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인터뷰는 잘됐다. 인터뷰이의 사연이 풍부하고, 인터뷰이가 그 사연을 전하는 조리가 있으며,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존중하고, 인터뷰 자리가 화기애애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과정이 결과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인터뷰 내용에 비해 주목도는 떨어진 것 같다. 어딘지 아쉬워 인터뷰 내용을 블로그에 옮겨 놓는다.
아울러 서울발레시어터의 공연에 대한 표현은 모두 진심이다. 정말 입이 딱 벌어졌고,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서울발레시어터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이자 김인희 단장(52)의 은퇴공연이 된 <스페셜 갈라 & BEING 더 베스트>의 마지막 장면. 와이어에 매달린 김 단장이 무대를 고속으로 가르질렀다. 객석 곳곳에서 탄성과 박수가 터졌다. 공연 초반엔 “우아하고 위엄있다”는 평이 어울렸으나, 종반부에 접어들었을 때는 그저 입이 딱 벌어졌다.
그는 유니버설발레단,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를 거친 최고의 발레리나였다. 은퇴무대는 올해초부터 염두에 뒀고, 6월부터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무대에 서지 않은 상태였고, 나이는 어느덧 50대였다.
서울발레시어터는 개인자금으로 탄생한 한국 최초·유일의 민간 발레단이다. 무용수 30명, 직원 10명이 고정급여, 4대보험을 받는다. 그것도 비교적 인기 있는 고전발레가 아닌, 창작발레를 100편 이상 올리면서 얻은 성과다. 공연이 끝난 이틀 뒤인 25일, 김 단장을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깜짝 놀란 무대였다. 아픈데는 없나.
“허리가 좀 욱신욱신하지만, 기분 좋은 통증이다(웃음). 다리를 앞, 옆으로 올리는건 아무 문제 없었는데, 다리를 뒤로 90도 들거나 상체를 뒤로 젖히는 컴브레 동작은 좀 고생했다. 몸을 뒤로 쓰는 근육을 찾기가 어려웠다.”
서울발레시어터의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BEING 더 베스트>. 김인희 단장은 90년대와 마찬가지로 와이어를 달고 무대 위를 날았고, 19세 연하의 김성훈 단원과 표정 연기도 선보였다.
/서울발레시어터 제공
-스스로를 믿었나.
“걱정이 많았다. 2년전 어깨 수술을 받았고, 혹시라도 무릎이 부어 공연을 못하면 어떡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특별한 체력과 몸을 주신 부모님과 신에게 감사드린다.”
-2005년 남편인 제임스 전 예술감독이 안무한 <작은 기다림> 이후 무대에 서지 않았다. 이번 공연을 보면 몸 컨디션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난 언제나 연습실에 들어가고 싶었다. 다시 태어나도 단장은 하고 싶지 않지만 발레는 하고 싶다.(웃음) 하지만 내게 1순위는 발레단 운영이었다. 직원들 월급 주고, 사무실 운영비 내고, 발레단 홍보하려면 내 몸 만들 시간은 없었다. 난 발레단의 ‘엄마’ 아닌가.”
-10년간 따로 몸을 관리했나.
“연습실에 못가니까 헬스, 골프, 등산 다 해봤다. 하지만 발레만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람의 몸을 완벽하게 하는 운동이 없는 것 같다. 발레는 평소 안쓰는 잔근육을 쓰게 해주고, 사람을 균형있게 만든다. 계단에서 헛굴러도 발레한 사람은 덜 다친다.”
서울발레시어터의 김인희 단장 /서성일 기자
1989년 제임스 전과 결혼할 때만 해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1995년 부부가 함께 서울발레시어터를 창단하면서 마음을 바꿨다. 김 단장은 “주변에선 낳으면 알아서 큰다고 하지만, 아이가 있으면 발레단에 헌신하지 못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평생 발레만 하던 무용수가 갑자기 수십명 직원에게 월급 주는 경영자 역할을 하가 쉽지 않았겠다.
“평생 온실에 있다가 밖에 나갔더니 산소가 없더라. 다시 돌아가겠다고 물를 수도 없고…(웃음). 1984년 유니버설발레단에 들어간 뒤 발레학원을 차려 오후 6시부터 밤 11시 30분까지 혼자 네 클래스를 가르치며 10년간 돈을 벌었다. 발레단을 하면서도 학원을 병행하면 필요한만큼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창단 3년만에 구제금융 위기가 터져 사정이 나빠졌다. 이후 3년간 나와 제임스 전이 10년 모은 재산을 다 털어썼다. 어떻게든 월급은 줘야하니까.”
