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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맨 온 와이어

당신은 얼마나 큰 꿈을 꾸고 있습니까.


프랑스 출신 곡예사 필리페 페티의 특기는 외줄타기였습니다. 페티는 20세 때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두 첨탑 사이 외줄을 건넜고, 2년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철제 아치 다리인 호주 시드니의 하버 브리지 횡단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최종 목표는 17세의 페티가 치과 대기실에서 신문을 뒤적였을 때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층 빌딩으로 건설 중이던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소년은 이 거대한 쌍둥이 빌딩을 그려놓고는 두 건물의 꼭대기 사이에 줄을 하나 그었습니다. 페티와 그의 친구들이 이 전대미문의 도전에 성공하는 이야기가 2월4일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어>에 담겨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페티 일당이 ‘거사’에 성공한 것은 1974년 8월7일 오전 6시45분. 페티는 채 완공되지 않은 세계무역센터 두 빌딩 사이에 처진 두께 2㎝의 외줄 위에 45분간 머물렀습니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1번’이 흐르는 가운데 페티의 외줄타기 자료사진이 나오는 영화의 절정부는 자못 숭고합니다.


물론 이 이벤트는 불법이었습니다. 페티 일당이 무역센터로 잠입하는 과정은 흡사 영화 속의 유쾌한 은행강도를 닮았습니다. 일당은 헬리콥터까지 동원하며 200회의 사전답사를 했습니다. 애초 페티의 도전에 참여했던 이들 중 일부는 “친구의 자살을 방조하고 싶지 않아서” 도중에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경찰에 체포돼 나오는 페티를 향해 모여든 기자들은 묻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하셨습니까?” 패티는 도리어 의아한 표정으로 답합니다. “왜라뇨? 당신네 미국인들은 ‘왜’라는 질문밖에 못합니까?”


꿈은 무조건 거대해야 합니다. 너무나 커서 허황되다고 느껴질 때만이 진정 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돈이나 명성 같은 세속의 잣대로 가늠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꿈이 아닙니다. 페티의 이벤트에도 아무런 실용성이 없습니다. 페티는 이 이벤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자는 이후의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고 합니다.


물론 페티의 도전은 세계사의 흐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위대한 몽상가들에 의해 움직여왔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30년 전의 사건을 생각하면서 여전히 들뜬 아이같이 인터뷰하는 페티의 모습에는 터무니없이 거대한 꿈을 꾸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충만한 행복이 묻어났습니다.


도전에 성공한 후, 페티를 도운 친구와 연인은 거의 그와 헤어졌습니다. 섭섭하지만 당연한 결과입니다. 어려운 게임의 한 스테이지를 깬 게이머처럼, 페티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겁니다. 남겨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친구의 뒷모습을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 꿈을 꾸는 사람은 소수고, 그것을 이루는 사람은 더 적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