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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하지 못한 야심, '탐정 홍길동'


'탐정 홍길동'은 여러모로 아쉽게 됐다. 야심은 컸지만, 그것이 제대로 폭발한 것 같지는 않다. 시퀄을 노린 듯한 분위기인데, 이번 흥행 성적으로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이제훈의 활용도가 다양하다는 점이 발견됐다는 건 소득이겠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은 비슷비슷한 ‘톤 앤드 매너’의 영화들을 양산하던 한국영화계에 돌출한 작품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씬 시티>나 <300>같이 그래픽 노블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긴 듯한 영화가 있었으나, <탐정 홍길동>은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시도다.

홍길동(이제훈)은 겁, 정, 친구, 자비가 없는 인물이다. 불법 흥신소 활빈당 소속의 사립탐정인 그는 악당보다 더 사악한 방식으로 악당을 제압해 나간다. 홍길동이 20년간 찾아 헤맨 어머니의 원수 김병덕(박근형)이 홍길동의 눈앞에서 누군가에게 납치된다. 홍길동은 김병덕의 두 손녀 동이(노정의), 말순(김하나)과 함께 김병덕을 찾아 나선다. 김병덕 납치 사건은 홍길동의 잃어버린 과거와도 연결돼 있다.

배경은 얼핏 1980년대 초반쯤으로 짐작되지만, 구체적인 시간이나 장소는 알기 어렵다. 김병덕의 거주지는 전쟁 직후 궁벽한 시골 마을을 닮았고, 여관이나 서점 같은 시내 건물은 1960년대쯤으로 보인다. 군인 출신 정치인들이 활개 치는 것으로 봐선 1970~1980년대인가 싶다가, 악당과 활빈당이 사용하는 총기류는 아예 할리우드의 갱스터, 필름 누아르 영화에서 볼 법한 것들이다. 시·공간이 모호한 배경을 만들어내는 건 조성희 감독이 전작 <늑대인간>에서도 보여준 장기였다.

이처럼 모호한 배경은 대중영화로서의 <탐정 홍길동>이 가진 양면성이다. 제작진은 현실의 여러 제약에서 벗어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관객 역시 시대와 공간을 혼성해 제작진 마음대로 꾸며낸 이야기를 의심 없이 즐길 법하다.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 역시 ‘연기를 못한다’고 지적하기보다는, 영화의 스타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 역사적, 현실적 경험이 들어올 때는 솔기가 두드러진다. 영화 속 악의 세력은 가상의 종교집단 광은회이고, 이 집단은 국가가 벌이는 거대한 음모와 연계돼 있다. 이는 과거 한국의 군사정권이 정국 전환을 위해 조작했던 간첩단 사건이나 실제 있었던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연상케 하지만, 영화의 비사실적인 요소들은 <탐정 홍길동>이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영화 소재로 소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이제훈은 극적으로 과장된 연기 역시 몸에 맞게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아역 배우가 신 스틸러로 등장하는 건 한국의 영화, 드라마에서 매우 흔한 사례지만, 꼬마 말순 역의 김하나는 본능과 같은 코미디 감각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말순은 자칫 끝없이 무겁고 음산해질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조성희 감독은 학창 시절 단편 <남매의 집>, 장편 <짐승의 끝>으로 소름끼치도록 무시무시한 상상력을 자랑했다. 그는 <늑대소년>과 <탐정 홍길동>으로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상업영화계에 안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학창 시절의 재능이 아직 만개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상업영화계에는 더 많은 조성희가, 더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