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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고 영리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요즘 블로그 관리에 소홀해 한 달 늦게 업데이트 하고 있음. 난 이 영화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흥행 성공은 물론,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도 앞섬. 


과거 슈퍼히어로들은 외부의 적과 싸우기 바빴지만, 요즘엔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는 데 힘쓴다. 슈퍼히어로들이 ‘올바름’을 추구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방법론을 두고 대립하는 것이다. 사실 큰 힘을 가진 존재들은 자주 그랬다. 미국은 베트남 정글의 적은 물론 내부의 반전 여론에도 고전했다.

개봉 중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두 영웅은 슈퍼맨이 고향별에서 온 외계인과 싸우느라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든 사건을 두고 대립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도 상황은 비슷하다. 슈퍼히어로들의 활약으로 강력한 적을 물리친 건 분명하지만, 그 와중에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실 그간의 슈퍼히어로들은 그 어떤 국가, 법, 여론의 통제도 받지 않았다. 이제 세계는 국제연합 산하기구가 슈퍼히어로를 관리하는 ‘소코비아 협정’을 체결하려 한다. 충직한 미군이었던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는 스스로 책임지는 정의를 주장하지만, 유명한 바람둥이이자 거부인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은 의외로 국제기구의 관리 체계를 지지한다. 때마침 캡틴 아메리카의 오랜 친구 윈터 솔져가 연루된 테러가 일어난다. 사건 해결의 방법론에 대해 수많은 히어로들은 캡틴 아메리카 편, 아이언맨 편으로 나뉘어 대립한다. 아이언맨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휘하에 들어가고, 캡틴 아메리카는 거부하는 셈이다. ‘내전(시빌 워)’이 시작된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일환으로 기획됐지만, 이 영화에는 <어벤져스> 못지않게 많은 히어로들이 등장한다. 팔콘, 호크아이, 스칼렛 위치, 블랙 위도, 워 머신 등 <어벤져스>의 등장인물은 물론 블랙 팬서, 스파이더맨 등 새로운 히어로도 출연했다. 이렇게 많은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는 두 가지가 관건이다. 스파이더맨의 그물, 아이언맨의 미사일,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같이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무기들이 부딪치는 액션 장면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또 무기만큼 다른 인물들의 개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자칫 어떤 인물은 뜬금없이 등장했다가 별일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영리하게도 인물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히어로가 저마다의 논리를 끝까지 유지하며 설득력 있게 행동한다. 대신 신(神)인 토르, 분노하면 이성을 잃는 헐크처럼, ‘군사행동에 따른 민간인의 피해(콜래트럴 데미지)’라는 영화의 주제 아래 다루기 힘든 캐릭터는 등장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의 목적은 대학 교양수업에서 다룰 법한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두 히어로 집단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전시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이 정확히 두 편으로 갈라진 계기는 다소 작위적이다. ‘자위적 정의’를 추구하는 캡틴 아메리카의 선택은 미국적 자유주의의 전통 아래서 이해한다 하더라도, 아이언맨의 선택은 갑작스럽다. 이전까지 여러 편의 영화에서 국가, 윤리와는 완전히 무관한 자신만의 부, 테크놀로지에 심취해 살아가던 아이언맨이 아들 잃은 어머니의 비판 한 번에 갑작스럽게 다른 사람이 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로 자신감을 얻은 앤서니·조 루소 형제가 연출했다.