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 디텍티브>의 네번째 에피소드 마지막 10여분을 재차 봤다. 멀게는 <블루문 특급>이나 <트윈 픽스>부터 시작해 1990년대 이후론 <CSI>나 <왕좌의 게임> 같은 미드를 즐겨봤지만, 미드의 같은 에피소드를 이틀 연속으로 부분적으로나마 두 번 본 것은 이번 처음이다.
형사 러스틴 콜(매튜 매커너히)은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에 접근하기 위해 용의자가 마약을 공급하는 조직에 잠입한다. 콜은 예전에 마약단속반 소속으로 4년간의 위장 근무를 한 적이 있기에, 이 조직과 안면이 있다. 조직원들은 콜을 여전히 마약상이자 과격한 갱으로 여긴다.
이 조직원들은 대체로 비대하고 머리는 대머리인데다가 수염을 길게 길렀다. 풀린 듯한 눈을 하고 있긴 하지만 금발을 멋지게 기른 콜과는 사뭇 다른 외모다. 조직원들은 콜을 의심하면서도 그를 자신들의 일에 끌어들인다. 이들의 일이란 흑인들이 밀집해 사는 마을의 한복판으로 처들어가 금고를 털어오자는 것이다. 조직은 금고털이에 가담하면 콜이 원하는 이(용의자)와 연결을 해주겠다고 한다. 콜은 꺼리면서도 이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에 그들의 제안에 응한다.
그리고 잔뜩 마약을 한다. 조직의 보스가 권하는 것은 다한다. 나로서는 종류조차 짐작할 수 없는 마약에 취한 채 총을 들고 한밤의 흑인 마을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10여분간 롱테이크가 이어진다. 음울한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깔린다. 배경은 어둡고 흐릿하다. 난 텔레비전으로 이 장면을 보다가 불을 껐다. 그래도 여전히 영상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마약에 취해 시야가 흐려진 것처럼.
흑인 마약갱들이 모여 사는 집. 의미를 알 수 없으나 그 가사에 상소리가 섞여 있을 것임에 분명한 갱스터 랩이 흘러나온다. 난데없이 가짜 경찰복을 입은 백인갱들로부터 침입받은 흑인들은 그들의 총에 눌려 무릎을 꿇었으면서도 줄곧 욕을 해댄다. 마찬가지로 백인들도 욕을 한다. 영어를 잘 알아들었으면 정말 실감이 났을거다.
물론 사달이 난다. 이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주변 흑인들이 몰려든 것이다. 이웃 흑인들은 유리창을 깬다. 위협에 질린 백인갱은 무릎꿇은 흑인 중 하나에게 총을 쏜다. 한 발의 총소리는 기름통 위의 불씨였다. 총격전이 벌어진다. 콜은 조직 보스를 붙잡아 뒷문으로 도망친다. 그 사이 흑인갱과 백인갱들은 여전히 총질을 하며 하나 둘씩 죽어간다. 콜은 이웃집으로 들어간 뒤 대기하던 동료 마틴 하트(매튜 매커너히)에게 전화해 90초 안에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한다. 흑인갱, 백인갱, 출동한 진짜 경찰의 눈을 용하게 피한 러스틴과 백인갱 보스는 마틴의 차 뒷자리에 서둘러 오른다. 여기서 롱테이크는 끝. 이어서 헬리콥터에서 찍은 듯한 마스터샷이 나온다. 마을은 갱과 경찰이 어울린 개판이 됐다. 이 롱테이크는 그야말로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괜찮게 보였던 두 형사
17년 후엔 이렇게 변했다.
<트루 디텍티브>에서 코맥 맥카시, 심지어 윌리엄 포크너 같은 미국 남부 문학의 냄새를 맡는 이도 있고, 그런 해석이 틀리다고 할 감식안도 내게는 없다. (맥카시는 몇 권 읽었지만, 포크너는 읽다말다 했다.) 하지만 영상물의 전통에서 본다면 <트루 디텍티브>를 보며 이런 상상을 할 수 있겠다. 데이비드 린치의 감성으로 마이클 만 식의 액션물 찍기. 사건 전개가 느린데다가 분위기가 기괴하고 음울하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벌써 방영된 지 20여년이 지난 <트윈 픽스>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내가 처음으로 완전히 몰입해 본 미드.
매튜 매커너히는 이 드라마의 성공에 이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제2의 전성기(아니면 사실상 첫 전성기일지도. 그의 예전 이미지는 금발과 근육이 멋진 멜로영화의 주인공 정도 아니었나)를 맞은 듯하다. 서투른 영어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솔직히 매커너히와 해럴슨의 대사를 알아들을 방법은 거의 없다. 사투리 때문인지, 웅얼거리는 발음 떄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런 대사가 드라마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드라마란 건 말 그대로 '이야기' 아니던가. 그러나 '분위기'로 압도하는 드라마는 꽤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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