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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감독이 된 영화학도, 공자관 감독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공자관 감독을 만났다. 생각보다 유쾌하고 시간가는줄 모르는 인터뷰였다. 




남성 독자들은 공자관(39)이란 이름은 몰라도 <젊은 엄마>(2013)란 영화 제목은 들어봤을 확률이 높다. 어떤 이들은 <젊은 엄마>를 “성인영화계의 <시민 케인>(영화의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고전영화)”이라 부르기도 한다. 

<젊은 엄마>는 극장 개봉을 하기는 했지만, 주문형 비디오(VOD)나 인터넷 티비(IPTV) 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성인영화다. 이 영화로 비디오 산업의 몰락 이후 쪼그라들었던 한국의 성인영화 시장엔 다시 불이 붙었다. <젊은 엄마2>, <젊은 엄마3> 등의 후속편이 이어졌고, 온갖 가족 호칭이 붙은 성인영화들이 쏟아졌다. 공자관 감독 역시 지난해 <친구 엄마>를 내놓았고, 최근 <친구 엄마:비하인드 더 씬>도 선보였다. <친구 엄마:비하인드 더 씬>은 공 감독, 개그맨 김대범·곽한구가 함께한 코멘터리 영상 형식이다. 공 감독을 최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성인영화계에서 <친구 엄마:비하인드 더 씬> 형식의 작업을 하는 건 드문 일이다. 

“성인영화는 온라인 개봉 2~3개월 뒤 ‘무삭제판’이라는 형식으로 다시 나오곤 한다. 원작하고 크게 다르지 않지만, 몇 장면 더 붙여서 매출을 올리려는 일이다. 이건 말장난, 겉핥기, 사회병폐다. 나도 제작자의 ‘감독님, 돈 안 버실거예요?’라는 말에 굴복해 <젊은 엄마> 무삭제판을 내긴 했지만, 늘 불만이 있었다. 내 영화는 본편이 최상의 편집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무삭제판’이 아니라 다른 형식의 판본을 내보고 싶었다.”

-<친구 엄마>의 첫 장면은 대학생들이 각자의 성인영상 취향에 대해 수다를 떨면서 시작한다. 마치 갱스터들이 마돈나의 노래를 놓고 수다를 떠는 <저수지의 개들> 같다. 

“무의식 중에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나같은 영화 학도들에게 타란티노 영화는 교과서였다.”

공자관은 단국대 연극영화과 95학번이다. 고등학생 때는 장 뤽 고다르,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에 탐닉했고, 로드쇼, 스크린 등 영화지를 사모았다. 좋은 영화는 좋은 영화대로, 허접한 영화는 허접한 영화대로 배울 점이 있다고 믿고 닥치는대로 흡수했다. 

공자관은 전역하고 복학한 2000년 어느날 단편영화 제작실습 수업을 들었다. 남자 몇몇이 대본회의를 위해 모였다가 잠시 쉬기 위해 비디오를 빌려봤다. 그때 절로 눈이 간 곳이 성인영화칸이었다. 그때 <젖소부인 바람났네> 류의 성인영화와는 다른 세련된 표지의 비디오가 눈에 들어왔다. 성인영화 제작사 클릭엔터테인먼트가 내놓은 <이천년>(감독 봉만대)과 <쏘빠때2>(감독 이필립)였다. 줄거리에 개연성이 있었고, 공들여 찍은 야외 촬영 장면도 있었다. 배우들도 최선의 연기를 하고 있었다. 이 영화들이 공자관의 진로를 바꿨다. 

-왜 성인영화계에 들어갔나. 

“충무로의 도제 시스템에 들어가면 연출부, 조감독 생활을 5~10년 해야했다. 그럴 바에는 바로 에로영화계에 들어가 연출을 해보고 싶었다. 클릭에 ‘귀사의 영화를 감동적으로 봤다. 성인영화업계의 발전에 일조하고 싶다’는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자만했다(웃음). 마침 클릭에서 조감독 한 명이 퇴사해 그 자리에 들어갔다. 이필립 감독 밑에 들어가 배워가면서 일했다. 조감독 1년 반만인 2002년 여름 <위험한 연극>으로 데뷔했다. 실패작이었다. ‘영화는 혼자 하는게 아니다’라는 점을 느꼈다.”


그러나 성인영화계는 몰락중이었다. 2001년 클릭에 입사했을 때는 편당 1만장씩 팔렸는데, 2003년엔 1000~2000장이 고작이었다. 사무실에 나와있어도 할 일이 없는 날이 많았다. 공자관은 “일 안하고 월급 받으려니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결국 2003년 10월 퇴사해 프리랜서로 각종 성인 컨텐츠를 만들었다. <아바타> 이후 3D 붐이 일어 돈이 풀렸을 때는 3D 성인영상, 게임 산업이 성장할 때는 성인 게임용 실사영상을 찍었다. 2007년 충무로 기성 제작사인 청년필름에서 <색화동>을 만들기도 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공자관은 “<젊은 엄마>가 성공하기 전까지 선인장처럼 버텼다”고 했다. 

-<젊은 엄마>는 어떻게, 얼마나 히트했나. 

