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을 보고 리들리 스콧의 인장을 느끼긴 어렵다.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스콧의 영화 중 이토록 긍정과 희망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찬 영화가 있었던가. SF 장르만 한정해 보더라도 <프로메테우스>(2012)는 얼마나 우울하고 찝찝한가. 장르를 넓혀보면 <카운슬러>(2013)같이 더 찝찝한 영화도 있다. 그런데 <마션>은? 전세계인이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인 마크 와트니의 무사귀환을 빌고, 그가 화성을 탈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함께 기뻐한다. 할리우드 SF의 클리셰, 임무 성공 소식이 전해졌을 때 NASA 사람들이 환호하는 장면에선 거의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내게 <마션>은 만족스러운 상업영화였다. 난 <마션>이 일종의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생각하고 즐겼기 때문이다. 식물학자로서의 지식을 총동원해 감자를 재배하고, 거기 필요한 산소, 물, 온도 등을 맞추기 위해 우주비행사로서 배운 온갖 지식을 사용하는 모습은, 온갖 화학 약품과 장비들이 갖춰진 창고에 갖춰 탈출 방법을 생각해내는 '맥가이버'적 쾌감을 안겼다. 


그러나 식량, 산소, 온도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감정이다. 극중 NASA 사람들도 종종 와트니의 심리 상태를 걱정한다. 난 원래 <캐스트 어웨이>처럼 외딴 곳에 홀로 남겨진 사람 이야기에 끌리는 편이지만, <마션>의 상황을 즐겼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마션>의 고립 정도는 <캐스트 어웨이>와 비교할 바가 아니며, 구조는커녕 생존의 희망조차 갖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단테는 '희망이 없는 곳'을 지옥이라고 했는데, 바로 마크 와트니가 그런 상황이었다. 


그 점에서 와트니는 슈퍼히어로다. 그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곳에서 희망을 가진다. 화성에서 얼어죽거나 숨막혀 죽거나 폭발하거나 굶어죽지 않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울창한 밀림을 조성하는 것보다 수만 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며칠만 지나면 별 거 아닌 것으로 판명나는 사소한 실패와 좌절 때문에 세상이 무너진 듯 절망하곤 한다. 하지만 와트니는 정말 큰 문제, 그것이 그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갈지 모르는 문제에 직면해서도 몇 번 욕을 하고 잠시 정신을 놓은 채 멍하니 지낸 다음 바로 문제 해결에 돌입한다. 그때마다 '맥가이버적'으로 문제 해결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건 와트니가 똑똑해서 일 수도 있지만, 와트니에게 희망과 의지가 가득해서이기도 하다. 와트니는 심지어 매 끼니를 감자만 먹고, 그것도 케첩이 덜어져 잘게 빻은 진통제에 찍어먹어도, 별 불평이 없다. 




요르단 어느 사막에서 화성인 척 연기하는 맷 데이먼(위), 감자만 먹고 살아가는 맷 데이먼. 





작은 실패 앞에 모든 걸 포기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해도 침착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나같은 보통 사람들이다. <인사이드 아웃>식으로 보면, 와트니는 소심이, 슬픔이가 아니라 기쁨이가 강력한 독재체제를 구축한 인격체다. 좌절과 슬픔과 두려움의 시간은 짧다. 나머지 시간은 강인한 의지와 미래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믿음으로 충만하다. 와트니는 지구로 무사 귀환한 뒤 우주비행사 양성 기관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또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그러다 보면 결국 살아남습니다." 


지금은 은퇴한 어느 시인이자 대학교수는 기형도가 최고의 시인일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좋은 시인은 결국 세상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을 처음 들은 15년전쯤에는 '무슨 소리지?' 하고 의아해 했던 것 같은데, 몇 년전부터는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