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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에서 필요한 두 가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스포일러 소량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를 줄곧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가 <좋은 친구들>(1990)의 월 스트리트 버전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두 영화는 큰 흐름의 측면에서 비슷하다. 야심만만한 젊은이가 큰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그러나 대개 위험하고 종종 불법적인 직업의 세계에 뛰어든다. 개인의 능력과 몇 가지 우연으로 젊은이는 금세 성공한다. 그러나 이른 성공에는 많은 함정이 기다린다. 마약 또는 여자. 젊은이는 둘 중 하나, 아니면 둘 다에 중독돼 짧은 전성기를 누린다. 세상엔 그처럼 되길 꿈꾸는 젊은이가 많지만, 법의 수호자들은 이들의 뒤를 노린다. 그리고 젊은이는 결국 법망에 걸려들어 이른 전성기를 끝내고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인생의 많은 나날들을 초라하게, 가끔 옛 영화를 그리며 살아간다. 끝. 


<좋은 친구들>의 젊은이는 마피아 보스를 꿈꾸었고, <더 울프...>의 젊은이는 월 스트리트의 거물이 되길 원했다. 아직도 어딘가엔 멋들어지고 기나긴 이탈리아식 본명과 미국식 별명을 함께 가진 마피아들이 있겠지만, <대부>가 공개된 지도 40년이 넘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리틀 이탈리아 뒷골목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마피아 두목'이 되길 원하진 않을 것 같다. 스콜세지는 월 스트리트의 거물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마피아 두목이라고 여기고 있는 걸까. 야심 많고, 냉정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합법이든 불법이든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과 두려움의 대상이며, 그들의 행동이 사회에 큰 해약을 끼쳤다 해도 정작 그들 자신은 별다른 손해를 입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 




자신의 회사에서 디카프리오는 신과 같은 존재다(사진 위). 돈을 번(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턴) 사람들은 이렇게 X신 같은 짓을 하고 논다. 


'좋은 친구들'에게 마약은 성공에 따라오는 부상 같은 것이었지만, '울프'에게 마약은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영화 초반부, 증권사 중역 매튜 매커너히는 인턴으로 입사한 '울프'(조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가능하면 많은 자위와 마약을 하길 권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말이다. 하루 종일 숫자에 치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자신 같은 사람들은 섹스와 마약 없이는 버텨내지 못하고 폭발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울프는 멘토의 조언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레이 리오타가 마약에 반쯤 취해 경찰에 쫓기는 종반부의 한 대목은 <좋은 친구들>의 하이라이트였다. <더 울프...>에서도 울프와 그의 오른팔 대니(요나 힐, <머니볼>에선 브래드 피트의 오른팔. 탁월한 조연 배우다)가 약쟁이들에게 '성배'와 같다는 희귀한 마약에 취해 벌이는 소동이 중반부의 하이라이트다. 스콜세지는 이 대목을 매우 길게, 공들여, 현란하게 묘사한다. 디카프리오는 약에 취해 뇌성마비 장애인처럼 서툴게 움직이는 모습을 극악스럽고 요란하게 연기하고, 요나 힐은 정말 관객에게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소동이 끝나면 보는 사람도 진이 빠져서 이후엔 왠지 맥이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벌써 만 71세가 된 스콜세지는영화의 리듬을 쥐락펴락하는 감각, 테크닉면에 있어서는 자기보다 40년쯤 젊은 감독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랑한다. 물론 우리는 스콜세지의 이런 테크닉을 이미 오래전부터 보아왔고, 이제는 70대의 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노인의 지혜' 같은 걸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원래 잘 안 변한다. 




좋은 친구들의 좋지 않은 행동들(사진 위). 그러나 아무튼 돈과 권력이 있으면 이렇게 인기 많은 클럽에서 없던 자리도 만들어 준다. 


<좋은 친구들>의 리오타는 법정에서 친구들을 팔아넘긴 후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가 소중한 생명, 초라한 삶을 이어간다. 반면 <더 울프...>의 디카프리오는 짧은 수감 생활을 끝낸 후 세일즈 기술 강사로 새출발한다. "돈을 벌고 싶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수많은 장삼이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런 미국식 강의 말이다.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몇 번의 금융 위기, 공황 위기의 국면을 거치고도 "돈을 벌고 싶다"를 넘어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은 <더 울프...>가 <좋은 친구들>보다 씁쓸하다고 여길만한 근거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