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배우를 인터뷰해보면, 어쩔 수 없는 '클래스의 차이'를 느낄 때가 있다. 켄 정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는 <행오버>의 감초 조연 정도지만, 그의 말은 조리있고 풍부했다. 영어로 이루어지 인터뷰였지만, 한국어 인터뷰보다도 알아듣기 쉬웠다.
<행오버> 시리즈는 ‘미친’ 코미디다. 결혼식을 앞두고 연 ‘총각 파티’에서 인사불성이 된 세 남자들이 정신을 차린 뒤 간밤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미국의 술취한 남자들이 벌일 수 있는 황당한 행동들이 상상을 뛰어 넘어 재현된다. 2009년 1편이 개봉해 제작비의 10배 가까운 3억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다. 최근 미국에서 개봉한 2편 역시 인기를 끌었다.
켄 정(한국명 정강조·42)은 <행오버>로 유명세를 얻은 한국계 배우다. 이 영화에 그는 트렁크 안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알몸으로 뛰쳐나와 주인공 3명을 차례로 때려눕히는 아시아계 마피아 두목 ‘미스터 차우’로 등장했다. 이 장면은 MTV 영화제의 ‘최고 황당한 순간상‘을 받기도 했다. 전편의 인기를 업고 <행오버2>에 출연한 켄 정이 영화 홍보차 방한해 16일 기자들과 만났다. <행오버2>에서 켄 정은 만취해 벌거벗은 채 잠을 자고, 마약을 상용하고, 방콕의 거리를 모조리 때려부수겠다는 듯이 자동차를 몰고, 불법적인 금전 거래에 연루돼 있다.
그의 현실은 영화 속 ‘과격한’ 삶과는 정반대다. 그는 이민자 가정의 성공한 2세였다. 고교를 월반해 졸업하고, 듀크대 의대 역시 조기졸업할 정도의 수재였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내과의사가 됐고, 역시 의사인 베트남계 여성과 결혼을 했다.
고교 시절엔 내성적이지만 친한 사람을 만나면 즐겁게 해주길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 대학 시절이었다. 호기심에 수강한 연기 수업이 “자연스럽고 흥미로웠다”. 이후 연기 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기도 했지만, 의학 대학원에 진학하느라 일단 꿈을 접었다. 의사가 된 뒤에도 취미로 연기 활동을 계속 했다. 개인 레슨을 받았고, 지역 코미디 대회에 나가 우승하기도 했다. 낮에는 메스를 잡고 밤에는 코미디 무대에 서는 생활이 이어졌다.
전업배우가 된 건 2007년 <사고친 후에>에 출연한 뒤였다. 아내가 먼저 독려했다. 아내는 “당신은 배우로 훨씬 잠재력이 있다”고 했다. 켄 정으로선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었다. 아버지 역시 “가족이 중요하다. 네가 뭘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며느리가 좋다면 아버지도 좋다는 뜻이었다.
<행오버>의 누드 장면은 켄 정이 직접 제안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팬티를 입은 것으로 설정돼 있었다. 켄 정은 “<행오버>는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코미디다. 관객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실 당시 켄 정의 몸과 마음은 지쳐있었다. 아내는 유방암 3기 판정을 받고 방사선 치료중이었다. 켄 정은 “인생은 짧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볼 시간은 없다. 누드는 위험하지만 아내가 처한 상황만큼 위험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켄 정은 감정이 시키는대로 충격적이고 미친 듯한 코미디 연기를 펼쳤다. 포복절도시키는 코미디 <행오버>는 켄 정과 그의 아내에게는 치유적인 영화가 됐다. 켄 정은 유명세를, 아내는 완치 판정을 얻어냈다.
그는 전업배우의 길을 택한만큼 코미디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올여름 개봉해 흥행한 <트랜스포머3>에는 디셉티콘과 내통하는 지구인으로, 미국에서 방영중인 시트콤 <커뮤니티>에는 괴짜 스페인어 강사로 출연했다. 그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 기회가 있으면 한국영화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장르와 상관없이 국가, 감정, 문화, 영혼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영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미(美)는 대사가 아니라 느낌,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행오버2>는 25일 개봉한다.
'이미지 > 배우를 말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리한 전도연 (0) | 2011.09.26 |
---|---|
낙천적인 톰 아저씨, <로맨틱 크라운> (3) | 2011.08.21 |
하지원 찬가 (3) | 2011.08.04 |
<퀵>과 <고지전> 사이-고창석 (0) | 2011.07.29 |
윤계상은 풍산개 (0) | 2011.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