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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배우를 말한다

바다 같은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바르셀로나 뒷골목을 고독한 표정으로 걷는 바르뎀. 아디다스 추리닝 색깔 좋다.



하비에르 바르뎀(42)은 바다 같은 배우입니다. 세상의 온갖 강이 바다로 흘러들 듯, 사람들의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등의 감정이 바르뎀에게로 흘러듭니다.

13일 개봉한 <비우티풀>로 바르뎀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섬뜩한 악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합니다. 조울증을 앓은 아내와 헤어진 뒤 홀로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욱스발(바르뎀). 그는 중국, 세네갈 등지에서 온 불법 이주 노동자의 일자리를 알선하고, 경찰에게 뇌물을 줘 단속을 무마해주는 브로커입니다. 그는 죽은 자를 볼 수 있는 능력도 있어 가끔 영매로 일하기도 합니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간 그는 큰병을 앓고 있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사랑, 옛 아내에 대한 연민,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책임감은 욱스발을 자꾸만 붙들어 맵니다.

바르뎀은 역시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한 우디 앨런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도 출연했습니다. 그러나 두 영화가 바르셀로나를 그리는 방식은 극과 극입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사진 위)에선 대서양 양안의 절세미녀 스칼렛 요한슨, 페넬로페 크루즈를 양손에 쥐었다. <비우티풀>에선 표정이 좋지 않다. 


앨런의 바르셀로나가 미국 관광객의 눈에 비친 햇빛 찬란한 거리, 맛있는 음식, 정열의 연애로 표상됐다면, 바르뎀의 바르셀로나는 이주 노동자가 질식해 죽는 지하 공장, 마약 거래상이 판치는 뒷골목입니다. ‘비우티풀’은 욱스발의 딸이 ‘뷰티풀’(아름다운)을 발음나는 대로 적은 것입니다. 이 가난하고 우울한 거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희망인지, 그럴 수 없음을 표현하는 역설인지 아리송합니다.

욱스발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물입니다.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는 “삶이 너무 바쁘고 복잡해서 평화롭게 죽지도 못하는 자, 이민자들을 법으로부터 보호하면서도 그 자신은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자”라고 합니다. 또 죽은 자를 달래주지만 그 대가로 산 자에게 돈을 받고,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에게 신경질을 내고, 원시적이고 단순하지만 초현실적 통찰력을 가진 남자라고 표현합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일까요. 바르뎀은 합니다. 이냐리투는 <21그램> <바벨> 등의 전작에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시키면서 결국 하나로 묶는 형식을 채택했습니다. 숀 펜, 베니치오 델 토로, 나오미 왓츠,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이냐리투가 그린 세계의 한 조각에 기꺼이 만족했습니다. 바르뎀은 그 모든 사람의 역할을 혼자 합니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비우티풀>의 바르뎀.

배우란 원래 이번 영화에선 성자가 됐다가 다음 영화에선 연쇄 살인마가 되는 존재입니다. 자기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 배우(俳優)라는 한자가 보여주듯이 사람(人)이 아닐(非) 수도 있는 것, 그러다가 한 작품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직업입니다.

바르뎀은 <비우티풀> 한 편에서 수백명의 사람이 됩니다. 아니 사람이었다가 악마가 되고, 또 천사가 됩니다. 관객은 그 커다란 눈과 코와 입술을 보면서, 이마의 깊은 주름을 응시하면서, 굵직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세상의 모든 감정을 체험합니다. 사건의 바다이자 감정의 저수지인 바르뎀. 그런 의미에서 현재 바르뎀의 배우자이자 함께 아이를 낳은 페넬로페 크루즈는 일처다부제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웃긴 생각도 해봅니다.

세트에 신경 좀 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