먼 곳에>에서는 말 한마디 없이 베트남전으로 향한 남편을 찾아나서는 아내,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는 외세·시아버지·남편 사이에서 고난의 삶을 살아내는 명성황후 역이었습니다. 


하나같이 배우로선 탐나지만 여자로선 하기 힘든 역이었습니다. 겁 많은 듯 커다란 눈, 부러질 듯 가냘픈 몸매 덕분인지, 힘든 역을 하면 할수록 수애의 강단은 더욱 돋보였습니다.
 






여성스러운 외모를 중화시킨 건 그의 목소리입니다. 수애의 외모에 들떴던 마음은 낮고 중성적인 목소리에 가라앉습니다. <심야의 FM>에서 수애의 직업은 새벽 2시에 시작하는 영화음악 방송 DJ입니다. 여느 작품에서보다 훨씬 정갈하게 가다듬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실제 DJ로 나서도 손색이 없을 듯 했습니다 .



그러나 <심야의 FM>에서 수애의 목소리보다 만족스러웠던 것은 그의 이미지였습니다. 전작들에서 수애는 억척스러웠을지언정 못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심야의 FM>에서 수애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이기적이고 모질게 보입니다. 
애청자가 보내준 선물을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처박고, 길거리에서 도움을 청하는 여성을 싸늘하게 외면합니다. “난 착한 여자가 아니야. 당신의 아련한 첫사랑도 아니야”라고 선언하는 듯한 동작이었다고 할까요. 


세상의 때가 묻었을지언정 마음속 한구석엔 변치 않는 선의를 간직한 수애의 모습은 벽에 부딪혔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심야의 FM>에서 수애는 그 벽을 넘어섰습니다. 


비슷한 궤적을 따라 ‘연기파’의 꼬리표를 얻은 배우로 우리는 이병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병헌이 진짜 배우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고 맑게 웃을 때가 아니라 <달콤한 인생>에서 혼란에 빠진 조폭 역을 맡았을 때였습니다. 최근 메릴 스트립의 역할 중 오래 회자되는 것은 <맘마미아>의 건강미 넘치는 여성이 아니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악마 같은 편집장이었습니다.
 



언제까지나 착하고 순수하고 아름답게 살아남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은 물론 영화에서조차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영화제작자는 지루한 천국이 아니라 흥미진진한 지옥을 선호하는 사람들입니다. 착한 척 하고 살기에는 인생이 짧습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배우가 악역을 소화한다는 건 입을 만한 코트를 한 벌 더 갖추는 일입니다. 가을 햇살이 빛나는 날엔 아이보리 코트를, 우중충한 날엔 회색 코트를 입으면 됩니다. 수애는 <심야의 FM>으로 회색 코트를 장만했습니다. 전 수애가 좀 더 낮은 목소리로 좀 더 악독한 대사를 내뱉어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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