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픽션의 주요한 테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도 따져보면 가족극이다. 햄릿도 마찬가지다. 평생을 비슷한 배우가 비슷한 가족 역할을 연기한 영화를 찍어 대가로 인정받는 사람도 있다. 오즈 야스지로다. (요즘 바탕 화면에 오즈 야스지로 묘비 사진을 깔아두었다. 원래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유전에서 불 뿜어나오는 장면이었는데, 그게 요즘 주변 상황 같아서...)

 

넷플릭스에서 '프라이빗 라이프'를 봤다. '코미디'라고 돼있긴 한데, 거의 웃지 못했다. 오히려 영화 속의 상황과 감정이 너무 인텐스해서(영화 속에서도 '인텐스'라는 표현이 몇 번 나온다), 어젯밤 반을 보고 오늘 오전 나머지를 봤다. 요즘 내 감정적 체력은 이런 인텐스한 영화를 두 시간 보아낼 수 없는가보다. 

 

40대에 접어든 뉴욕의 극작가 리처드, 작가 레이첼 부부가 주인공이다. 부부는 아이를 갖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매번 성공하지 못한다. 입양을 하려다가 사기를 당하고, 의학적인 시술은 여자 혹은 남자 쪽의 문제로 매번 실패한다. 부부는 건강한 난자 기증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의붓조카 세이디를 떠올린다. 청년 예술가로서의 야심을 가진 세이디에게 뉴욕의 예술가 부부 리처드와 레이첼은 롤모델이다. 세이디는 다소 답답한 윤리관과 세속적 세계관에 붙잡힌 친모보다, 뉴욕의 삼촌, 숙모를 더 가깝게 느낀다. 리처드와 레이첼은 난자 기증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데, 세이디는 의외로 흔쾌히 승락한다. 이들 부부가 아이를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해준 그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물론 친모는 노발대발하지만, 이미 성인으로서 결정을 내린 딸을 말리진 못한다. 

 

'프라이빗 라이프'에서 표현되는 가족 사이의 감정은 사실 매우 전통적이다. 중년의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며 살지만, 더 이상 로맨틱한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든 아이를 가져 전통적인 핵가족을 만들려는 사람들에 가깝다. 엄마를 미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썩 좋아하지도 않는 세이디와 딸에게 조금 더 많은 성취를 요구하는 엄마의 관계도 많은 모녀 갈등 드라마에서 목격된다. 리처드와 레이첼 부부가 경험하는 의학 과정(심하게 말하면 출산 산업)의 문제가 끼어들면서 전통적 가족극에는 트위스트가 생긴다. 환자 대기실에서 완전히 침묵한 불임 부부들이 가득 앉아있는 모습은 우울하지만, 그렇다고 불임의 디스토피아 세상을 그린 SF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인물들은 근대 이후의 많은 가족들이 겪어온 보편적 감정을 드러내고 그 감정들 중 무엇도 개연성 없거나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이 감정들이 현대의 발전한 의학 기술과 가족관의 미묘한 변화를 거치면서 흥미로운 변이를 만들어낸다. 제목의 '사적인 삶'이 병원이라는 공적 공간에서의 임신과 출산 과정에 노출되면서, 부부는 때론 희망을 느끼고 때론 모욕을 겪는다. 혈연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제도로는 이어진 의붓조카의 난자를 기증받는다는 설정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가족극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창작자의 사고 실험으로 이해한다. 세이디에게 조금 더 넓은 세상을 찾아주려는 이해심과 능력은 친모가 아니라 의붓 친척에게 있었다. 

 

연출과 대본을 맡은 이는 50대 후반의 여성 타마라 젠킨스. 몇 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간혹 연기도 했다고 한다. '프라이빗 라이프'의 전작 '세비지스'는 2007년작이다. '프라이빗 라이프'가 '원 히트 원더'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 영화의 만듦새를 보면 오히려 지난 10여년간 젠킨스의 재능이 빛을 보지 못했다는 추정이 더 설득력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한국영화에서도 좀 더 괜찮은 가족극을 만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엄마 불쌍해, 아빠도 힘들어, 그도 아니면 우리집은 콩가루야, 라고 말하는 그런 영화들 말고. 

 

 

리처드와 레이첼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