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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9:나인’

홀로 깨어있는 한밤중에 냉장고가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습니까.

기계엔 마음도 영혼도 없습니다. 인간의 편리에 따라 만들어졌다가, 소용 없으면 그뿐입니다. 그러나 자꾸만 냉장고가 홀로 울고, 시계가 땀을 흘리며, 자동차가 하품을 하는 듯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애니메이션 <9: 나인>은 2009년 9월9일 개봉했습니다. 영화 제목에 숫자 9가 들어가기 때문에 개봉 날짜를 이날로 맞춘 모양입니다. 신인 감독 쉐인 액커보다 먼저 눈에 띄는 이름은 공동 제작자인 팀 버튼(<가위손>, <스위니 토드>)과 티무르 베크맘베토프(<원티드>)입니다. 일라이저 우드, 제니퍼 코넬리 등이 목소리 연기를 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폐허뿐인 지구에 생명을 가진 무언가가 눈을 뜹니다. 외형은 기계 장치가 달린 봉제 인형처럼 보이고, 등에는 숫자 9가 적혀 있습니다. 그는 다른 숫자가 적힌 동료를 발견합니다. 지구는 인간에 대항해 발호한 기계의 폭주 때문에 멸망한 상태고, 생명을 가진 9개(혹은 명)의 인형 로봇만이 살아남았습니다. 9는 괴물 기계에 대항해 싸우려 하지만, 무리의 지도자 1은 숨어 지낼 것을 명합니다. 이들이 생명과 영혼을 갖게 된 계기는 영화 후반부에 설명됩니다.

인간이 없는 곳에 버려진 기계나 인형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인 듯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창의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픽사는 이런 소재의 걸작을 여럿 만들었습니다. <토이 스토리>는 아이가 안보는 사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장난감들을, <월·E>는 쓰레기 더미가 된 지구에 홀로 남은 청소 로봇을 그렸습니다. 이 애니메이션 속 인형과 로봇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마음을 가졌고, 자기 존재의 근원에 의문을 품습니다.

옛 사람들은 산과 바다, 나무와 달을 보며 예술적 감흥을 일깨웠습니다. 선조들의 시가 음풍농월(吟風弄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많은 자연이 인간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릅니다. 수목원이라도 찾지 않는 이상, 맨발로 흙을 밟기조차 어렵습니다. 갈대밭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미풍에 우수수 갈대가 울어/비인가 내다보니 달빛이 호수에 가득하다”는 시구의 감흥은 옛 사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인류학자 엘렌 디사나야케는 인간의 심미적 성향이 수백만년에 걸쳐 형성된 인간 본성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이를 미학적 인간(호모 에스테티쿠스)이라 부릅니다. 자연에서 멀어지고 기계가 가까워진 이 시대, 우리가 미학적 본능을 가까운 대상을 통해 뿜어내는 현상은 꽤나 당연해 보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늦은 밤,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울음은 창문 너머 아득하고, 케이블 모뎀은 눈 앞에서 깜빡입니다. 절반의 백지를 앞에 둔 커서는 제 마음을 안다는 듯 윙크합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무엇을 노래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