-대중도 <백조의 호수> 같은 고전발레는 알지만, 창작발레는 여전히 낯설다.
“시대는 바뀌는데, 우리는 고전발레만 수십년 했다. 공연할 때마다 다른 나라 사람이 만든 옷을 빌려입었다가, 끝나면 반납하는 기분이었다. 처음 창단해 모던발레를 하니까 ‘저건 발레 아니다’라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3~4년전부터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도 창작발레를 선보이고 있다. 우린 너무 일찍 시작해 조금 더 힘들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시작해야할 일이었다.”
김 단장의 부모는 실향민이었다. 경기도 파주 부근에 살며 아버지는 벽돌공장 인부, 어머니는 식당이나 군인 옷 수선을 해 생계를 이었다. 김 단장이 모나코왕립발레학교 유학을 다녀오니 온 가족이 비닐로 창을 댄 무허가 건물의 한 방에 모여살고 있었다. 다섯 남매 중 막내인 김 단장을 위해 온 가족이 일정 수준의 희생을 감수했다.
-발레리노가 된 광부의 아들이 주인공인 <빌리 엘리어트>가 따로 없는 사연이다.
“유학가자마자 첫 수업을 듣고는 그만두고 싶었다. 내가 최고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부유했다면 두세 번은 발레를 그만뒀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나코 갈 때 비행기표 살 돈이 없어서 아버지가 1년치 월급을 가불했다.”
김 단장의 아버지는 무면허로 벽돌 공장 트력을 운전하다가 딸이 발레 학원을 차리자 통학차량을 운행하기 위해 운전면허 시험에 응했다. 합격했지만 평생 생각지도 않은 필기시험에 너무 힘을 쏟았다. 그날 뇌혈관이 터졌고, 8년을 반신불수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떴다. 결국 힘들게 딴 운전면허증은 무용지물이 됐다. 김 단장은 아직도 그 면허증을 간직하고 있다.
서울발레시어터가 사회공헌활동에 애쓰는 데에도 이런 사연이 있다. 노숙자, 장애인 발레 교육을 하고, 발레 영재들에게 유학 기회를 알아봐주는데도 열성이다. 김 단장은 서울에 이사와 초등학교 4학년때 친구가 다니던 한국무용 학원에서 부채춤을 처음 봤다. 파주에 살던 시골 아이는 완전히 매혹됐다. 친구를 따라 창문 너머로 무용학원을 1년 넘게 엿보다가 용기를 내 “춤을 배우고 싶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사랑하는 막내딸의 청을 외면할 수 없던 어머니는 ‘윤희준 무용학원’을 찾아갔고, 김 단장의 집안 사정을 들은 윤희준은 “그냥 보내세요” 한 마디 했다. 김 단장은 “그때 선생님이 ‘무용은 돈이 듭니다’라고 말하셨으면, 무용은 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니버설 발레단 시절의 김인희. <심청>(1988)과 <백조의 호수>(1992)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재능을 드러낸 김 단장은 리틀엔젤스 예술학교(지금의 선화예중)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부전공으로 배웠던 발레를 직업으로 삼았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이 선화예중 동기다. 김 단장은 “시작이 늦어서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했다. 수업이 끝나면 수위 아저씨가 쫓아낼 때까지 연습실에 살았다”고 회고했다. 그때 서로 다리 눌러주고 잡아주던 문훈숙 단장은 이번 은퇴공연에서 김 단장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무용수들은 보통 은퇴하면 무얼하나.
“1년에 발레 전공자가 200명 정도 배출되는데, 국내의 직업 발레 단체는 4군데 뿐이다(서울발레시어터, 국립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이밖에 더 많은 발레단이 있긴 하지만, 고정급여는 주지 못한다. 일단 직장을 갖지 못하는 전공자가 많다. 은퇴하면 교수, 예술학교 강사, 안무, 공연기획, 공연스태프 등 다양한 일을 한다. 우리 같은 전문 발레단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
김 단장은 스스로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몸이 건강해야 할 수 있는 발레를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또 돈도 벌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홀가분하게 떠난 지금, 남은 과제는 발레단 운영 뿐이다. 김 단장은 발레단이 3, 국가·지자체가 3, 기업이 3, 개인이 1의 재정을 후원하면 발레단을 더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그는 “얼음 녹여서 물 끓였는데 이제 90도 정도 됐다. 국가, 지자체, 기업이 석탄, 연탄, 나무 넣어주시면 곧 물이 끓어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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