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불만과 혼란의 영화. '조커'는 그런 영화다. 조커는 DC코믹스에서 배트맨의 숙적이다. 잭 니컬슨, 히스 레저 등이 조커를 연기해왔다. 조커는 돈도 없고, 가문도 없고, 초능력도 없다. 어둠 속에서 활동하면서도 질서를 추구하는 배트맨을 괴롭히지만, 왜 괴롭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돈 때문도 아니고 세계 정복을 위해서도 아니고, 복수 때문도 아니다. 왜 나쁜 짓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조커는 무섭다. 우스꽝스러운 광대 놀음을 하는 것 같지만, 우스꽝스러운 일이 허용되지 않을 법한 순간에 우스꽝스러운 일을 벌이기 떄문에 무섭다. 조커는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려 한다. 하지만 혼란 이후의 헤게모니 같은 것을 노리지도 않는 것 같다. 그저 세계가 혼란에 빠지는 걸 즐길 뿐인듯하다. 그래서 조커는 무섭다.
토드 필립스의 '조커'에서도 조커는 언제나처럼 고담시에 산다. 고담시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가 그러했든 매우 사실적으로 재현됐다. 고담이란 이름을 지우고 '80년대 뉴욕'이라 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지만, 부유한 엘리트 정치인들은 그 불만을 감지하지 못한다.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은 고담시 시장 출마를 준비한다. 토마스 웨인은 공감 능력 부족한 엘리트의 전형이다. 소외계층의 불만을 '루저들의 불평' 정도로 해석한다. 도시의 질서를 회복하고 경제를 일으키면 자연스럽게 상황이 좋아지고 불만도 사라지리라 생각하는, 낙수효과의 신봉자다.
훗날 조커가 되는 아서 플렉은 파티 광대다. 광대 옷을 입고 상점을 홍보해주거나, 아동 병동에 가서 춤을 춘다. 아서는 그 일을 즐기지만, 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서의 유머 감각은 기괴해서, 웃음보다는 불편을 준다. 게다가 상황에 상관 없이 웃음이 터지는 신경질환을 앓고 있다. 웃지 않아야 될 순간에 웃는 아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준다. 그러면서도 아서는 언젠가는 텔레비전 쇼를 진행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을 꾼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란 것은 관객 모두가 안다.
아서는 꿈에 근접하기는커녕 조금씩 나쁜 상황으로 빠져든다. 알고 싶지 않았던 가족사에 얽힌 불편한 진실도 알게 된다. 그의 불행은 사소한 실수, 성격적이며 신체적인 결함, 주변 사람의 악의, 사회의 모순이 결합된 결과다. 어느 부분 하나에서도 난국을 돌파할 기색이 안보인다. 아주 예전에 보았던 만화 '이나중 탁구부'엔 그런 대사가 나온다. "아무렇게나 돼버려." 아서도 점점 그런 생각으로 빠지는 것 같다.
아서는 우연히 사람을 죽인다. 지하철에서 만난 월스트리트 양복쟁이들이 아서를 집단 폭행하자, 우발적으로 총을 쏜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아서는 고담시의 혼란을 증폭시킨다. 빈자들 사이에서 아서는 재수없는 양복쟁이들을 죽인 영웅이 된다. 본인은 의도치 않았지만, 아서는 카오스의 중심이 된다. 한국의 시위대는 이념이 어찌됐든 명목상으로는 '새로운 나라'를 꿈꾼다. 시위를 통해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리라 믿는다. 하지만 고담시의 시위대는 그렇게 믿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오늘의 질서를 파괴하고 싶을 뿐이다. 내일 고담시가 멸망한다 해도 상관 없다. 고담시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러므로 조커와 그를 추앙하는 시위대가 벌이는 행동은 혁명이라기보단 폭동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그린 테러보다도 훨씬 무질서하다. 미국에선 '조커'가 총기 난사 같은 문제를 촉발할까봐 노심초사한다고 한다. '조커'가 하층민의 분노와 그로 인한 질서의 파괴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영화긴 하지만, 이런 영화 때문에 실제 혼란이 벌어질까 걱정하는 사회는 얼마나 취약한가. 물론 담배 꽁초 하나도 거대한 산불을 일으킬 수 있다. 건기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됐다면.
아이슬란드 첼리스트 힐두르 구드나도티르의 음악이 '조커'의 지분 4분의 1은 차지한다.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에서 이미 실력을 입증했다. 앞으로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영화를 만들고 싶은 창작자는 일단 구드나도티르를 떠올릴 것이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도 꽤 큰 몫을 차지한다. 난 메소드 액터를 좋아하지 않지만, 피닉스의 연기를 보는 것이 흥미진진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저렇게 연기하는 배우의 몸과 마음이 온전할까, 하는 괜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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