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2'의 스포일러가 있음
'설마 이렇게 끝나는 건가' 하는 순간 정말 끝났다. '겨울왕국2'는 한국에서도 1000만 관객을 노리는 글로벌 콘텐츠지만, 대중영화의 익숙한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 '안티 클라이막스'라고 해야할까. 클라이막스에 이르지 않고 영화가 끝나는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그 대목이 클라이막스로 짐작되는데, 다시 생각해도 클라이막스가 해소되는 순간의 쾌락을 의도한 것 같지 않다.
'겨울왕국2'에는 적(악당)이 없다. 강력하든 우스꽝스럽든,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악당이든 나름의 현실적 이유가 있는 악당이든, 가족 영화에는 악당이 필요하다. 하지만 '겨울왕국2'에서는 엘사와 안나 자매가 누구와 맞서 싸우는지 모호하다. 엘사가 목숨을 걸고 찾아간 곳에도 악당은 없다. 엘사가 최종 목적지에서 마주한 것은 정체가 모호하고 초자연적인 존재다. 이 존재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그저 세상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를 원할 뿐이다. 원래 상태를 훼손해 현재 상태로 바꾼 것은 인간이기에, 문명을 일군 인간의 입장에서 이 존재는 악일 수 있다. 반면 자연의 입장에서 이 존재는 선일 수 있다.
물론 굳이 지목하려면 '겨울왕국2'에도 악당이 있다. 과거 아렌델 왕국을 다스렸던 엘사와 안나의 할아버지 루나드 왕이다. 할아버지 루나드 왕은 북쪽의 노덜드라 숲에 사는 원주민과 화친을 맺고 있었는데, 이는 사실 그들을 멸망시키고 아렌델을 풍요롭게 하려는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계략이었다. 루나드는 노덜드라 숲에 댐을 지어주었다. 이 댐이 문명의 덫이었다. 노덜드라 원주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앞선 기술력으로 만든 댐이지만, 이 댐은 원주민을 길들이고 아렌델에만 풍요를 가져다주는 도구였다. 루나드 왕은 '겨울왕국2'에서 유일하게 악의를 보이는 인물임에도 전통적인 악당으로 보기 쉽지 않다.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으며, 매우 적은 분량의 플래시백으로만 등장할 뿐이다. 그러므로 '겨울왕국2'에서 악당을 꼽자면,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정신과 유산 그 자체라고 해야한다.
환경주의의 측면에서 '겨울왕국2'의 메시지는 '아바타'보다는 급진적이다. '아바타'는 나비족의 생활 터전으로서의 환경을 말하지만, '겨울왕국2'는 노덜드라 족의 거주지를 넘어서는, 자연 그 자체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넌지시 말한다. 물론 결말은 절충적이다. 엘사가 댐 파괴 이후 쏟아지는 물길을 막아내 아렌델의 수몰을 막아낸다. 아렌델이 파괴되고 아렌델 사람들이 새 터전을 찾아 떠났다면 한층 흥미로운 텍스트가 됐을 것이다.
전편과 비교해 가장 큰 변화를 겪는 인물은 역시 엘사다. 안나, 크리스토프, 올라프의 성격이나 외모는 전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한데, 엘사는 여러모로 변화한다. 엘사의 마법은 전편에선 얼음 조각을 하거나 자칫 주변 사람을 다치게 하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집채만한 파도를 뛰어넘거나 한 도시를 구할 정도로 강해진다. 엘사는 더 이상 '이웃집 소녀'나 '우리나라 공주님'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서면 두려움을 느낄법한 초자연적 존재가 된다. 엘사의 외모도 여왕이라기보다는 엘프에 가깝게 변한다. 엘사를 극단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낸 것도 인간계를 벗어난 엘사의 능력치와 연관될 것이다. 이렇게 된 엘사가 아렌델 왕국에 머물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인간이 아닌 정령으로서 엘사는 세속의 소소한 즐거움들을 버린 채 자연의 수호자를 자처한다. 이 일이 외롭고 힘들다는 것은 분명하다. '겨울왕국2'는 해피엔딩인가.
*크리스토프의 '로스트 인 더 우즈' 대목은 1980~90년대 보이그룹(엔싱크, 웨스트라이프 등)의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했는데, 내가 관람한 상영관에서는 거의 아무도 웃지 않아 나도 웃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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