“디지털 부가판권 시장의 성인영화로는 <전망 좋은 집>(2012)이 1호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큰 수익을 내는 걸 본 제작자가 날 찾아왔다. 사실 <젊은 엄마> 대본은 진작에 건낸 상태였다. 난 자신 있었다. 무당 같은 소리긴 하지만, <젊은 엄마> 대본 쓰고 나서 확신에 차 있었다. 이 영화가 대박난 것도 놀랍지 않다. <젊은 엄마>의 원안은 인터넷 성인 카페에서 본 야설이다. 작가가 진짜 겪은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디테일이 좋고 개연성이 있었다. 하지만 야설을 그대로는 쓸 수는 없어 영화적으로 재창조해야 했다. 그대로 만들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할 리 없었다. 장모와 사위의 관계이긴 하지만, 일단 사위와 딸이 이혼하는 것으로 설정해 둘을 남남으로 만들었다. 매출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부가판권 시장에서는 여느 상업영화 못지 않게 돈을 번 것으로 안다.”

-아무리 남남이라도 상황이 부도덕하다는 비판이 나올법한데. 

“물론 심리적 저항이 있겠지만, 안될건 뭔가. 물론 현실에선 시도할 수도, 그럴 상황도 없다. <젊은 엄마>나 <친구 엄마>는 실제 남자들이 느낄법한 감정을 담았다. 100년도 못사는데, 뭘 지킬게 있다는 건가. 즐기고 싶으면 즐기자는게 내 생각이다.”

-<친구 엄마>도 성공했나. 

“먼저 제작자가 제안을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가 잘 안써져서 6개월이 걸렸다. 겨우 다 썼더니 <엄마 친구>가 이미 촬영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제목을 바꿀까도 생각했지만 <친구 엄마>를 넘어서는 제목을 찾지 못했다. 결국 <엄마 친구>가 먼저 나왔고, <친구 엄마>는 생각보다 반응이 약했다.”

사실 성인영화를 기대하고 <친구 엄마>를 보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두 주인공의 본격적인 베드신은 50분이 지나서야 나온다. 어둑한 바닷가에 망연히 앉아있는 여자 옆에 남자가 다가오자,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서 영화가 끝난다. 공자관은 “<친구 엄마>는 ‘베드신이 있는 사랑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그는 “어떤 사람은 이런 사랑을 변태라고 하겠지만, 나이나 관계가 무슨 소용인가. 중요한 건 감정”이라고 말했다. 


<젊은 엄마>의 공자관 감독/ 김창길 기자




-성인영화인데 베드신의 빈도가 많지 않다.

“제작자도 대본을 보고 우려하긴 했다. 하지만 난 ‘끝까지 보면 폭탄처럼 터질 것’이라고 설득했다. 비디오 시절엔 규칙이 있었다. 영화 시작한 지 10분 안에 베드신이 나와야 했고, 베드신은 최하 7~8번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난 상업영화처럼 규칙을 지켜가며 찍고 싶지 않다. 저예산영화의 자유로움을 누리고 싶었다.”

-배우들의 노출도 많지 않은 편이다. 

“라틴계 여자라면 몸 자체가 예술이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남자건 여자건 자칫 잘못 벗으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사실 실생활에서는 서로 연인이니까 아름다워 보이지, 제 3자가 보면 바퀴벌레 한 쌍 아닌가(웃음). 배우는 그보다는 정제된 분들이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 오히려 노출이 적어서 더 야할 때가 있다. 이 영화가 하드코어 포르노는 아니기 때문이다.”

-베드신 촬영의 노하우가 있을 것 같다. 

“배우든 스태프든 자연스러워야 한다. 빠른 시간에 좋은 퀄리티를 내자고 모두 합심해야 한다. 그 점에 합의하면 벗어도 낯뜨겁지 않다. 그저 일일 뿐이다. 한번은 조감독이 컷이 끝날 때마다 황급히 담요를 가지고 가 여배우의 몸을 가려줬다. 난 그를 따로 불러 이야기했다. ‘티내지마. 자연스럽게 해. 여기 벗은 몸이 있으면 안된다는 듯이 행동하지마.’ 예전 클릭 시절과 달리 요즘은 매번 스태프를 새로 구성하니까 촬영장에 날선 긴장감이 깔려 있다. 그 점이 아쉽다. 내 꿈은 스태프가 모두 고정으로 일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영화 <젊은 엄마>(위)와 <친구 엄마>



-기술의 발달이 성인영화 촬영 현장에도 영향을 줬나. 

“카메라 기종만 달라졌을 뿐, 장비 차이는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기술은 예전에도 다 했다. 사람이 어떻게 운용하는지의 문제일 뿐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와 실랑이도 많았을 것 같다. 

“예전에 별 이유도 없이 심의를 안내줘서 회사 명의로 공문을 보내 영등위원장 면담까지 신청한 적이 있다. 난 성인 보라고 만들었는데, ‘청소년이 볼까봐 우려된다’는 이야기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영등위가 심의 안내는 이유를 설명하면, 난 성의껏 고쳐서 심의를 받곤 한다. (공자관은 심의를 피하는 몇 가지 기술을 알려줬다.) 일종의 ‘밀당’이다. 어느새 사무국 직원하고는 친해질 정도다(웃음).” 

-성인영화계 바깥으로 진출할 생각은 없나. 

“일단 내 제작사인 밀크픽처스를 에로 영화계의 ‘워킹 타이틀’(영국의 유명 영화제작사)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시리즈 영화는 보통 트릴로지(3부작)로 끝내니, ‘엄마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세번째 작품도 만들고 싶다. 19금 스릴러와 치정 불륜극 시나리오도 준비중이다. 10~20억대 중저예산으로 200~300만 관객 드는 영화 만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